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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그루 Aug 22. 2022

애증의 스마트팜

스마트팜은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진도농부의 큰대장, 작은대장


 진도에 내려온 지 벌써 8년차다. 한 분야에서 10년을 채우면 보통은 전문가라 불린다. 8년이면 준전문가는 될텐데, 과연 나는 어떤 분야에 전문적일까?


 농사? 어렵다. 마케팅? 더 어렵다.

 8년 동안 나는 어떤 분야에 집중했을까? 돌아보면 부끄럽게도 그런 것이 없는 것 같다. 지난 8년에서 부모님을 지우면,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길고 긴 8년 중, 마음을 다잡고 드디어 "이 일은 내 일(부모님의 일을 돕는 것이 아니라 내가 책임지고 나아갈 길)"이라고 마음먹은 것은 겨우 3,4년 정도 되는 것 같다.


 시작이 반이라도, 마음을 먹기까지가 힘들었는데 마음을 먹자마자 놀랍게도 하늘이 속을 썩인다. 여름에는 고춧가루를, 겨울에는 절임배추를 하는 집인데 2년 내내 사상 최장기간의 여름장마로 고추는 병들고, 배추는 심을 땐 가을태풍이 세번씩 불어대서 배추가 엉망이었다.


 사람만 마음을 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구나. 희망은 좋은 것이지만, 바로 뒤에 붙어있는 절망은 무서운 것이다. 이런 비극이 연달아 찾아오니 멘탈이 터덜거리기 시작했다.


 농사는 내 길이 아닌가봐. 역시 농사는 아닌가봐. 하던차에 돌고 돌아 그래도 농사라며 눈에 들어온 것이 스마트팜이었다.



스마트팜 첫 해, 고추 심던 날

 

 마침 정부차원에서 청년농부들에게 밀어주던 것이기도 하고 군에서 스마트팜을 임대할 수 있는 기회까지 찾아와 이건 마치 온 우주에서 '그래, 스마트팜이야'하고 밀어주는 것 같았다.


 희망 뒤에 절망이 있다면, 절망 뒤에는 역시 희망이 있다. 그래서 나의 2021년은 스마트팜에 눈이 뒤집혀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고군분투 스마트팜. 애증의 스마트팜.


자동으로 시간맞춰 물이 나오고, 액비도 나오고 신기했다.


 대학생 때부터 나는 목표가 생기면 경주마처럼 그 목표를 반드시 이뤄야 직성이 풀렸다(요즘에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 역시 체력문제인가 싶다). 간만에 그 근성이 튀어나왔다. 그래, 스마트팜이야, 하고 한 번 마음먹고 난 후에는 내 일년 스메줄을 모두 스마트팜에 맞췄다.


 우선 나주에 있는 전남농업기술원의 1년짜리 '미래농업'과정, 즉 농대에 등록했다. 거의 매주 가야했는데 워낙 공사다망한 나라서 턱걸이로 수료증을 받았다.


 사실 수료증은 받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나는 정말 스마트팜에 대해 배우고 싶었다. 그 과정은 스마트팜 뿐 아니라 식물공장, 드론, ICT와 같은 기술적인 미래농업 뿐 아니라 식재료로서의 곤충자원이나 치유농업, 교육농장, 라이브커머스 등 관행농이 아닌 청년농업, 미래세대의 농업인들이 나아가야 할 전반적인 분야에 대해 폭넓게 다루었다.


그래서 스마틒ㅁ에 대해 자세한 기술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이런 농사도 지을 수 있구나 싶어 정말 뜻깊은 1년이었다.


ASMR이나 듣던 내 유튜브도 점차 스마트팜, 시설원예 등의 알고리즘으로 채워졌다. 주변에 스마트팜을 한다는 사람들은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그렇게 스마트팜의 겉핥기만 주구장창하고 돌아다녔다.



노지에서 감자를 심기 위해 관리기 작업을 하고 있는 멋진 나의 뒷모습


 돌이켜봤을 때 나의 어른시절의 초반이 경주마같았다면, 나머지 절반은 열정가득한 용두사미라고 할 수 있다. 일단 나는 무언가 결심을 하면 주변에 요란하게 알리곤 했는데, 당시 나의 포부와 다짐을 접한 사람들은 마치 내가 스마트팜 박사지망생이라도 되는 줄 알았을 것이다(실제로 우리나라 최대규모의 온실에서 일했단 내 친구 암탁이는 회사를 다녔을 때 모았던 자료를 한 뭉텅이 가져다주기도 했다).


 정확히 말해 내가 스마트팜에 꽂혔던 이유는 다음과 같은 생각에서였다.


1. 폭우와 장마, 고온, 냉해피해에서 그나마 자유로울 거란 생각. 완벽하지는 않아도 노지에서보다는 어느 정도 환경을 제어할 있기 때문에 하늘 앞에서 무너지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


2. 토양이 아닌 배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연작피해 걱정 없이 한 자리에서 매년 같은 작물을 재배할 수 잇을 거란 생각. 돌려짓기를 하지 않아 땅을 효율적으로 있을 거란 생각.


3. 내가 어디에 있던 비가 오면 창이 닫히고, 더우면 열리고, 자동으로 물도 주고 농사가 좀 더 편해질거란 생각. 그래서 판로에 더 집중할 수 있을거란 생각.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다.



고추를 터널재배로 키우는 건 너무 힘들다. 좀 더 스마트하게 키워볼까?


1. 식물공장(자연광까지 인공조명으로 대체하면서, 건물 안에서 몇 층의 배지에서 농사를 짓는 기술)이 아닌 이상 일반적인 온실에서는 하늘의 힘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심지어 농대에서 견학을 갔던 담양의 딸기농장은 무려 30억을 들여 지은 온실인데, 첫해에 그 마을에 홍수가 나서 온실이 흙탕물로 뒤덮였다고 한다.


 겨울에도 열대작물을 기를 수 있고, 여름에도 선선한 환경을 만들어 줄 수는 있지만 그게 다 어마어마한 에너지비용이다. 계산기를 잘못 두드리면 역시 어마어마한 손해가 된다.


2. 토양이 아닌 배지에서, 그러니까 양액(수경)재배라면 가능한 얘기다. 하지만 내가 임대받은 진도군농업기술센터의 임대농장 스마트팜은 첫해에 양액재배시설이 들어오지 않았고, 미루고 미루다 스마트팜을 향한 나의 열정까지 미뤄져버렸다. 만약 처음부터 양액재배를 직접 해볼 수 있었다면 생각이 또 달라졌을 것 같다.


 하지만 양액재배도 만만치 않다. 우선, 노지농사에서는 생각하지 않아도 될 '배지'라는 비용이 발생한다. 그리고 배지는 토양과 달리 아무 성분이 없기 때문에 내가 선택한 작물이 필요한 성분들을 모두 인위적으로 넣어주어야 한다. 한 마디로 양액재배는 돈이 정말 많이 든다.


3. 예전에 한국벤처농업대학에 다닐 때, 딸기농사를 짓는 오빠가 수업시간 내내 핸드폰으로 무슨 그래프를 쳐다보는 것이다. 주식을 하시나?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스마트팜이라서 핸드폰으로 환경제어 출력값과 CCTV를 보면서 손안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었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이 스마트팜이라는 것이 너무나 복잡해서, 오히려 내가 잘 모르거나 혹시라도 시스템이 고장나기라도 한다면 정말 환장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또한 현재의 스마트팜 기술로는 획기적으로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고 할 수도 없다. 작물을 식재하거나, 순을 쳐주거나, 지주를 박거나, 수확하는 작업 등 결국은 사람의 손이 꼭 필요한 일들이 훨씬 더 많이 남아있다. 물론 훨씬 더 편해질 수는 있겠다.



홍감자 밭에서 '팜파티'를 하는 모습


 결론을 내리자면 스마트팜은 너무나 돈이 많이 든다. 우선 시설을 짓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하다. 유지하는 것도 어마어마하다. 이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노지에서 농사짓는 것보다 훨씬 많은 수확이 있어야 하고, 수확만 많다고 되는 것은 아니며 가격도 적절해서 순이익이 많아야 한다.


 실제로 정부나 민간기관이 하는 스마트팜 홍보의 오점을 보고 웃은 적이 있는데, 생산량이 획기적으로 많아지면 무엇하나. 모든 농부가 스마트팜으로 생산량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지면, 그 만큼 가격은 어마어마하게 떨어질텐데 싶어 씁쓸하게 웃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잘 몰라서, 나처럼 혹-해서 모두가 똑같은 스마트팜을 지향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한국은 워낙 농토가 작은 곳이라 대농이라고 해도 세계시장에서는 코딱지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은, 우리 농장을 비롯해서 작은 농장들이 많다. 자신에게 맞는, '자체적인 스마트팜'을 실행해야 한다.


 농대에 다니면서 스마트팜에 대해 확실하게 얻은 것은 딱 하나 있다. 스마트팜에서 말하는 환경제어는 굳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는 '복합환경제어가 아니더라도, 단순히 온습도에 맞춰 창이 자동개폐되거나 물이나 액비가 자동관주될 수 있는 '단순환경제어'도 있다는 것을. 어쩌면 우리 농가에는 비싸고 복잡한 복합환경제어가 아닌, 단순환경제어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더불어 확실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모든 농부가 '생산량증대'만을 바라보며 농사를 짓는다면 가격하락 뿐 아니라 종의 다양성 저하나 환경오염 등의 문제가 찾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나는 시설에 관심이 많다. 30억짜리 어마어마한 온실이 아니다. 우리 작은 방앗간 옆의 텃밭에 적절한 규모의 온실을 만들어서 작물도 키우고, 그 작물로 찾아오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경험하는 체험공간으로 채우고 싶다. 한국형(특히 진도형) 스마트팜을 연구해서 기술을 나누는 공간으로도 쓰고 싶다.


 갈길이 멀다. 스마트하게 써야 하는데, 아직도 우리집은 임대받은 하우스에 매일같이 들려서 손으로 물을 주고, 개폐버튼도 내가 직접 누른다. 스마트팜을 멍청이팜으로 쓰고 있지만, 오락가락하는 내 마음은 그래도 결국에는 스마트팜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도농부만의 스마트팜은 언제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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