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 먹고(?) ‘진로 고민’이라는 단어를 화제에 올리려니 민망하다는 듯이 살짝 웃는다.
부끄럽지만, 어린 시절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특정 ‘기준’을 넘기면 안락한 삶이 펼쳐질 줄로만 알았다.
어른이 되어 이 넓은 세상을 사는 게 얼마나 멋있을까 상상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책과 영화들을 보며 나도 막연하게 ‘잘’ 살 것만 같았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고백하자면, 지금도 잘 모르겠다.)
특별한 배경도, 재능도 없던 학생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알려 주는 세상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지금 공부 열심히 하면, 나중에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 수 있어.”
그럴듯한 말이었다.
‘내가 뭘 하고 싶은데?’ 진지하게 의문을 품을 정도로 똑똑하지는 못했다.
다만 내 능력껏 최선을 다했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채찍질하고 반성하는 시간들이었다.
‘OO대학을 가면 행복이 시작될 거야.’
‘OO가 되면 고생 끝이야.’
특정 대학, 특정 직업, 특정 직장이 유토피아의 열쇠라도 되는 듯, 가리개로 시야를 가린 소처럼 달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의사 국가고시 합격한 날이 가장 착잡했다. 결승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냥 ‘예비 출발선’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출발선에조차 도달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어느 병원에서 일을 시작할지, 무슨 전공을 해야 할지, 어떤 커리어로 나아가야 할지, 등등. 온전히 내 힘으로 선택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