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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우연히 국순당 직원을 만나다

국순당 법인카드로 막걸리 두병을 하사 받다

by 오연

가끔 밖에 돌아다니다 보면 서비스 상품을 미끼로 SNS에서 해쉬 태그와 함께 관련 이벤트의 포스팅을 유인하는 마케팅 행위를 마주친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주지 못하는 상품에는 아무리 무료 증정이라도 그러한 행위에 동참하지 못하는 성정을 가지고 있다.


토요일 오후.

마트에 들러 간단히 장을 보는 중이었다.


왠지 이날은 로스트 치킨과 맥주가 당겼다. 맥주 한 캔으로 부족할 것 같아 뭘 마실까 아주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평소 애정을 가지고 있던 국순당 무 아스파탐 막걸리를 마시기로 했다.


어느 곳에 진열되어 있는지는 이제 눈감고도 찾을 수도 있다. 즐겨 찾는 홈플러스에는 막걸리가 보관된 냉장 진열대가 양쪽으로 자리 잡아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무 아스파탐 막걸리는 반대편 냉장 진열대 옆 일반 진열대 맨 아래에 위치해 있다. 그 위로는 각종 고량주가 진열되어 있다.


이 날은 웬일인지 멀끔한 청년 하나가 진열대 앞에 서성이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친구들과 무슨 막걸리를 마실지 상의하나 보구나. 나는 혼술인데.'


청년 옆으로 지나쳐 평소처럼 막걸리 한 병을 꺼내 들고 자리를 뜨려던 중 갑자기,


"저기요, 잠깐만요."


나는 내가 청년의 동선을 방해하는 줄 알고 이내 반사적으로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평소에 모르는 사람끼리 대화는커녕 인사하는 게 이상한 한국 정서상 나는 기계적으로 사과부터 했다.


그런데 청년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아, 그게 아니구요...지금 국순당 막걸리를 고르셨길래..."


저번에 건너편에 있는 롯데마트 막걸리 진열대 앞에서 뭘 살지 고민하던 홍콩 혹은 싱가포르에서 온걸로 추측되는 여행객들에게 막걸리를 추천해 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청년이 아마도 막걸리를 추천받고 싶은가 보다 생각하고 순식간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사소하고 사사로운 이야기를 잘 모르는 사람과도 하는 걸 지향한다. 하지만 저번에 1년간 외국 생활을 하고 돌아온 뒤에 한국에서는 잘 알지 못하는 관계끼리 서로 미소 지으며 인사하는 행위가 상대방을 부담스럽게 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나는 스몰토크나 미소 지으면 인사를 나누는 게 삶을 살아내는 힘이라고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서 한국에서는 평소에 이런 기회를 쉽게 갖지 못한다는 게 무척 아쉽다.


청년의 말에 나는 반갑게 말했다.


"아~, 네! 저는 이 막걸리가 너무 좋더라구요. 다른 거 마셔봐도 이 막걸리보다 못한 거 같아요. 화학품이 첨가된 것은 그 화학 맛이 느껴져서 못 마시겠더라고요. 이게 다른 비싼 생막걸리 보다 맛도 좋은 것 같아요."


아니나 다를까 청년은 자신이 국순당 직원이라고 했다. 소비자들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서 나왔다고 했다.


급격히 조증이 온 나는 평소 나의 No.1 술인 국순당 무아스파탐 막걸리를 찬양하는듯한 일장 연설을 했다. 국순당 직원을 만나서 영광이라고 했다. 롯데마트가 홈플러스 보다 100원 정도 싸다는 디테일도 가미했다.


실제로 나는 그 막걸리를 너무 좋아한다. 심지어 현재 출판사의 로고 폰트도 '막걸리' 체를 조금 변형한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계류 중인 나의 원 맨 밴드 'Makgeolli River' 또한 막걸리 한 병 마시고 오는 하이 상태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작은행동 출판사 로고>


청년과 막걸리에 대한 짧지만 아주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대화라기보다는 나 혼자 신나서 떠들어 댄 게 대부분이었지만.


청년은 감사하게도 자신의 회사 카드, 즉 '국순당 법인카드'로 나에게 막걸리 두 병을 사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사양하였지만 이내 그의 진심을 무시하면 예의가 아니겠다는 생각에 호의를 받아 드리기로 했다.




여기까지가 어제 나에게 일어난 실화다.


나의 보석 같은 무화학 막걸리의 가격을 부디 올리지 말았으면 한다. 만약 가격을 인상한다면 직접 담궈 마시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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