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이아 Mar 16. 2023

"인간은 대체될 것인가"란 질문 대신

인스피아 김지원 기자님(a.k.a. 김스피님)과의 인터뷰 후기

0. "요는, 그 누구도 대체되어서는 안 되는데 위협을 느끼게 만든 사회에 대해서 저항할 필요가 있는 거죠. 지금은 거의 모두가 그런 걱정을 하고 있어요. "챗GPT를 잘 사용하면 된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건, 마케팅 담론이지 사실은 사회의 담론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담론은 “어떠한 기술 변화에도 모두의 존엄을 지켜야 한다”가 되어야죠. “신기술 잘 써서 살아남아라”가 아니라요."


인터뷰 전문 보기: https://stib.ee/GVB7


1. <인스피아>를 발행하시는 경향 김지원 기자님(a.k.a. 김스피)과 나눈 이야기입니다. 소위 '생성 인공지능'의 시대에 리터러시를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에 대해 자유롭게 대화했고, 기자님께서 훌륭하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2. 인터뷰 장르의 특성상(이라 말하고 '인터뷰이의 모자람 때문에'라고 읽습니다) '틈'이 많은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 최근 AI기술에 대한 '호들갑'에 대해 조금은 차분하게 짚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스피아'라는 최고의 뉴스레터를 엮고 계신 기자님이 인터뷰를 진행해 주셔서 즐겁게 임했습니다.


3. 딴 이야기이지만 언론과 인터뷰를 해서 즐거웠던 기억이 좀처럼 없습니다. 제가 의도한 바를 적확한 맥락에서 사용해 주신 분도 계셨지만, 필자가 원하는 자리에 욱여 넣어 제 이야기가 우스꽝스러워지는 경험도 여러 번 했고요. 이런 기억 때문에 긴 인터뷰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는데, 평소 깊이 있고, 오래 '해찰'하며, '표정을 담은' 글을 써 오신 기자님의 궤적을 알기에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부족한 이야기 들어 주시고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4. 제가 몇 군데 발췌를 해 보려 했는데, 기자님께서 발췌하신 부분이 다 너무 제 마음이어서 슬쩍 가져와 보았습니다. 


"기본적으로 챗GPT는 ‘요청’에 대해 답을 주는 방식으로 되어 있어요. 인간이 챗GPT랑 ‘대화’를 한다고 할 때 ‘상대방’의 의견이나 정서, 마음같은 것들에 대해 근본적인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정답을 얻고 싶은 것이죠."


"저자성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가장 본질적일 수 있는 부분은, “책임을 진다”는 부분이예요...책을 자기 이름을 달고 썼다고 하면, 이 사람은 암묵적으로 이런 얘길 동시에 하고 있는 거예요. ‘이건 내가 얘기 하는 거야. 내 생각이야. 불만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책임질거야.’"


"제겐 개인적인 고집같은 것이 있어요. 제가 지금까지 냈던 단행본들을 경어체로 썼는데요. <영어의 마음을 읽는 법>의 경우엔 인지언어학과 관련된, 학문적인 성격이 뚜렷한 책인데 왜 경어체로 쓰냐고 주변에서 묻더라고요. 차라리 경어체를 빼고 ‘일반적으로’ 쓰는 게 훨씬 더 ‘전문적이고 진지한 책’처럼 보일 것이라는 거죠.


하지만 저는 항상 제가 글을 쓸 때 인간 대 인간으로서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거든요.저는 평소에도 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나 초등학생들한테도 반말을 하지 않고 모두 존대를 해요. 이게 저의 스타일이예요. 일상에서도 그렇고 책에서도 그런 것이죠. 


아마 김스피님도 그런 부분을 못느끼실 수도 있지만, ‘얼굴이 있는 글’의 한 표지로서 경어체를 쓰고 계신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책을 쓰고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지금 당신에게 직접 말을 걸고 있다”라면서요."


"만약 김스피님이 그런 기사를 직접 아카이브를 뒤적거리고 헤매면서 썼다고 하면, 그 과정에서 직접 읽으면서 알고 느끼게 되는 부분이 있을 거거든요. 최종 글엔 꼭 담기지 않더라도요. 예를 들면 분명히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통일 정책을 상세히 비교하는 글을 쓰려고 하면 힘들고 짜증 날 거예요. 그런데그걸 하는 사람의 몸에, 뇌에, 읽기의 시간이라는 경험이라고 하는 게 쌓이거든요.힘들어도 읽으면서 뇌가 변하고 생각이 변하죠.‘어 김영삼 대통령이 이런 일도 했었네?’ ‘당시 이런 기사도 있었네?’하면서 몰랐던 것을 새삼 눈치챌 수도 있고요.


챗GPT에 모든 것을 맡기게 되면 이런 ‘경험’들은 모두 다 잃어버리게 되는 건데 이런 측면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주어진 시간 안에 ‘있어 보이는 산출물’을 얼마나 많이 뽑아낼 수 있느냐, 이 논리에 포섭이 된 거죠."


사진: Unsplash의Priscilla Du Preez


5. 김지원 기자님 말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


"너무 올드해보이지만, 사실 인스피아 글들은 매회차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손글씨로 쓰고 그걸 나중에 컴퓨터로 옮겨 적는 것이 습관이 되었어요. 손글씨에 억지로 아우라를 부여한다기보다는, 실제로 초반에 컴퓨터로 다 쓰다보니까 나중에 흐름이 꼬여서 타자는 빠르지만 결국 처음부터 다시 써야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전체적인 틀, 구성이 중요한 글들의 경우엔 손글씨로 쓰는 편이 빠르구나...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여전히 독서노트나 SNS에 올리는 글, 단상 등은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적고 있습니다. 아이디어를 정리할 땐 녹음을 쓰는 경우도 있고요. 말씀하신대로 이런식으로 자기만의 다양한 글쓰기를 체험해보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편지’에 대한 말씀에 정말 공감합니다. 저도 처음 뉴스레터를 시작할 때 뉴스레터 역시 하나의 ‘장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요.


기존의 인터넷 텍스트 생태계(포털 뉴스, 블로그 등)가 워낙 엉망이다보니 ‘과연 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읽어주는 독자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다들 제목만 읽고 내려서 댓글을 달고 싸우고요. 저는 그런 말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닌데 뭔가 마음 속에 있는 궁리는 백분의 일만 전달하고 독자와 전혀 소통이 안되는 느낌이어서 참 답답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제목으로 눈길을 끌고 내용은 거의 없는 기사가 댓글이 수천개가 달리고 성과지표도 더 좋으니 진짜 누군가가 읽어줄만한 깊은 글을 쓸 욕심도 사라지죠. 


한편 뉴스레터는 일단 적극적으로 당신의 글을 읽어보고 싶다는 동의를 한 사람들이 받아보는 것이기 때문에, 포털에서 아주 많은 글들 가운데 하나를 읽는 거랑은 달리 뭔가 여기서는 이제 “이 사람이 진짜로 나를 향해서 글을 썼구나. 내가 이제 읽어보자”라는 마음가짐이 된달까요. 저도 독자로서 뉴스레터를 이것저것 받아보고 있는데 그런 느낌, ‘얼굴이 보이는 글’을 읽는 재미가 있어요. 물론 정보성 큐레이션과 에세이 등의 차이는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론 홍보성 글이 아니고 개인이 진심을 담아서 쓴 것이기 때문에 조금 더 친근하게 읽게 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물론 모든 기사가 편지문처럼 쓰여야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요. 나름의 목적에 따른 적합한 문체가 필요할 것입니다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 이제 앞으로 챗GPT로 인해 ‘얼굴 없는 글’들이 엄청나게 많이 생산이 되고 한층 더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게 될 텐데 적어도 그럼 기사들 가운데서도 조금 더 다양하게 ‘얼굴이 있는 글’이 생산되어도 좋지 않을까. 기존의 칼럼도 조금 더 자유분방하고 다양화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예전에 어떤 책에서 이런 대목을 읽고 너무 좋았거든요. 20세기 초반 어떤 작가의 아버지가 시골 의사였는데 매일 아침 종이 신문이 집에 배달오면 가장 먼저 칼럼 면을 펼쳐서 책상 옆에 잘 붙여두곤 이렇게 중얼거렸대요. “자, 오늘은 ㅇㅇ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한번 볼까?...” 꼭 아는 사람이 놀러와서 수다떠는 것 같잖아요. 궁금해할만한 재미난 이야기 보따리를 안고서요. 저는 지금도 얼마든 이런 글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실제 시사 유튜브 구독자들의 경우 이런 마인드로 구독자들이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가 이번엔 이 이슈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할까?’ 궁금해하면서 알림을 기다릴 수도 있는 거고요.


왜 이렇게 제가 말을 많이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편지라는 키워드가 너무 좋았어서 뉴스레터와 연결지어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 어쩌면 현재 진짜 중요한 것은 ‘챗GPT에게 질문하기’가 아니라, ‘챗GPT에 대해 질문하기’일 수도 있겠다고요.


그리고 이런 ‘챗GPT에 대해 질문하기’를 계속해가기 위해서는, 책을 계속 읽고 낯선 사람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서로 나누고 비효율적인 궁리를 하고 해찰하는 삶을 계속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단지 챗GPT를,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멋진 도깨비방망이처럼 보는 대신요."


인터뷰 전문 보기: https://stib.ee/GVB7

작가의 이전글 읽기와 쓰기의 전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