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곽그루 Sep 22. 2022

우리는 왜 배추농사를 짓는가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게 절임배추 만드는 곳



 홍감자를 비워낸 밭은 배추로 채워진다. 늘 윗지방보다 이르게 시작하는 진도에서는 보통 8월에 파종해서 8월 말이나 9월 초에 김장배추 모종을 밭에 심는다.


 할머니부터 시작된 농사. 엄마부터 시작된 진도농부. 그리고 지금의 고춧가루와 절임배추로 자리잡게 된 것은 나의 가지치기가 크다.


 나름 대학에서 경영을 공부했고 선택과 집중의 중요성을 알기에, 8년 간의 지난 성과 중 단연코 1등이라 할 만한 것은 이 가지치기라고 생각한다.




 가지치기는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선택의 이유가 있어야 하고 내가 판단하기로 진도농부의 본질은 고객이며 이 고객의 본질은 '신뢰'였다.


 진도농부가 우리의 고객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가치는 무엇일까? 주저없이 신뢰였다. 가격 상관 없이,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우리를 기다려주시는 분들. 그 분들이 깐깐하게 따지고 고를 수 있는 품목들.


 그렇게 남은 것이 고춧가루와 절임배추였다. 누군가에게는 사시사철 마트에서 집을 수 있는 공산품 같은 식재료. 누군가에게는 우리집의 1년 반찬을 책임질 귀한 생필품. 한 마디로 고춧가루와 절임배추에 대한 관여도가 높은 사람들이 내가 정의한 진도농부의 고객이다.




 지금의 진도농부를 있게 해 준 것은 엄마가 올린 하소연 속 '농약 안 친 그 배추'를 처음 택배로 주문한 누군가였다. 아니, 배추가 원래 이렇게 달았단 말인가요? 인위적으로 크기와 무게만 키운 배추가 아니라, 작고 벌레가 먹더라도 속이 노오랗고 달디단 배추가 우리의 경쟁력이 되었다.


 키우는 방식도 그러하지만 종자부터가 크지 않고 속이 노오란 '불암3호'를 고집한다. 올해도 역시 불암을 선택했다(불암3호와 불암플러스).




 올해부터는 무려 6천평의 밭에 배추를 심는다. 3,4천평을 심을 때도 사람이 없어 고생했는데 6천평이라니. 심지어 태풍은 왜 그리 자주 올라오는지. 땅이 마를 겨를도 없이 비는 왜 계속 쏟아지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번에 나눠 겨우겨우 심었다. 이웃동네 '월가리' 어벤저스 이모들이, 그루네 배추는 어떻게든 심어줘야 한다며 비가 오는데 우비를 입고 심어주셨다. 우리 부모님이 지난 20년 간 쌓은 것은 돈보다 사람이 맞나보다.




 올해 가을맞이는 유난히 힘겨웠다. 고춧가루가 끝나기도 전에 절임배추 시작이었다. 추석은 왜 이리 빠른지 와중에 밤새 기름도 짰다.


 엄마는 고추방아를 빻고, 아빠는 배추밭 물을 돌리고, 나는 기름을 짜는 날들로 9월이 채워졌다. 아직도 고추들은 붉은 색을 띄며 주렁주렁 달려있고, 목마른 배추들은 농부를 재촉한다.


 눈코뜰 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가 내일 모레가 10월이란다. 우리의 오랜 고객들과 약속했다. 올해 절임배추는 10월부터 예약을 받을게요.




 우리의 절임배추는 참 요란하다. 고춧가루와 마찬가지로 한 분 한 분 상담을 통해 이렇게도 만들고 저렇게도 만들어드린다.


 고춧가루는 고추의 매운 정도(우리집 고춧가루의 기본맛은 순한 편인데, 매운 맛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청양을 섞으시거나 청양만 주문하시기도 한다), 씨의 굵기(지역에 따라 굵고 거친 고춧가루를 선호하시기도 하고, 고추장용으로 아주 곱게 빻은 가루를 선호하시기도 한다), 색상과 씨를 뺀 정도(하얀 씨를 뺄수록 색이 진해지는데 개인적으로는 고추씨 안의 기름이 부드러운 풍미를 낸다고 생각한다) 등으로.


 절임배추는 배추의 크기(보통 8포기 내외로 들어가는데, 작은 것으로 10포기 맞춰달라는 분도 계시고 아주 큰 것을 원하시면 5포기에도 맞춰드린다), 절임 정도(일전에 70프로만 절여달라는 분도 계셨...), 푸른 잎의 양(의외로 겉의 푸른잎을 싫어하시는 분도 계시고 푸른 잎만 따로 떼어 우거지로 보내달라는 분도 계신다) 등으로.


 이렇게 다양한 요소를 조합해서 당신만의 고춧가루와 절임배추를 '맞춤 제작'해드리는 것이 우리 농장의 경쟁력이다.



 절임배추는 우리 가족에게 달콤한 악몽같다. 몸도 마음도 지친다. 추운 날 소금물을 만지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지만 그 보다 더 차가운 것은 이 배추가 부디 무사한 상태로, 무사한 시간에 우리 고객님들의 댁으로 도착하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는 내 마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년째 꾸준히 절임배추를 이어가는 이유는 힘들다는 이유로 그만둘 수 없는 우리 고객님들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사실 8년 전, 나를 진도로 이끈 것도 다름아닌 우리 엄마의 한 마디였으니. 여기서 그만 두면 다른 것이 아까운 게 아니라 우리만 믿고 기다려주시는 분들과의 인연이 아깝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배추밭으로, 고추밭으로 향한다. 이 배추들은 우리만의 것이 아님으로. 우리를 애타게 기다려주시는, 한눈 팔지 않고 1년 동안 기다려주시는 고객님들의 것이기에.


 진도농부의 맞춤 고춧가루와 맞춤 절임배추를 예약하고 싶으신 분들은 <진도농부 카카오톡> 친구추가 꼬옥 해주세요❤️

https://pf.kakao.com/_LxhxlbK







매거진의 이전글 진상도 손님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