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하니? 고양이 키우기가 얼마나 힘든데. 애들도 있는데 털도 빠질 거고 그럼 지금보다 청소도 더 자주 해 줘야 하고, 아프면 병원 데리고 다녀야 하고. 그 모든 걸 오빠가 책임지고 할 수 있어?”
남편에게 엄포를 놓긴 했지만 내심 반가운 제안이었다. 남편이 고양이를 키우자 제안한 데는 내 카카오톡 지인들의 프로필 역할이 컸다. 고양이를 키우는 지인 대다수의 프로필은 고양이 사진이 그들의 일상을 대신했고, 난 고양이의 매혹적인 눈빛에 반해 그 콩닥거리는 마음을 남편과 공유했다. 그때마다 남편은 시큰둥한 반응이었지만 예뻐 보였나 보다.
얼마 후 난, 남편에게 동물을 키우는데 필요한 책임과 의무를 설명한 다음 단단한 각오를 받고 인터넷 카페의 길냥이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길에 보이는 수많은 고양이를 모두 데리고 올 수는 없더라도 그중 한 마리에게라도 따뜻한 보금자리 등 의식주를 해결해 줄 수 있다면 고양이를 키우는 보람 또한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내린 결정이었다. 물론 함께 사는 남편 외의 13년생 큰아들과 19년생 작은아들에게도 동의를 구했다.
“우리 아들, 고양이 키우는 거 어떻게 생각해?”
이 한마디에 큰 아이는 초롱초롱 눈을 반짝이며 친구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는 고양이를 분양하는 게 아니고 입양할 거야. 어떻게 생각해?”
“분양은 뭐고, 입양은 뭐야?”
“일단 입양은. 우리 아들 길거리에 고양이 봤지?”
“아, 버려진 고양이들 데리고 오려고? 그럼 더 좋지! 대신 엄마, 나도 조건이 있어. 건강한 고양이였으면 좋겠어. 고양이 우리 집에 왔는데 이미 너무 아파서 치료도 못 받고 죽으면 내가 너무 슬플 것 같아.”
“아, 엄마가 그 생각은 못 했네. 알았어.”
아이와의 대화 후 고양이 입양 조건이 생겼다. 첫째, 사회화가 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새끼고양이일 것과 둘째, 건강한 고양이일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컷일 것. 마지막 조건은 둘째 아이의 조건이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조건에 딱 맞는 고양이를 입양할 수 있었다. 길고양이 어미에게서 태어난 새끼고양이인데, 어미와 1세대 새끼고양이는 분양자가 키우고 어미가 낳은 2세대 새끼 세 마리는 생후 두 달이 지나 젖을 떼고 입양을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난 분양자와 연락을 취한 뒤 다음 날 아이들과 함께 직접 생활하고 있는 곳을 찾아갔다.
“아이가 너무 작네요. 아, 예뻐라.”
“엄마 나도 만져볼래, 나도.”
천방지축 둘째는 고양이를 보자마자 만져보겠다며 난리를 피웠고, 난 귀여운 고양이의 표정에 넋을 잃고 있었다. 가장 침착한 건 함께 간 친정엄마와 큰 아이였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작고 귀여운 고양이가 ‘냐옹’ 거리며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한 후엔 미리 준비한 고양이 터널에 들어가더니 겁에 질린 듯 나오지도 않고 가끔은 ‘하악’ 거리며 곁눈질로 주변을 살폈다. 첫날밤부터 이튿날 늦은 오후까지 어미를 찾는지 사료도 먹지 않고 울더니 다음 날부터는 서서히 활기를 찾기 시작해 어느덧 우리 집에 온 지 두 달이 넘은 지금은 저세상 텐션으로 이젠 식탁 위는 거침없이 올라가는 최강 ‘개냥이’가 되었다. 2022년 10월 8일 3시경 태어난 우리 집 막내 ‘민규랑’(閔, 돌림자 奎, 랑 신랑의 ’랑‘) 우리 식구들의 뜻을 모두 아우르는 이름을 가진 새 식구다. 이 녀석의 도도한 걸음 뒤로 꼿꼿이 선 꼬리를 볼 때면 마음이 아프다.
“얘는 꼬리가 왜 이렇게 휘었을까?”
“아, 엄마. 이거 나 고양이 공부하면서 알게 된 건데, 규랑이 엄마가 길고양이였잖아. 길에는 먹을 게 없으니까 많이 못 먹었을 거 아니야. 임신한 고양이가 많이 못 먹으면 그때 태어난 새끼고양이 꼬리가 이렇게 휠 수 있데.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해서 그렇데. 불쌍하지? 우리 규랑이, 이제 우리 집에 왔으니까 많이 먹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