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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어느 여름날, 정원의 추억

저마다의 남쪽으로 가는 중

by 변대원

좋은 만남은 늘 우연을 가장한 채 찾아옵니다.

우연히 PPT 강의를 소개받았고, 그 PPT 강의로 인연이 되어 독서강의를 요청받았고,

그렇게 가게 된 독서강의를 통해 글쓰기 수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원이 적어 없어질뻔한 수업이라 들었는데, 몇몇 분의 강력한 추천으로 8명이 모여 수업을 시작했던 게 벌써 2년 전이네요. 그렇게 수업을 하며 만난 작가님들과 깊이 있는 교감을 나누며, 수업이 끝난 이후에도 지금까지 매달 한 번씩 모임을 이어오게 된 특별한 만남.

이토록 우연의 우연을 거듭해 왔지만, 결국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또 한 번 배웁니다.


그렇게 작년에도, 올해도 특별한 만남은 이어지고 있어요.

꼭 자주 만나야 특별해지는 건 아닐 겁니다.

꼭 성격이 잘 맞거나 취향이 같아야만 친해지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각자의 삶의 지향점이 비슷하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비슷한 사람들이 만나면 특별한 무언가를 서로 느끼게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지나온 3번의 봄과 3번째 맞이한 여름.

매년 한 번씩 소소정원에서 마치 저마다의 삶의 성적표를 확인하는 시간을 보낸 것 같기도 합니다.

긴 공무원 생활을 끝내고 퇴직한 성작가님, 어느덧 3번째 책출간을 앞두고 계신 서작가님, 매년 더 풍성해지는 정원을 통해 내면의 풍경을 엿볼 수 있는 신작가님. 또 함께 하지 못했지만, 함께 하고 싶었던 그리운 작가님들의 얼굴도 떠오릅니다.


지난주 정원에서 작가님들께 책을 선물하고, 함께 읽고 나눈 시간들이 짧지만 참 특별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나눈 문장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자 이렇게 글에 옮겨 봅니다.


"어디로 걸을지 결정하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나는 자연 속에 섬세한 자력이 있다고 믿는다. 무의식적으로 그 자력에 복종하면 바른 길로 가게 될 것이다. 자연은 우리가 갈 길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다. 바른 길이 있는데, 우리가 산만하고 어리석어서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다. 실제 세계에서는 가본 적이 없더라도 상상의 세계에서 완벽하게 이상적인 길을 떠올리면 기꺼이 그 길로 가게 될 것이다. 때로는 어느 방향으로 갈지 모를 때가 있는데, 그것은 어떤 길로 갈지 정확하게 머리에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로 발걸음을 옮길지 아직 확신하지 못한 채 본능에 맡기고 걷기 시작하면 결국 남쪽을 향해 가게 된다.(중략) 나의 나침반은 빨리 방향을 정하지 못해서 각도가 조금씩 흔들리고 늘 정남향을 가리키지는 않지만 항상 서쪽과 남쪽 사이인 남서쪽에서 멈춘다. 그 길에 미래가 있고 남쪽의 땅은 훨씬 풍요롭고 영원히 고갈되지 않으리라." - 헨리 데이비드 소로 <달빛 속을 걷다> 중에서


그날 저는 4개의 미래를 본 듯합니다.

각자 걸어가고 있는 방향은 다르지만, 그곳이 각자의 삶에 남쪽 어딘가였던 건 분명합니다. 정원에서 우리를 반겨준 꽃과 나무들이 마음대로 자랐어도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존재로 빛나던 것처럼, 우리 삶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더 반짝이게 될 것입니다.

소로가 말한 것처럼 가본 적 없더라도 상상 속에서 가장 이상적인 길을 떠올리며 기꺼이 그 길로 가게 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년에도 1년간 삶의 수행평가를 거쳐, 소소정원에서 웃고 떠들며 만나게 될 성적표가 궁금해집니다.

그 성적표는 또 어떤 책의 모양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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