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는 별을 돌아다니며 여러 어른을 만난다. 그중에는 술꾼이라는 사람이 있다. 술꾼은 매일같이 술을 마신다. 어린 왕자가 왜 술을 마시냐고 물으면 “잊으려고. 부끄러운 것을 잊으려고.”라고 답한다. 어린 왕자는 술꾼에게 무엇이 부끄럽냐고 묻는다. 술꾼이 부끄러운 것은 바로 술을 마시는 이 행위다. 술꾼은 부끄러운 일을 잊으려고 부끄러운 짓을 한다. 어린 왕자는 술꾼을 보며 ‘이상한 어른이네.’하고 별을 떠난다.
어린 왕자는 지구에 도착한다. 지구에서 아토피가 있는 사람을 만난다. 이 사람은 계속해서 몸을 긁고 있다. 어린 왕자는 왜 긁냐고 묻는다. 이 사람은 대답한다. “긁지 않으려고.”
긁지 않으려고 긁는 사람. 이 사람이 바로 나다. 어릴 적에는 아토피를 치료하기 위해 안 해본 방법이 없었다. 잠잘 때 무의식중에 긁지 않으려고 장갑도 끼고 자봤고, 피부에 좋다는 음식은 모조리 먹었다. 유산균부터 역한 냄새가 나는 야채수까지. 어느 집 누구는 고기를 먹을 때 무조건 상추쌈을 같이 싸 먹었더니 아토피가 나았다고 했다. 엄마는 그 말을 들은 다음부터 고기를 구울 때 나에게 상추를 하나씩 쥐여주었다. 아토피를 낫게 해준다는 황토 내복까지 입고 겨울을 났으나 드라마틱한 효과를 가져다준 방법은 없었다. 가끔 약을 바르면 조금 나아졌을 뿐이다. 그것마저도 센 스테로이드 연고여서 ‘자꾸 바르면 내성이 생긴다, 햇빛이 있을 때 바르면 착색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점점 사용량을 줄였다.
피부 어딘가가 가렵다는 것을 처음 인지하는 때가 언제인지는 매번 기억하지 못한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샌가 벅벅 하는 소리가 들리고 내 손은 열심히 몸을 긁고 있다. 아차 싶은 마음에 손을 뗀다. 그러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몸이 가렵다는 느낌이 든다. 긁고 싶어서 안달 나는 그 느낌이 너무 싫다. 몸이 더워지면서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든 그 느낌이. 긁으면 더 간지러워질 것을 알지만 이 느낌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또 긁는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긁을 때는 어떠한 안도감, 희열이 느껴지기도 한다.
간지러울 때 참아야 더 간지러워지지 않는다는데.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나에게 간지러워지지 않으려면 그냥 긁는 방법밖에 없다. 그것도 피가 날 때까지 세게 긁어야 한다. 피가 날 때까지 세게 긁고 나면 간지러운 느낌이 조금은 사라진다. 피부가 까지고 따가워져야 더 이상 가렵지 않다. 피가 나고 딱지가 앉으면 이제 그만 긁어야지 하는 경각심도 생긴다. 그렇게 생긴 버릇이다. 긁지 않기 위해 더 세게 긁기. 나쁜 것을 알면서도 끊기 어려운 안 좋은 버릇이다.
모든 문제에 근본적인 해결점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좋은 음식을 먹고, 꾸준히 운동하고, 생활 습관을 바꿔야 긁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그리 합리적이지 못해서 나는 그냥 긁고 만다. 긁으면 또 간지러워질 거고 그러면 또 긁지 않기 위해 긁으면 된다. 해탈한 건지 독하지를 못한 건지, 내 피부가 둔감해지는 그날까지 이 버릇은 계속 되풀이될 것 같다. 어린 왕자가 지구에 도착해서 이런 나를 만난다면 ‘이상한 어른이네.’ 하고 지구를 떠날지도 모르겠다.
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