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토크의 주제로 자주 언급되는 소재이기도 하고, 상대의 관심사를 알 수 있어 아이스 브레이킹에도 효과적인 질문이다.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간접적인 경험을 향유할 수 있고, 심지어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대략적인 파악이 가능한 엄청난 문장. 낚시를 좋아한다면 인내심에 도가 튼 사람이구나 싶고, 뜨개질을 좋아한다면 섬세한 면이 있구나 싶고, 달리기를 좋아한다면 꾸준하게 성실하구나 싶고, 블로그를 좋아한다면 영혼의 동반자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각기 다른 취미의 범주가 궁금하기도 하고, 처음에는 쭈뼛거리던 사람도 홍조를 띠고 열변을 토하는 모습이 재밌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반드시 물어본다. 운이 좋으면 질문이 그대로 내게 돌아와 요즘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나열할 수 있었다. 그 한마디로 살아온 시간을, 삶의 방향을 슬쩍 엿볼 수 있다는 사실이 늘 신기했다.
취미란 즐거움이다. 그 보이지 않는 행복을 즐기기 위해 남는 시간에 하는 활동이란 말이다. 하지만 사는 게 각박해 그런지 몰라도 당신의 취미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관심이 없어서 나는 그 질의를 주로 면접에서 접했다. 당시 내가 내세운 가짜 취미는 무려 독서였다. 그럭저럭 무난하고, 지적으로 보이고 싶다는 재미없는 이유로. 그런 마음을 알고 있는지 면접관은 심드렁한 얼굴로 다음 질문을 이어갔으며, 그나마 진짜 취미가 독서인 면접관은 요즘 읽는 책이 무어냐고 물었다. 물론 진짜 취미가 독서였다면 신나게 대답했을 테지만 취업 준비에 찌들어있던 나는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탭에서 훔쳐 온 정보를 영혼없는 얼굴로 술술 대답할 뿐이었다.
취미를 갖추는 것도 조건이 필요했다. 온전한 순간을 누릴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 가짐과 경험이나 물건을 살 수 있는 약간의 돈. 그 두 가지면 충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 삶에 대해 냉소적이고 무관심한 태도로 살았다. 유일한 즐거움이라고는 퇴근하고 집에서 시체처럼 자는 일이나 종종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며 티비를 보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지내다 난데없이 훅- 하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 증상이 찾아왔다. 급격하게 불어난 몸 때문인지, 습관처럼 주눅 들어있는 심리 상태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이대로 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이름 모를 병을 덜어내기 위해 템플스테이라도 가서 심신을 정화하고 싶었으나 하필이면 어마무시한 전염병이 돌던 시기였다. 별수 없이 집 근처 천변을 걷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일순간 풀숲이 우거진 곳까지 달렸다. 턱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헉헉대며 삼켰고, 온몸에서 땀이 솟아올랐다. 이런 기분 나쁘지 않네. 뻐근한 다리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달리기가 나의 첫 번째 취미가 될 것이라는 걸 어렴풋이 직감했다.
꼭 삶에 취미가 있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취미가 있으면 조금 더 살고 싶어진다. 조금 더 건강하고 행복한 미래를 그리게 된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구멍이 생긴다. 왜 그런 문장도 있잖아요. ‘만약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라는. 생각만 해도 곧바로 벅차오르는 취미가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그러니 b의 말마따나 이 모든 게 사실 지금과 같은 삶을 지키기 위해서 살아가는 거라면 조금 더 근사하고 후회 없이 살고 싶다.
참고가 되도록 나의 멋진 취미 혹은 즐거움을 읊어보도록 하겠다. 온수매트로 데워진 이불 속에서 드라마 정주행하기, 평일 오후 사람 없는 산책로 느리게 걷기, 스트레스 없이 무계획으로 여행 가기, 길 가다가 맘에 드는 풍경 사진으로 남기기, 상체 운동한 다음에 팔뚝에 겨우 붙은 근육 만져보기, 도서관에서 읽지도 못할 책들 잔뜩 빌려오기, 추운 겨울날에 눈이 폭닥 쌓인 배경이 나오는 영화 보기. 뭐 이 정도? 대단한 취미는 아니지만, 잘 살고 있는 증거들이다. 요즘 들인 값비싼 취미는 두바이 쫀득 쿠키 사 먹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