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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y 16. 2021

비 오는 날의 사색

시선으로부터,


오랜만에 맞이한 당직 없는 주말이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햇살을 받으며 여유롭게 일어나는 행복을 꿈꾸었건만, 

기다렸다는 듯이 주말 내내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바람을 가르는 빗소리와 그 사이로 나아가는 차들의 경쾌한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본다.

애정 하는 집 앞 자그마한 카페에서 사 온 원두로 커피를 내렸다. 커피에 조예는 없으나 적당히 무거운 느낌에 고소한 이 블렌드가 딱 취향저격이다. 이 완벽한 시간과 공간에 나를 초대했다.





"요새 무슨 생각 하면서 사는 거야?"


가까운 이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과 고민들을 어디서부터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던 차였다.



누구는 어떻게 살더라는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나는 당장 어떻게 해야 하나 조바심이 들기도 하고

망망대해 정글 속에 너무 안일하게 살고 있지는 않은지 불안했다. 

인생의 정답과는 점점 더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랄까.


물론 걱정 근심이 해결해 주는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계속해서 나 자신에게 이런저런 잣대와 평가를 엄격하게 들이밀게 되는 것이다. 너는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이것도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구나. 30 초반 싱글에게 서울살이는 녹록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놓인 소설책 <시선으로부터>를 집어 들었다. 문학동네 북클럽에 가입했더니 보내준 책이었다. 학창 시절 해리포터 시리즈 이후로는 논픽션 위주의 독서를 해오던 터였다. 팍팍한 일상에 픽션은 왠지 모르게 거부감이 들었달까. 


336페이지에 달하는 꽤나 두꺼운 책을 단숨에 읽었다. 김이 나던 따뜻한 커피가 다 식어버려 반이나 남았는데.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라는 평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용이었다. 등장인물의 관계도가 처음에는 복잡했지만 곧 영화를 보듯이 자연스럽게 책에 녹아들 수 있었다. 심 시선이라는 할머니로부터 뻗어 나온 가족들의 이야기를 촘촘하게 그린 내용이다.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 p.331


이 문장에 무언가 응어리가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할머니가 심시선 여사는 아니지만, 또 아니라고 할 건 없지 않은가. 나의 뿌리를 있게 해 준 모든 이들이 곧 시선이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그들이 지키고 견뎌낸 모든 걸음의 산물이 지금 여기 있구나. 그리고 이렇게 또 추악한 시대를 어떻게든 살아내는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소설이라는 예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재충전한 만큼 내일은 좀 더 몰입해서 삶을 즐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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