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크리틱 입문자들을 위한 '대가' 직강
제6회 성균 국제 문화연구 연례 포럼: 포스트디지털 시대의 문학문화와 독서 기조강연의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포스트크리틱에 관심이 있지만 저처럼 완전 입문자인 분들께 매우 유용합니다.
1. 사회학자 지젤 샤피로(Gisèle Sapiro)가 말하는 두 부류의 대중: (1) 텍스트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고 거리를 두는 능력을 갖춘 '문학적 독자' 그리고 (2) 식별과 동일시를 기반으로 독서하는 '노동계급 독자, 여성, 그리고 청소년'. 하지만 이와 같은 대립적 분류는 이미 유통기한을 다했음.
2. 포스트 크리틱은 "비평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잘못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영감받은 흐름. 포스트크리틱이 크리틱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함.
3. 포스트크리틱의 네 가지 방향
(1) 보다 광범위한 개념적 어휘를 만들어 가는 작업: 기존의 비평과 비판이론의 주요 개념을 넘어서는 개념적 자원들을 생산하는 일이 중요.
(2) 해석과 문학적 경험을 다시 연결하는 것. 인지적인 것과 감정, 감수성, 사고 방식 등을 상호연결해야만 문학적 의미를 정교하게 밝혀낼 수 있음.
(3) 예술 작품의 행위성(agency)를 인정하는 것. 거슬러 읽기(reading against the text)와 결을 따라 읽기(reading with the grain) 모두를 포괄해야.
(4) '사회화된 문학'의 고려. 문학을 자본주의나 제국주의의 증상으로 분석해 내는 것에 반대하지 않음. 다만 문학은 사회적 행위자로서 사회 내에서 특정한 행위를 수행함. 그리고 이 행위는 다양한 행위자들과 연결되어 있음. (예: 작가, 출판사, 에이전트, 독자, 도서관 등) 이와 같은 사회적 맥락 안에서 문학의 위상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함.
4. 시카고 대학교 출판부에서 출간될 신간 『선택적 친화력(Selective Affinities)』은 엘리트주의적 이분법에 의존하지 않고 타인과 교류하고 비평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음. 사회 이론가 사이먼 수잔(Simon Susen)의 영향을 받은 저작임.
5. 『훅트(Hooked)』에서 매혹(enchantment)의 경험이 할리우드의 꿈의 세계에 갇힌 노동계급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 바 있음. 이는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에 매료된 퀴어 이론가에게서도 나타남. 타르코프스키의 난해한 영화에서 새로운 감흥을 얻는 것 또한 일종의 '조율(attunement)'임.
6. "우리 직업이 평범한 인간들의 관심사를 위한 공간을 조금도 찾을 수 없다면, 그 직업은 사라져 마땅하다."는 나의 친구 찰스 모이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함.
7. 문학 연구는 계급적임. 와토바가 언급한 이러한 태도는 바르트나 푸코 같은 20세기 중반 비평가들과의 거리를 강조함. 바르트가 글쓰기를 직접 목적어가 없는 자동사(intransitive verb)로 지칭했을 때, 그것은 누구에게도 직접적으로 향하지 않는다는 뜻이었음. 푸코 역시 작가는 할 말이 없다고 주장함. 제팡에 따르면 이러한 정서는 오늘날 문학이 쓰이고 읽히는 방식과 근본적으로 어긋남.
8. 한때 고전이었던 '저자의 죽음' 에세이가 퇴색한 것은 현재의 미디어 생태계를 고려하면 전혀 놀랍지 않음. 조이스 캐럴 오츠가 끊임없이 트윗을 올리고, 주노 디아즈의 작품이 성추문 의혹으로 세계 문학 선집에서 제거되는 시대에 저자가 부재하거나 무관하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움.
9. 문학은 그 효과(effect)와 함께 존재함. 정치적 해석은 대개 텍스트의 기원, 저자의 인구통계학적 특성, 혹은 그들이 속한 거대 사회 구조에 호소함. 돈 드릴로의 소설은 신자유주의를 옹호하거나 전복하는 것으로 해석됨. 하지만 "그 독자들은 그 작품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라는 질문은 사회적 의미와 효과를 고찰할 때조차 거의 다뤄지지 않음.
10. 독자들이 심미적 즐거움이나 자기 이해를 위해 소설을 읽는다면, 이러한 동기들은 비판적 읽기가 승리하도록 설계된 게임 규칙에 의해 부적절한 것으로 치부됨.
11. 가치 판단은 불가피함. 가치 판단에 대한 거부는 계급 구조에 대한 저항의 한 형태였음. 그 취지에는 전적으로 동의함. 구체적인 판단에 대해서는 논쟁할 수 있음. 하지만 서열을 매기는 행위 자체는 피할 수 없음. 문제는 우리가 서열을 매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떤 근거로 어떻게 하느냐임. 우리는 책, 영화, 심지어 스파게티를 고를 때도 무한한 선택지 앞에서 더 나은 것을 선택하려 함.
12. 가치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것이 독자들을 평등하게 대우하자는 주장과 모순되지는 않음. 대칭성이 곧 급진적 무관심이나 중립을 의미하지는 않음. 우리 모두는 각자의 애착에 매여 있음. 문학 학자로서 무엇이 우리를 매료시키느냐는 당연히 우리가 무엇을 가르치고 읽는지에 영향을 미침.
13. 에밀리 디킨슨이나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가치를 옹호하기 위해 대중문화를 거부할 필요는 없음. 상업 문화에 대한 그러한 구시대적 혐오는 현대의 미적 창의성과 전혀 맞지 않음. 애플 TV의 <석세션(Succession)>이나 <세버런스(Severance)>는 최근 몇 년간 나온 많은 문학 소설보다 뛰어난 수준을 보여줌.
14. 모든 비평가가 독자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주장은 보편적인 독서 스타일에 시사하는 바가 있음. "내 분석에 따르면 『반지의 제왕』 독자들은 인종주의적 판타지를 소비하고 있다"와 같은 단정적인 주장은 방법론적으로 의심받아야 함.
15. 정독은 결코 수용 연구를 대체할 수 없으며, 학자가 텍스트에서 발견하는 것이 반드시 독자가 얻는 것과 일치하지는 않음. 문학 분석의 전문가라고 해서 장을 보면서 오디오북을 듣는 사람의 생각과 감정까지 전문가인 것은 아님.
16. (포스트크리틱의 맥락에서 - 필자의 삽입) 모든 독자들이 던져볼만한 질문
(1) 이 텍스트가 왜 중요한가?
(2) 그것은 무엇을 하는가?
(3) 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4) 그것이 세상을 보는 나의 방식을 바꾸는가?
이상의 논의를 좀 더 상세히 보고 싶은 분들은 아래 저서들을 참고하시면 될 듯합니다.
『The Limits of Critique』
『Uses of Literature』
『Hooked』
열심히 하시진 않지만 트위터 계정도 있으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