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역에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서둘렀고, 발걸음은 끊임없이 부딪히며 소음을 만들었다. 기차는 도착하고 떠났고, 누군가는 만났고, 누군가는 헤어졌다. 그런 곳에서는 어떤 감정도 오래 머물지 못하는 법이다.
그런데 그 한가운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스무 명의 남자들이 조금은 어색하게, 그러나 묘하게 질서 있게 서 있었다. 그들의 머리는 유난히 반짝였고, 햇빛을 받아 작은 별처럼 빛났다. 사람들은 힐끗 바라보다가도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바쁜 세상에서 이상한 장면은 그저 또 하나의 배경일 뿐이니까.
하지만 곧, 누군가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 웃음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제야 알았다. 그들의 머리 위에는 하나씩 글자가 적혀 있었고, 그 글자들이 모여 하나의 문장이 되어 있었다. 아주 단순한 문장,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문장.
누군가는 그것을 유치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으며 키득거렸고, 누군가는 고개를 저으며 지나갔다. 하지만 그 문장은 분명히 한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였다.
그녀는 처음에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멈춰 섰다. 그리고 문장을 읽었다. 한 글자씩, 천천히. 이해하는 순간, 그녀의 얼굴이 무너졌다. 아니, 무너진 것이 아니라—열렸다.
그녀는 웃기 시작했다.
조용한 미소가 아니었다. 참으려 해도 참을 수 없는, 온몸이 흔들리는 웃음이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쳐다보았고, 그녀는 그런 시선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웃음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그 한 사람을 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군중 속에서 한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그는 특별히 멋진 차림도 아니었고, 영화처럼 완벽한 타이밍을 계산한 것 같지도 않았다. 다만 조금 긴장한 얼굴로, 그러나 분명한 눈빛으로 그녀 앞에 섰다.
“나랑 결혼해 줄래?”
그녀는 대답하기 전에 한 번 더 웃었다. 마치 이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역은 여전히 똑같이 시끄러웠다. 기차는 여전히 들어오고 있었고, 사람들은 여전히 바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분명히, 어떤 것은 바뀌었다.
나는 그 장면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다. 아마도 나는 그날, 하나의 비밀을 엿본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사랑을 설명하려 할 때, 늘 거창한 것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어쩌면 사랑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서로의 어리석음을 이해하고, 그 어리석음 속에서 함께 웃을 수 있는 것.
그것이면 충분한지도 모른다.
나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스무 개의 머리는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고, 문장은 온전했다. 다행이었다.
왜냐하면, 그 문장이 조금이라도 달라졌다면
아마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