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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그루 Aug 26. 2022

너만 있으면 시골의 촌부라도 상관없어

돈이 없으면 시골에서 살 수 없다.

드라마 <궁>을 아시는가.

내가 중학생일 때, 그러니까 무려 십몇 년 전에 대히트를 쳤던 드라마다. 극 중 여주인공을 짝사랑하던 서브남이 여주인공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앞에서 좌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너만 있으면 시골의 촌부라도 상관없어."


그때도 이미 우리 부모님은 농부였기에 그 대사는 그 드라마와 원작 만화, 그 대사를 친 배우를 매우 사랑하던 나의 마음에도 작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요즘에야 '할 일 없어 농사짓지' 식의 말을 대놓고 하는 분들은 거의 없는 것 같지만 그때는 그랬다. '모든 것을 잃어도'의 다른 말은 '시골의 촌부'였던 것이다.


그런데 정말 시골의 촌부로 사는 것이 모든 것을 잃어도, 아무것도 없어도 가능할까? 정답은 절대로 노 no다.


<리틀 포레스트> 열풍이 불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면 행복하지 않냐는 것이었다. 김태리의 얼굴이었으니 행복한 것이다.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영화는 많은 것을 미화한다.




3년 전엔가 청년농업인 교육을 들으러 나주에 갔었는데, 그 때 강진에 귀농했다는 한 청년농의 말이 생각난다. 서울에서 살다 제주로 귀농을 하려는데 땅값이 너무 비싸서 포기했다는 것이다. '농업경영체등록증'은 국가에서 인정해주는 농부자격증 같은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300평 이상의 땅에서 농사를 지어야 한다.


그 분도 아마 국가의 청년농업인 정책사업, 귀농귀촌 지원사업 등의 홍보에 홀려 쉽게 귀농을 결심하신 것이리라. TV 속 이효리, 이상순처럼 멋진 제주살이를 꿈꿨을텐데 막상 내려가보니 매입도 아니고 임대하는 것만 평당 수백을 부르더라는 것이다(물론 그 수치에 약간의 뻥이 얹어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겨우 농부의 자격정도를 얻는데만 1억이 후우우울쩍 넘는 것이다.


300평의 땅에서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고수익을 내려면 어려운 작물을 재배해야 한다. 그런데 갓 시골살이를 시작한 초보농부가 실패하지 않고 원하는 만큼의 수확물을 얻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수확물들을 좋은 가격으로 잘 판매할 수 있을까?


농대 수업에서 그랬다. 농진청 자료에 따르면 먹고 살기 위해서는 수도작 기준 적어도 23,000평의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봐서는 밭작물도 3,000평 이상은 되어야 입에 풀칠은 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 그것도 수확량을 모두 도매가 아닌 직거래로 판매했을 때의 말이다. 우리처럼 가족이 합치려면 10,000평의 농사도 우워진다.


간혹 도시분들이 잘 모르고 혹해서 싼 값에 땅을 사는 경우도 있다. 직접 와보면 길도 없고, 물도 없고, 전기도 없다. 그런 땅들을 맹지라고 부르는데, 그 땅을 농사짓는 땅으로 만드려면 평당 수 백만원 이상이 든다. 복토도 해야 하고, 물설치, 전기설치 그리고 거름기가 없으면 퇴비도 잔뜩 뿌려주어야 한다.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 살기 어려우니 국가는 우리에게 6차산업을 하라고 한다. 농사만 짓지 말고 가공도 하고(2차) 체험도 하라고 한다(3차). 그래서 우리 농장도 큰 돈 들여 공장도 짓고 틈날 때 사람들도 초대해 팜파티도 열어본다. 하지만 우리는 경영에는 소질이 없는지 시간과 품을 들이는 것에 비해 남는 것은 많지 않다.


알면 알수록 시골에서 농사짓는 일은 정말 어렵다. 돈도 많이 들고,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20년 차에 접어든 우리 아부지의 농지도 매년 연습장이다. 내년에는 더 잘하자, 내년에는 더 잘하자, 내년에는 더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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