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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kind May 07. 2022

엄마이자 아내이며 농부인 나는 여자입니다

여성농업인들에게 제3의 장소가 되는 (사)홍성여성농업인센터

요즘 20대 친구들은 안 그럴지도 모르지만(안 그랬으면 좋겠지만) 나에게 많은 직업들이 남성 중심으로 연상된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사각지대에 있었던 직업은 농부가 아닌가 싶다. 특히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여성들이 그렇다. 농부라는 직업은 대개 그 집의 가장인 남성을 떠올리기 쉽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셨던 외가집을 떠올려보니 외할아버지는 농부셨지만, 외할머니는 그냥 외할머니였다. 분명 외할머니도 외할아버지와 함께 꼭두 새벽부터 논일, 밭일을 함께 하셨건만 나는 한번도 외할머니를 농부라고 . 직업인으로서 바라본 적이 없었다.


셍각해보니 제주도나 지방을 여행하면서 쉽게 보는 풍경 중 하나인 논이나 밭에서 일하는 할머니들도 그녀들의 직업을 농부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저 소일거리로 나와서 일을 하신다 정도로 생각하고 말았던 것 같다. 분명 이분들도 나의 외할머니처럼 농부일텐데 왜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무의식적으로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여성들에게 농부라는 직업을 가지게 해 준 적이 없다.


이런 나의 오래된 편견을 깨닫게 해준 계기는 충남 홍성에 있는 (사)홍성여성농업인센터 라는 존재를 알게되고 부터다.

충남 홍성군 홍성면 면소재 인근에 위치해 있는 이곳은 여성 농업인들의 공동체이다. 도시에서의 여성들이 직장과 육아 사이에서 전쟁을 치르고 산다면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여성들은 농부이자 엄마이면서 아내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동시에 마을 공동체를 위한 일꾼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홍성여성농업인센터는 1층과 2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1층은 공유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주로 음식과 의류 등을 나눔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공유냉장고가 있어서 불필요한 음식을 넣어두고 필요한 만큼의 음식을 가져 갈 수 있다. 농사 이외에도 매끼니마다 가족의 식탁을 책임져야 하는 여성 농업인들은 반찬거리가 고민일 수 밖에 없다. 도시처럼 집근처에 마트가 있지 않기 때문에 필요할 때 언제든지 가족의 먹거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여성농업인들에게는 이런 공유 냉장고가 대형마트나 새벽배송 만큼이나 요긴한 존재가 아닐까  

공유 냉장고 옆에서는 다양한 정보들을 공유하는 공간이 있다.

방문한 날에는 농기구 대여에 대한 안내와 주요 프로그램 이용안내에 대한 게시글이 있어서 농사를 짓는 농부로서의 여성의 존재를 다시 한 번 느낄수가 있었다.


"여성 농업인들이 서로의 귀중함을 격려하고

하고 싶었던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입니다"


안내 게시판 하단의 문구가 이 공간이 어떠한 곳인지 명확히 설명해 주고 있었다.


게시판의 뒤쪽으로는 음식물이 아닌 다양한 물건들도 나눔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문제집과 아이들 장화에서 하이힐, 청바지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시골 여성들은 농부이기 전에 엄마이기 때문에 자녀 교육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하지만 도시처럼 학원이 많은 것도 아니고 교재 하나도 쉽게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에 이런 나눔은 농사에 바쁜 엄마들에게 큰 힘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장화나 운동화, 샌들같은 신발류의 나눔도 제법 있었다. 도시와 농촌의 구분을 떠나 대부분의 가정은 엄마가 아이들의 옷가지를 챙긴다. 도시에서는 온라인 배송이 잘 되어 있고 여차하면 쇼핑하러 가면 되지만 그런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환경이라면 쑥쑥 자라는 아이들에게 제때에 맞는 옷가지나 신발을 못 챙겨 줄 확률이 클 수도 있을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의 옷가지나 신발 나눔은 이런 공동체가 많이 활성화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청바지가 나눔된 공간을 지나 뒤로 돌아들어가면 재활용 매장이 나온다.

안쓰는 물건들을 두고 필요한 물건을 무료로 가져가는 공간이다.


 자켓에서 겨울 잠바까, 가방, 동화책까지  아이들의 다양한 옷가지들와 책거리등이 나눔되어 전시 중이었다.

그리고 안쪽에 업소용 냉장고 두개에 다양한 음식물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공유가 아닌 개인의 음식물들을 보관하는 공동의 창고로 보였다. 아마도 공동 구매한 식재료로 다함께 만든 음식물들을 각자 먹을만큼 소분해서 보관하고 있는 공간으로 보였다.  

그 외에도 자기계발이나 여가활동과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었다.

건물의 2층은 아이들의 돌봄공간으로 쓰인다. 방문한 날이 센터가 쉬는 날이라서 해당 공간을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홍성여성농업인센터에서 길을 건너면 홍성 초등학교가 있다. 초등학교에서 수업이 끝난 아이들이

해당 공간에서 다양한 놀이를 하면서 안전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다.


농촌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농사'만' 지으면 되는 남편과 달리 집안일과 아이들, 마을의 대소사까지 챙겨야 하는

수퍼우먼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내가 외할머니를 농부라고 생각하지 못했듯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녀들의 힘든 하루를 제대로 들여다 보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가족들마저 그럴지도 모른다.


이러한 여성농업인들이 농부로서의 고충과 엄마로서의 걱정, 여자로서의 고민을

말하고 나눌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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