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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꿀벌 Sep 12. 2021

혼자인 게 더 편한 사람



"도착하면 바로 연락해야 해! 알았지?"


부둥켜안다 헤어져 그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어디 멀리 가는 것도 아닌데, 주말이면 또 만날 텐데, 가까이 살다 멀리 나오니 괜히 떠나는 듯한 기분이 들어 울적했다. 떠난 건 난데,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어젯밤, 나는 서울을 떠나 머나먼 경상도로 이사했다. 이직하며 함께 거주지를 옮긴 것이다. 이직이 결정되면서부터 알고 있던 터라, 그도 나도 이날이 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아쉬워하면서도 내 이사를 도왔고, 결국 처음 집을 보러 올 때부터 이사를 마치고 나서도, 밥을 먹고 수다를 떨며 막차 시간까지 함께했다. 


그가 사라지고, 그와 함께 그를 배웅했던 길을 되짚어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멀어져 버린 그와 나의 거리만큼, 우리의 거리도 멀어지는 걸까? 

그럴 리가. 팔천 마일 떨어진 호주도 아니고, 고작 대한민국의 작은 땅에서 뭐 얼마나 멀어지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왕래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닌가. 


혈기 왕성한 이십 대를 지나가며, 이제는 하루 이틀, 아니 일주일, 한 달을 보지 않아도 견딜 만 하리라는 걸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하루라도 더 붙어있고 싶어 안달이 났다면, 지금은 너무 붙어있어도 문제라는 걸 조금은 이해하는 까닭일까. 아니면 그냥 혼자가 더 편한 걸까.



그래도 잠깐 같이 있었다고, 함께 있던 곳에 혼자 남으니 한동안 멍하게 앉아 숨을 골랐다. 


'이제 진짜 혼자구나.'


머리를 비우는 데에는 핸드폰만큼 좋은 게 없지. 아니나 다를까, 잠깐 웹툰이나 유튜브를 보고 있자니 그가 떠난 지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이러다간 오늘 아무것도 못 하고 잠들겠네.


결국 이사에 시험에,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어 두었던 글을 써 보내고 나서야 정신이 나, 평소처럼 노트북을 들고 침대에 기대어 앉았다. 잔잔한 음악을 낮게 틀고, 글을 썼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참 고요하고, 평화롭구나.



이십 대 초반, 호주에서 친구와 함께 집을 렌트해 지낼 때가 있었다. 그때도 방은 떨어져 있었으나, 집 어딘가에는 친구가 있었으므로, 왕래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근무 시간이 안 맞아 함께 놀 일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집에 혼자가 아니라는 묘한 안정감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나 다음 주부터 우리나라로 휴가를 다녀올 생각이야. 한 일주일 정도면 돌아올 거야.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알았다고 답했지만, 문제는 그가 떠난 후였다. 



친구가 떠난 첫날 밤, 언제나처럼 방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문이 덜그덕거리는 소리가 나는 게 아닌가! 당시 내가 살던 빌라는 카드키도 아니고, '열쇠'로 문을 열어야 하는 시스템이었는데, 문고리를 잡고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혹시 강도나 도둑이 든 거면 어떡하지? 그때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다시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근두근


나는 숨죽여 계속 그 소리를 따라갔다. 누군가 집 안에 들어온 걸까?


다시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나는 방에서 문을 닫은 채 꼼짝하지 못했다. 당시 우리 집은 구조가 조금 특이했는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복도를 통해 거실로 통하는 문이 하나 있었고, 거실에서 다시 방으로 통하는 복도에 또 문이 있었다. 즉, 내 방문을 열기까지 두 개의 방문을 열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는 거실 소음이나 냄새를 제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로 좋은 구조라 생각할 수 있겠으나, 지금은 그저 나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장치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겁에 질려 방문을 열어보지도 못한 채 숨죽이며 기다렸다. 내 방에 들어오지 않기를, 얼른 나가는 소리가 들리기를. 그리고 아직 깨어있을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안자면 통화 좀 하자고, 무서워 죽겠다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강도가 아니었다. 도둑도 아니었다. 내 친구가 깜빡 잊은 물건을 찾으러 돌아온 것도 아니었다. 그저 호주에 거지 같은 방음이 앞집에서 나는 소리를 꼭 내 집에서 난 것처럼 생생하게 들려준 것뿐이었다. 


아, 나는 진짜 혼자서는 못 살겠구나.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이 평화는 뭐란 말인가. 

신기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뭐랄까. 간만에 느껴보는 고요함?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는 편안함 같은 것이 있었다.


한국에 방음 시설이 좋은 탓인가. 아니면 밑에 경비실이 있기 때문일까. 더는 자물쇠를 쓰지 않기 때문일까. 


오랜만에 느껴보는 혼자라는 기분이 썩.. 좋았다. 


잠깐, 혹시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이 아닐까?

나도 이리 평안한데, 늘 옆에서 찡찡대던 애 하나가 사라진 그는 얼마나 편안할까.

나를 보내고 혼자 쉬며 행복해할 그를 생각하니 살짝 얄미운 생각이 들어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없다고 너무 좋아하면 안 돼요. 알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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