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하이의 <평화의 날> 가사처럼 정말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는 날. 우리집에서는 어제가 딱 그랬다.
밭에서 배추를 해와야하는데 트럭은 고장났지. 그나마 동네에 정비공장이 있어 다행이다 싶었는데 기사님이 완도에 가셨다지. 소금물을 퍼올려야하는데 수중모터는 고장났지. 엔지니어를 모셔왔는데 몇 시간을 있다가 못 고치겠다고 가셨지. 수중모터를 들고 여기저기 찾아 헤매는 일당백의 남동생은 밭에서 일도와주는 외국인 언니와 소리지르고 싸웠지. 가뜩이나 몸이 아팠던 아빠는 더 예민해지지.
정말 신기하게도 요상한 일들이 한 번에 몰려왔는데 더 신기한 일은 내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상한 일들이 많은 만큼 지출도 많았다. 하지만 이 정도에서 끝난 게 어디야. 사람 안다쳐서 어디야.
내 친구는 책에서 착한 사람들은 실패한다 했다고 나를 걱정하는데, 내가 정말 착해서인지 아니면 어떤 초월을 한 것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