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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그루 Oct 07. 2022

고객과 함께 만든 참기름

수십번의 블라인드테스트를 거친 착유레시피

오랜만에(라고 해봤자 사흘만이지만) 참기름을 짠다. 엊그제 농업기술원에서 "맞춤 양념 전문 브랜드"에 대한 고민을 하루종일 하다와서 그런지, 늘 짜던 기름인데 오늘은 생각이 많다.

일곱살 때 진도에 내려와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오일시에 있는 방앗간을 다녔다. 거기서 기름도 짜오고 고춧가루도 빻아오고 구기자도 볶아서 왔다.


할머니가 아프시고 난 후에는 엄마를 따라 방앗간에 다녔다. 엄마 옆에 쪼그려앉아 쿵덕거리는 절구방아도 구경하고,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쪼르르 내려오는 기름도 구경했다.


쪼꼬미 그루는 어른이 되어 할머니와 엄마가 있는 진도로 돌아왔고, 스물여덟 때 방앗간을 만들었다. 진도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 있는 우리 고객님을 위한 방앗간이었다.


맞춤 절임배추에 맞는 맞춤 고춧가루를 위해 만든 방앗간에다 사시사철 돌릴 수 있는 기름공장도 차린 것이다. 이왕이면 특별한 기름을 만들고 싶어서 고민했다. 참기름, 들기름은 많지만 우리만의 기름을 만들고 싶어서.


그래서 당시 10년 넘은 진도농부의 고객들에게 SOS를 쳤다. 기름도 커피처럼 원물을 로스팅하고 내리는 과정에 수 많은 변수가 있고, 그 변수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



우리 고객들과 수십번의 블라인드테스트를 거쳐 피드백을 받았다. 깨를 볶는 시간과 온도, 내리는 시간과 온도, 심지어 세척하고 물을 빼는 시간까지. 그렇게 고객들과 함께 만든 참기름 레시피가 완성되었다.


핵심은 그것이다. 예전 할머니를 따라다녔던 방앗간에서는 깻묵이 씨꺼멓고 단단할 정도로 고온에서 빠르게 태웠다면, 우리 기름은 저온에서 오랫동안 천천히 속까지 고르게 익혀 착유한다.


이렇게 기름을 짜면 시간도, 전기세도 훨-씬 많이 든다. 착유량은 더 적다. 기름 1병(300ml)에 참깨 1kg 가까이, 들깨는 1kg가 넘게 들어간다. 국산깨는 나날이 귀해진다.


우리 참기름은 정말 비싸다지만, 남는 것은 많지 않다. 국산깨와 이런 미련한(?) 방식을 고집할 이유가 있을까. 그럼에도 나의 대답은 예스다.


수 많은 고춧가루, 참기름, 절임배추 중에 우리를 믿고 맡겨주시는 한 분 한 분을 생각하면 이런 저런 핑계를 댈 수 없다. 그럼으로 툴툴대지 말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마저 기름을 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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