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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단 Feb 14. 2023

도배 벽지 배우는 나날

커터칼 한 번 긋고 분질르는 기분이 좋은 Day1



벽면에 연습용 소폭 3장을 붙였다. 아, 난 도배 천재. 하면서. 왜냐, 우리는 모두 도배의 천재가 될 수 있습니다. 50㎜ 잘랐다고요? 70㎜ 찢겼다고요? 괜찮습니다. 선생은 처음부터 말한다.


“수정을 하면 됩니다.”


그래서 이 작업은 누가누가 한 번에 완벽히 잘 붙이느냐가 아니다. 로스는 아직 우리가 신경 쓸 단계는 아니고, 최대한 풀을 퍼발라서 축축한 뒷면을 만들고 바로 접어 묵힌다. 풀칠의 잘함 기준은 풀 붙은 데와 풀 안 붙은 곳이 달라붙을 때, 인 것인가? 반대인 것인가? 헷갈려도 상관 없다. 풀을 바를 때 사람들의 성향이 은근 묻어나는 것이 즐거웠다. 어떤 이는 풀의 양에 인색하고, 어떤 이는 지나친 꼼꼼함을 추구한다. 하지만 저런 성향들이 각기 모이고 쌓여 개성이 되겠지. 고쳐 쓰는 재주란 없다. 


그렇다면 개성이란 결국 무엇이겠습니까?


우마사다리(왜 이름이 이따윌까?)에 올라서 커터를 거듭 잘라내면서 10㎜을 완성했다. 그리고 왼쪽의 미미선(왜 이름이 이따윌까?2)을 맞추는데 5~10㎜이 되는 모양인데 두꺼워도 상관없다. 너비가 일정하면 됩니다. 흐음, 하고 그러면 미미선으로 2300㎜을 고루 맞추는 기법은 위쪽 끄트머리를 삼각으로 접어서 미미선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왼쪽으로 눌러주는 것이다. 나는 첫 번째와 세 번째 벽지를 찢어먹고 말았는데 처음은 모서리에 풀 뭉치가 져서 커터를 썼어도 찢길 운명이었고, 세번째 벽지는 모서리를 끼고 있어서 칼받이를 한 방향으로만 사용할 수 없었고, 매한가지로 풀두덩이였기 때문에 커터가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세로로 재단(같은 용어인가?)을 하며 죽-와 칼을 같이 그을 때 이게 스피드구나 싶었다. 


내가 앞으로 준비하게 되는 도배기능사 시험은 과정이 까다롭고, 현장에서는 쓰이지 않는 방식의 테스트를 한다고 했다.(운전면허와 유사하지 않은가?) 그리고 1년에 4회밖에 시험을 치르지 않고, 게다가 신청 경쟁률이 무지 치열한데, 그에 비해 합격률이 2~30%로 낮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시험을 볼 것이다. 기술적 자격증을 지님으로 무언가를 증명하려하는 심사보다는, 이 일에 열중할 이유 중 하나를 시험으로 만드는 것. 나는 시험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의 상태가 고르다면 시험도 중요 이유로 작용할 수 있다고 여긴다. 


아무튼 시험장에서 사용하는 크기의 방에 도배질을 해본 첫 소감은, 기술은 다른 기술에 쉽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며, 처음 배운 기술의 즐거움에 다른 기술을 접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목공에서 안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실수가 나도 고치면 되고, 고칠 수 없으면 새 목재를 쓰면 된다였기 때문이다. 그 부분에 있어 우리는 누군가의 부족한 기술이나 부주의나 오차를 탓하지 않는다. 오늘은 모서리께에 풀을 덕지덕지 발라 깨끗하게 그어지지 않았을 뿐, 그 부분의 풀을 빼고 시간을 좀 두고 그으면 깔끔하게 될 수 있었겠지, 하며 나는 다음에 이어질 수업을 상상한다. 


그리고 도배를 할 때에는 마치 목공의 작업대처럼 자기 영역 아래에서 대부분의 일을 해결한다. 풀칠을 하고 옆으로 엉덩이를 이동하는 게 아니라 벽지를 끌어다 당긴 뒤 그곳에 칠하고 다시 접는다. 모든 작업을 한 자리에 끝내고, 다음 단계의 작업 또한 다음 자리에서만 위주로 한다. 그러니까 앉아서 재단과 풀칠을 하고 우마에 올라 바르기 시작하며 윗부분에 여유를 두고 붙이고 정배솔로 쓴다. 그리고 미미선을 맞춰서 다음 것도 옆에 붙인 뒤 마찬가지로 하고. 아마 오늘은 하나씩 해서 풀투성이에서 칼질이 엇나갔지만 이렇게 붙이기 먼저하고 자르기를 다음에 하면 시간을 더 줄이고, 찢기는 현상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내일 시험해보도록 해야겠다.


저번 영등포시장의 아저씨가 커터칼 100세트를 주면서 아끼지 말고 팍팍 쓰라고 했다. 이번의 선생도 같은 말을 해서, 정말 팍팍 잘라가며 썼다. 그리고 내 도배칼, 확실히 일제의 값을 하는 것 같다. 생긴것도 아주 마음에 든다. 내 물건이라는 애착은 진즉에 생겼지만 더욱 강화되고 있다. 하루 빨리 영등포시장 아저씨에게 가서 쇠잣대 등을 얻어와야겠다. 


그리고 확실히 육체 노동은 육체 노동인 것이, 별 한 일 없다고 생각했지만 등이 축축해질 정도로 땀을 흘렸다. 아마 무거운 것을 들고 날라 힘들었다기보다 계속 긴장을 풀 수 없었기에 신체적으로 지친 듯 하였다. 내일부터는 오전, 오후 모두 실습 과정을 시작하기 때문에 기대하고 있는데 확실히 육체노동 특유의 당이 당기는 것, 담배를 피우고 싶은 것은 몹시 참기가 어려워 이에 대한 방안도 갖춰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 따로 있어도 일의 작업의 한타가 끝나고 쉬는 거기 때문에, 불규칙한 휴식(육체 노동의 특성상 어쩔 수 없지만)도 지침에 한 몫 더 하는 듯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손을 직접 사용하기 때문에 풀에 담갔다 물에 담갔다 풀을 발랐다 옷에 훔치다를 반복하다보니 하루 지나지 않아 손이 건조한 게 느껴져, 살며 처음으로 핸드크림을 발라야겠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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