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신축년이 시작된 지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났다. 나는 새해 첫날을 당직으로 시작했다. 이후에도 겨울방학을 이용해 수술을 받으려는 환자들과 코로나 베이비들의 탄생이 이어졌다. 1월과 2월은 숨 돌릴 여유조차 없이 바빴다.
'오늘 하루 잘 넘기자.'는 마음으로 버티다 보니 문득 새벽 출근길 하늘이 전보다 밝아진 것을 발견했다. 그저 어둡기만 했었는데, 이제는 동트기 전의 오묘한 아우라가 느껴진달까. 습관적으로 내복을 무조건 챙겨 입고 두꺼운 패딩에 모자를 푹 눌러썼던 출근길이었는데. 이제는 땀이 났다.
'봄이 오는구나. 벌써...'
새벽에 출근하고 밤에 퇴근해 피곤에 지친 몸을 뉘이고 다시 출근하는 루틴의 반복이었다. 집 상태는 어수선했다. 청소기는 주기적으로 돌렸지만 전반적으로 물건을 대충 몰아 둘 뿐, 정리정돈을 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요일마다 바꿔 돌려 입는 옷가지들은 의자에 포개어 잘 올려두기만 했다. 봄옷이 뭐가 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이 패딩도 이제는 옷장으로 보내야 할 때가 왔다.
'이번 주말에는 청소를 해야겠다.'
모처럼 당직이 없는, 한 달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귀한 주말이었다. 기꺼이 집을 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주말 오전 알람 없이 푹 잘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침대 옆 창문으로 보이는 맑은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평화로운 고요함 속에 숨 막히고 짓눌렸던 고통이 치유된다. 침대에서 잠시 빈둥거리다 커피를 내렸다. 집안에 은은히 퍼지는 향을 깊게 들이마셔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다.
먼저 한겨울에 나를 지켜주던 패딩을 정리했다. 중성세제로 울코스를 돌리면 된다는 인터넷 글을 따라 했다. 건조대에 눕혀 말리며 집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문득, 빈 공간 없이 너무 물건들을 빽뺵하게 들여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교롭게도 작년 COVID19가 갑자기 크게 터질 때 새 직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급히 이사를 했고 난생처음으로 나 혼자 용달을 알아보고 짐을 옮기고 정리했다. 나름대로 며칠 동안 열심히 궁리하고 발품 팔아 가구를 들이고 배치해 뿌듯했었는데. 한 가지를 간과했다. "버리기"였다.
'언젠가는 필요할지도 몰라.'
'버리기엔 아까우니까.'
이와 같은 이유로 고이 모셔둔 것들로 인해 내 생활 반경이 좁아져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 집인데.
'지난 1년간 내가 이것을 사용한 적이 있는가?'
이를 기준으로 해서 하나씩 버리기 시작했다. 한두 번 사용 후 언젠가 쓸 것 같아 먼지가 내려앉은 채로 3년을 가지고 있었던 토스트기가 시작이었다. 코팅이 떨어진 프라이팬, 한창 공부하던 시절 내 시야를 밝혀주었지만 몇 년째 창고에 넣어둔 낡은 스탠드. 쌓여있는 화장품들도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은 과감히 버렸다.
'언젠가 입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계속 가지고 있던 옷들도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폈다. 옷 자체는 예쁘지만 어쩐지 이제는 나이가 들어 위화감이 느껴진다거나, 2년 이상 손대지 않은 옷들을 골라냈다. 한 계절당 옷을 2-3개 살까 말까 하는 나였지만 의외로 몇 가지 추려낼 수 있었다. 하나하나 다시 입어보고 '버릴 것'과 '객관적으로 옷이 괜찮은 것'으로 구분했다. 괜찮은 옷들은 필요한 사람에게 줄 수 있으니.
붙박이장 안에 마스크가 200장 넘게 쌓여있었다. 작년 이맘때 한 장에 4000원 하던 마스크를 어렵게 구해 안도하며 넣어둔 기억이 났다. 이렇게 코로나가 오래가고 마스크가 흔해질 줄 그때는 몰랐지. 피식 웃으며 20장씩 묶었다. 지인들에게 연락해 몇십 장씩 나눠주기로 했다. 붙박이장 한 칸이 비워졌다.
'공간을 좀 더 알차게 쓸 수 있었는데 그저 대충 넣어두기만 했구나.'
수납공간을 전부 이와 같이 부피는 최소로, 필요한 것만 남기고 정리했다. 이전에는 듬성듬성 쓰던 공간들이 차곡차곡 잘 채워졌다. 벽면 한쪽을 차지하던 190cm 행거를 치우고 옷을 붙박이장 안에 다 넣어버렸다. 여백이 생기자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집이 훨씬 넓어졌다. 뭔지 모를 답답함과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행거가 사라진 공간에 수납을 위해 책장이나 선반장을 하나 마련해볼까 잠시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은 후 묵은 먼지를 닦아냈다. 이대로 빈 공간을 두어야 내 정신도 맑아질 것 같아서였다.
빈자리가 이렇게 편안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무엇을 채울지 고민하지 말고 무엇을 버릴지 고민하라는 이야기를 흘려 들었었는데.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것처럼 정리 정돈된 공간이 정갈한 마음을 뒷받침해준다. 물건을 들이기 전 신중히 결정하고 (항상 지키지 못했지만) 피곤하더라도 그때그때 꼭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하루 종일 일한 보람이 있었다. 지난 1년을 이제야 마무리하는 기분이었다. 청소를 하면서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되지 않는 카타르시스를 느꼈기 때문이다.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미련, 그리고 각종 근심 걱정들도 배설물 처리하듯 흘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