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카드값이 이백만원이 나왔다며 어디다 쓴지 모르겠다는 언니의 말에 위로나 할 겸 내 비용 집계를 보낼 때였다. 모든 걸 하나의 은행 카드로 처리하는 데다 은행 어플에서 자동으로 돈을 어디에 썼는지 보여주는 탓에 늘 얼마를 쓰고 살았는지 집계가 가능했다. 이번달은 3,540유로를 썼다. 언니에게 계산기로 대충 1,400원의 환율을 곱해 보내는데, 환율을 곱하니 오백만원이었다.
"그러니까 언니, 이백만원 정도는 정상범위라고 생각해"
그렇게 보내놓고 나서 생각했다. 오백만원? 사실 많이 쓴다는 자각은 있었으나, 삼사백만원 정도일 거라 생각했다. 생각 없이 쓰던 소비가 어느덧 한 달에 오백만원이 되어 있었다.
물론 그저께 맥북을 산 탓도 있겠으나, 저번달에도 4백만원을 썼고 언니랑 여행갔을 적에는 한 달 비용이 4천에서 5천유로, 6-7백만원까지 올라갔다.
아무리 최근 지속되는 야근으로 벌이가 늘어났다고는 하나, 이렇게 많이 쓰고 있는 줄 몰랐다. 해외에 아무리 오래 살아도 화폐에는 적응이 되질 않는다. 3500유로는 내 안에서 5백만원이 아니라 350만원 쯤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특별히 인터넷 쇼핑을 많이 하거나, 장을 너무 자주 보거나, 필요 없는 물건을 많이 사는 편도 아닌 것 같은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쯤,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한 달에 사백만원 정도 벌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때는 세금에 대한 개념이 없었으니, 실 수령 4백만원을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정도면 쓸 거 쓰고 놀 거 놀고 반정도는 저축도 할 수 있을거라는 계산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지금까지의 인플레이션(약 40%)을 고려하면 당시에 나는 지금으로서 560만원 정도면 살만 할거라는 계산을 한 것이다. 유로로 계산하면 딱 4,000유로다. 2천 유로만 쓰면서 살 수 있을거라 생각하다니. 꽤 그럴 듯 하다.
유럽에 온 후, 나의 월평균 소비는 3천 유로다. 매 달 프랑스, 스페인, 독일, 영국 같은 주변 나라에 놀러가거나 맥북, 프로젝터, 커피머신 같은 고가의 물품을 사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12월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일주일 정도 놀러갔으며, 맥북이라는 고가의 물품을 구매한 탓에 좀 더 썼지만, 평균은 3천정도 될 것 같다.
아마도 매달 하는 여행을 연 2회 정도로 줄인다면 평균 2천유로 정도 쓰고 살 수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다시 돌아봐도 특별히 낭비나 사치라고 부를 만한 소비는 없었다.
맥북으로 글을 잘 쓰고 있고, 에어랩과 청소기도 메일 쓰고 있다. 닌텐도도 주에 세네번은 갖고 노는 것 같고, 프로젝터도 가끔 늘어지고 싶을 때 잘 사용하고 있다. 굳이 생각해본다면 한국에서 사온 아이패드 프로를 영상 보는데만 쓴다는 것 정도..?
한 달에 5백만원을 쓰면 특별히 사치한다는 생각은 안들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참고 산다는 생각도 안든다. 한국에서는 매 달 200만원 가량을 썼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코로나도 있었고 일도 너무 많이 하던 탓에 돈 쓸 시간도 없어, 나름 꽤 참고 살았던 것 같다.
언젠가 친구와 통화하며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돈을 얼마나 안쓰는지에 따라 부자가 될 수 있다' 는 이야기. 세상 70%의 부자들은 모두 얼마나 돈을 안쓰고 모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며 살아간다고 했다. 돈을 쓰는 데에는 더 큰 돈을 불러올 수 있는 투자가치가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며, 그 외에는 돈을 쓰지 않는다고.
내게 버는 돈의 90%를 투자로 돌리는 그 친구같은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 하나, 이제 곧 서른이 되는 것을 기념으로 어릴 때 생각했던 버는 돈의 50% 저금하기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