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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그루 Sep 27. 2022

바빠죽겠다면서 분갈이를 했다.

겨울에도 죽지 않는 야자수 화분 분갈이 방법



 주말 내내 절임배추 어린 배추들에게 웃거름을 먹여주고 아주 잠시 짬이 났다. 물론 부모님께서는 여전히 배추밭에서 사시지만.



 내가 어마어마한 고양이 집사라면, 아버지는 어마어마한 식집사다. 우리가 밭에서 키우는 배추, 고추, 감자 뿐 아니라 애지중지 아끼시는 반려식물들도 많다. 오늘은 여름에 데려온 어린 야자 묘목들의 이사가 결정되었다. 미뤄두었던 일이다.


 이 녀석들은 그냥 야자가 아니다. 그 이름도 요상한 '워싱턴 야자'란다. 몇 달 전, 진도군 농업기술센터에서 함께 수업을 들었던 아저씨께서 무료로 분양해주신 귀한 아이들이다. 월동을 해서 한겨울에도 살아남을 수 있단다.



 첫 번째 준비물은 화분이다. 야자는 0번째 준비물이고. 당연하지만 화분 분갈이를 위해서는 이전보다 넓은 평수의 화분이어야 한다. 마침 화분을 두고 죽어나간 수 많은 식물들 덕분에 우리 야자들의 새로운 집이 꽤 많다.


 전주인이 나간 자리를 깨끗하게 비워낸다. 식물이 죽은 채로 방치된 화분들. 보기 좋은 화분들은 공간에 생기를 주지만 이렇게 방치된 화분들은 오히려 음산하고 우울한 느낌을 준다. 앞으로는 절대 죽이지 말아야지.



 사실 녀석들의 본가에서 데려올 때만 해도 상태가 꽤 좋았다. 고양이만 키울 줄 알았지, 농부라기에는 식물에 너무 무지했던 내 덕에 거의 죽어나가던 불쌍한 야자들이다. 특히나 이번 힌남노의 모진 비바람에 시한부 선고를 받은 녀석들이었는데, 감사하게도 황금손을 가진 아버지께서 살려내주셨다. 허준이 따로 없다.



 화분안에 남아있던 흙들도 모아두고, 농가라면 흔히 볼 수 있는(?) 쓰다 남은 상토들도 털어준다. 사실 우리 집에서는 상토를 함부러 굴리면 정말 큰 일이 난다. 스무 마리가 넘는 고양이들이 돌아가며 변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참변이 아닐 수 없다.


 그 참변에서 살아남은 귀한 상토들은 야자의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푹신한 이부자리가 되어 줄 것이다.



 화분에 똥싸지 마라, 고양이놈들아.



 비워낸 화분에는 1차로 굵은 흙덩어리들이나 나뭇가지 등을 앉혀준다. 모레는 안 된다. 물을 주면 금방 스으으윽 내려가기 때문이다.



 공장 개업식 때 받은 수 많은 화분들은 대부분 흙보다 많은 스티로폼으로 채워져있었다. 오늘 이 스티로폼들은 죄다 꺼내서 정리해주었다.



 바로 옆 잔디밭에 모아둔 죽은 잔디들도 깔아주었다. 우리 농장은 정말 버릴 것이 없다.



 1차로 바닥공사를 완료했으면 2차로 절반 정도 흙을 채워준다.



 자, 이제부터 두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자. 아기 화분에서 갓 꺼낸 묘목 혹은 모종들은 이렇게 뿌리가 얼기설기 잘 엉켜있다. 절대로 이 상태 그대로 심지 말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손으로 뿌리 아랫부분을 쿵쿵 눌러서 흙도 털어내주고 얽힌 뿌리들도 잘 풀어준다. 그렇다고 너무 우걱우걱 하다보면 뿌리가 구제불능으로 다칠 수 있다.



 꼼꼼한 아버지는 이 상태에서 아래 굵고 긴 뿌리까지 싹뚝 잘라내어 주신다. 그래야 잔뿌리들이 잘 뻗어나와 물과 양분을 쏙쏙 잘 빨아먹을 수 있단다.



 이렇게 굵고 기다란 뿌리도 잘라내어 주고, 아버지 표현에 따르면 '늙은 뿌리'도 잘라내어 준다.


 아, 아주 많이 나이든다는 것은 이 얼마나 서러운 일인가.



 잘 정돈된 야자수 묘목은 아까 절반 정도의 흙을 채워둔 화분 위에 예쁘게 앉혀준다.



 그 위에 흙을 채워두는데 여기서 또 주의할 점이 있다. 흙은 화분으로부터 3cm 정도 여유를 두고 꾹꾹 눌러 채워준다. 어떤 식물이던 생장점, 숨구멍을 막으면 그것은 곧 죽는다. 그러니 어느 정도 흙을 채우다가 중간중간 한 손으로 묘목의 몸통을 잡고 위로 끌어 올려 자리를 잘 잡아준다, 너무 숨막히지 않도록.



 중간중간 호기심 많은 고양이들이 어슬렁거린다. 부들부들한 흙은 고양이들에게 최상의 화장실이 될 수 있으니 화분 분갈이를 할 때는 반드시 주의하자.



 안전하게 이사를 마친 열다섯마리의 워싱턴 야자 묘목들은 양지바른 곳에 2열로 서서 시원한 물도 흠뻑 마셨다. 요즘같이 따뜻한 철에는 상관이 없지만 이제 곧 추워질텐데 녀석들 감기걸리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겨울이 되면 사무실 안으로 들여놓아야 한단다. 햇볕이 쨍할때는 내어놓고, 추우면 다시 들여놓고. 그래... 열다섯번만 하면 되는데, 뭐...






 개늑시. 개와 늑대의 시간. 태양이 저물어가는 어느 시간에 저 멀리서 걸어오는 아이가 개인지 늑대인지 하는 시간. 적절한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의 계절이 나에게는 개늑시 혹은 폭풍전야같다.


 우리 농장에서 사계절을 표현하는 말에 여름 대신 고추가 있고 겨울 대신 절임배추가 있다. 봄, 고추, 가을, 절임배추. 곧 절임배추의 계절이 다가온다. 그 엄청난 부담과 긴장 직전에 이렇게 느긋(?)하게 아버지와 화분 분갈이를 하다니.


 분갈이를 하던, 하지 않던 어쨌든 찾아올 절임배추라면 즐겨야겠다. 화분 분갈이도 즐기고, 아버지와의 시간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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