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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아 Jan 07. 2023

대학원 학술 문해력 교육에 대하여

"글쓰기는 가르칠 수 없는가?"라는 질문을 넘어

1. 언젠가 영어로 논문쓰기 강좌 수강생들께 질문을 했다. 논문쓰기를 체계적으로 배운 분이 있는지. 대부분 대학원생이었고, 전공은 다양했다. 예상대로(!) 단 한 사람도 논문쓰기를 배워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분명 이 샘플에는 큰 문제가 있다. 영어논문쓰기를 배우러 온 사람들이니 안 배운 게 당연하지 않나. 하지만 두 가지 점에서 이 대답을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1) 한국어 논문쓰기도 배워본 적이 없고,

 (2) 논문쓰기 강의를 안 들었다기 보다는 그런 수업이 없어 못 들었다는 취지였기 때문이었다. 


2.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있다. 그 누구도 아닌 리터러시 연구자/교육자들이 종종 던지는데 사실 내겐 참 이해하기 힘든 질문이다. 가르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불)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가르칠 수 있는 데까지 가르치고, 어느 정도 수준에서 각자의 길을 가도록 하는 실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3. 수사와 글쓰기 교육의 주요 이론 중 하나이며 내가 강의에서 주요한 프레임워크로 사용하는 장르 이론(genre theory)에 의하면 논문쓰기는 일종의 사회적 관행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학술적 글쓰기와 같이 구조와 기능이 복잡한 장르는 명시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필수라는 것이 장르 이론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SFL을 기반으로 장르이론을 정초한 Martin도, 제2언어 쓰기교육에서 한 획을 그은 Swales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한다. 


나에게 걷기와 쓰기는 분리될 수 없는 활동이다.


4. 모든 면에서 존경스러운 지도교수와 함께 공부했음에도 글쓰기는 외로운 작업이었다. 텍스트에 대한 피드백은 종종 받았지만 연구, 논문, 학계, 논쟁, 소통 등에 대한 큰 그림을 배우진 못했다. 그는 논문을 함께 쓰는 친구이자 셰르파였지만 논문이라는 장르를 꼼꼼히 이해하고 분석하여 나의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명시적으로 가르쳐 주진 않았던 것이다. 


5. '아니 그런 걸 누가 가르쳐 주느냐, 네가 알아서 하는 거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답답해 이 주제와 관련된 논문을 썼고, 직접 강의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별것 아닌 강의이지만 '대학원생 모두가 들어야 하는 강의'라는 찬사도 적잖이 들었다. 이런 응원의 목소리 덕에 지금도 강의를 계속하고 있다. 


6. 오랜 시간 영어논문쓰기를 가르치면서 천 명을 훌쩍 넘는 대학원생과 연구자들을 만났다. 그 중 압도적 다수가 대학원생으로서 논문읽기와 쓰기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대학 담장 밖 논문 관련 사교육의 발흥은 참으로 개탄할만한 일이지만, 학술리터러시 교육이라는 대학교육의 핵심목표를 대학 스스로 외면한 결과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7. 법률가는 법률가처럼 말하고 쓸 수 있는 사람이다. 행정가는 행정가처럼 말하고 쓸 수 있는 사람이다. 연구자는 연구자처럼 말하고 쓸 수 있는 사람이다. 결국 다양한 영역에서의 전문성은 그 분야의 지식을 소화하여 말하고 쓸 수 있느냐 아니냐가 결정한다. 


8. 지금의 대학이 학생들이 지적 세계를 구축하고 그에 대해 말하고 쓸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꼭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9. 이런 단상을 남긴 게 여러 번이다. 적어도 지난 10년 간 대학의 학술리터러시 관련 강의와 정책에서 이렇다 할 변화를 목격하지 못했다. 매학기 강의에 깊이를 더하는 일부 교수자들의 개인적 시도 외에는 말이다. 그저 내가 과문한 탓에, 활동영역이 좁디좁기 때문에 보지 못 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삶을위한리터러시 #학술리터러시 #영어로논문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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