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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y 17. 2021

문과형 인간? 이과형 인간?

나는 그냥 미완성 인간이다.

"나는 이과형이고 남자 친구는 문과형이라 서로 섭섭할 때가 많아. 남자 친구가 힘들다고 토로하면 나는 왜 힘든지를 분석하고 팩트를 따져서 해결 방안을 빨리 줘야 할 것 같은 압박이 든단 말이야. 남자 친구를 좋아하니까! 그런데 걔는 내가 그러면 섭섭해한다니깐."


친구가 말했다. 


"남자 친구는 먼저 그 상황에 대해 공감받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해결 방법은 자기가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내가 웃으며 말하자 그녀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고. 그리고 남는 시간에 우리가 행복하게 시간을 보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닌가? 그냥 가끔 보면 아예 사고방식이 다른 것 같다니까."


그녀는 '찐' 이과형 인간이었다.






어릴 때 책을 통해 상상 속에서 세계를 누비고 자유롭게 날아다녔던 나는, 문과를 가고 싶었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현실의 벽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이과를 선택했지만.


글을 쓰고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하기를 좋아했던 모습은 이과에 적합하지 않았다.

이과는 논리에 의해 다음 단계를 증명해야 했고 정해진 답이 있었다. 처음에는 이러한 '정량적 사고'방식이 숨이 막히는 듯했고 너무 차갑게 느껴졌었다. 수백 번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끝에 타고난 성향을 반대로 바꿔나갔다. CPU를 통째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나를 어르고 달래고 울고 불고 혼자 날뛴 수많은 시간들. 

덕분에 가까스로 의대 합격은 했다. 


세상은 넓고 똑똑한 사람은 정말 많았다. 

'와. 정말 이런 애들은 국가에서 인재로 키워야 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되는 친구들도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이과형 메커니즘을 연마했다. 

이제는 자연스레 이과형 사고의 플로우가 장착된 것 같다고 느꼈을 때, 

의사가 되었다.


 




어쩌다 보니 내 주변에는 문과형 인간보다는 이과형 인간이 압도적으로 더 많다.

논픽션을 좋아하고, 너무 로맨스에 치우친 것보다는 SF나 추리물, 수사물을 좋아한다. 말랑말랑한 감성은 유치하다는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이과형 인간들이 모인 곳에서 일하면서 느낀 건, 진짜로 중요한 것은 이과형/문과형인지가 아니다.

'저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얼마나 '맞춤식 소통을 하느냐'였다.

이과형이라 자처하는 사람들도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에. 사소한 것에서 상처 받고 감동받는다.


의사로서 항상 지식을 습득하고 공부하는 것은 제일의 덕목이라 배웠다.

하지만 그에 비등할 만큼 중요한 것은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그릇을 키우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과형도 문과형도 아닌 그냥 미완성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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