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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Apr 27. 2018

"나 문재인, 저 김정은"

'두 사람'이 판문점 선언에  담은 뜻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한 친구는 "누군가 정상회담 전에 영화로 찍었다면 말도 안 된다고 여겼을 장면들이었다"고 말했다. "나는 언제 군사분계선을 넘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문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은 "지금 넘자"고 제안했고 그대로 이루어졌다. 고요한 판문점 경비구역 어디선가 두 정상이 푸른 난간 옆 조그만 벤치에 마주 앉아 단둘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정상회담에 관해 많은 이야기들이 뉴스를 통해, 그곳을 다녀온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쏟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놀랍고 더 기쁜 일들이 남북과 세계의 동포들, 전세계 시민들 앞에 실현될 것이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분계선은 저기 바깥 어딘가가 아니라 사실은 우리 마음에 있다. 그 선이 사라져가는 한 순간 한 순간이 큰 기쁨이 되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역사에, 사람들의 마음에 길이 남을 장면이 손꼽을 수 없이 많았지만 내가 꼽는 하이라이트는 판문점 선언 채택 후 기자들 앞에 선 두 정상의 육성 발표였다. 사상 최초로 북한 최고지도자가 전세계에 자신의 육성을 생방송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담담하고 진중하게, 김정은 위원장은 솔직하고 시원한 스타일의 내용으로 각자의 정치적 진심을 담았다.


두 정상의 "나", 그리고 "저"


세계 사람들에게 전해진 문재인 김정은 두 정상의 발표 내용 가운데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꼭 두 글자, 두 정상이 스스로를 가리킨 '나'와 '저'라는 말이었다.


나는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남북 모두의 평화와 공동의 번영과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우리 힘으로 이루기 위해 담대한 발걸음을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저와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 분열의 비극과 통일의 열망이 응결되어 있는 이곳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책임감과 사명감을 안고 첫 회담을 가졌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김정은

우리말의 '나'와 '저'가 가리키는 바는 같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뜻이 얼마나 다른지는 한국 사람이라면 (혹은 '조선' 사람이라면) 설명하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안다. 


화자 자신을 가리키는 1인칭 대명사, '나'와 '저'에는 말을 하는 사람이 그것을 듣는 상대방에 비추어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분명하게 구별하는 속뜻이 있다. 우리가 보통 '나'라고 말할 때엔 그 속에 듣는 사람과 내가 대등하다는 뜻을 담고, '저'라고 말할 때에는 자신은 낮추고 상대는 높이는 태도를 담는다. 


그렇다면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스스로를 비교해 스스로를 낮춘 것일까? 그렇게 보는 사람도 있다. 처음에는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부분적으로는 사실일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달 시진핑과 만났을 때에도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조금 다른 맥락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생각해보니 다른 지점이 더 명확해졌다.


두 정상의 발표 내용을 우선 귀담아 듣게 될 이들은 카메라를 통해 그들을 보고 있는 한국 사람들이었다(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발표를 생중계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선언문은 우선적으로 두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한국 국민들에게 보내는 자신의 진심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국민과 역사 앞에 선 "나" 문재인, 그리고 동포이자 상대국 국민 앞에 선 "저" 김정은


문재인 대통령의 '나'라는 말을 살펴본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하는 연설에서 높으신 분들이 자신을 '나'라고 지칭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발표에는 '나'라는 말이 여러차례 등장한다. 


문 대통령의 '나'라는 말 속에는,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사명과 역할을 분명히 인식하고 실현해가겠다는 진심이 느껴진다. 스스로 대통령이라는 자리에서 국가를 대표하고 있지만 국민과 역사 앞에서 문재인이라는 한 자연인으로서, 우리 부모 세대가 지고 있는 (여전히) 무거운 책임감과 약간의 쓸쓸함이 엿보였다고 하면 내 착각일까? 문 대통령이 그 길에 혼자 서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나와 많은 국민이 함께 있다고 생각해주길 바란다.



김정은 위원장의 경우에는 '나(내)'와 '저'라는 말이 섞여 있다. 그럼에도 '저'라는 말이 더 눈에 띈다. 한국 국민들에게 자신을 기꺼이 낮춰 가리켰다. 이는 김 위원장이 한 국가의 지도자이자 권력의 수임자로서, 동포이자 외교 상대국 한국 국민을 앞으로도 예우하고 존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본다. 북한의 선대 지도자 김정일이나 김일성은 설령 문서로라도 외부 세계에 스스로를 그렇게 가리킬 수 있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 위원장의 선언문에는 북한 인사들이나 매체가 흔히 쓰는 '인민'이나 '공화국'과 같은 북한의 국내정치적 표현을 삼갔다. 대신 "여러분"과 "우리"라는 표현이 더 자주 등장한다. 이때의 여러분은 한국 국민을 직접 부르는 것이고, '우리'란 이야기를 듣고 있는 한국 국민과 북한을 대표하는 최고지도자인 자기 자신을 가리킨 것 아닐까. 김 위원장은 메시지를 청취할 한국 국민들에게 북한, 아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최고지도자가 내외신 기자들 앞에서 자국 입장을 공표하는 '정상국가'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주목할 점은 또 있다. 남북한 선대 지도자들은 상대국을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다. 전쟁 중 벌어진 일들과 전쟁 후에 있었던 여러 일들을 보면 자국내의 반대세력을 포함해 서로를 '사람 취급' 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정은은 이제 분명히 다른 태도를 취한다. 그는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을 경계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대등하게 외교를 수행하고 장기적으로는 동질성을 회복해갈 동등한 파트너로 보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을 두 차례나 했지만, 그때 합의된 내용에 대해 자신이 나서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 정상외교 일정을 사전 합의하거나 공개하지도 않았다. 그 아들 김정은은 일정 공개에 동의하고 선언문 내용을 자신이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소회를 포함한 개인 입장까지 발표하는 형식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엄청난 변화다.


김정은 위원장을 두 눈으로 직접 볼 날을 기다리며


이 발표를 통해 김정은 위원장은 같지만 다른 남북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러한 인식을 갖고 있었겠지만 그것을 드러내기 힘들었던 김정일, 혹은 그를 확인할 기회조차 없었던 김일성과 다른 면모다. 물론 모든 정치인은 계산된 발언을 한다는 점에서 이 발표 역시 숙고와 조정 끝에 나온 '정치적' 결과물일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계산 속에 자신의 진심을 담을 여지는 언제나 존재한다. 나는 김 위원장의 이 발표가 정치적인 동시에 그의 진심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김 위원장이 젊은 통치자로서, 살아갈 날이 많은 자신의 남은 삶에서 무엇을 해나가고자 하는지 분명하게 드러냈다고 나는 본다. 바로 나를 포함한 한국 국민들에게 한마디로 진심을 다해 남북 모두에 더 나은 미래를 만들자는 뜻을 전하는 것이다. 역시 이 땅에서 살아갈 날이 긴 나로서도 그 마음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머지 않아 그를 내 눈으로 직접 볼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한국 국민으로 대통령을 만나는 것이 '특별한 경험'이지만 '불가능한 기회'는 아닌 것처럼, 북녘의 최고지도자 역시 한 인간이자 정치인으로서 언젠가 멀리서나마 바라볼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불과 몇달 전이라면 말도 안 된다고 여기고 말았을 오늘 두 정상의 만남을, 마음과 마음의 교감을 스크린 너머로 목격했던 것처럼. 



저는 서울 성산동과 강화도를 오가며 이런저런 일을 하며 지내는 서른 한 살 젊은이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바람과 진심으로 살아가는 사회를 꿈꿉니다.


제가 쓴 글에 관한 의견, 제안을 언제나 환영합니다.

lallacri8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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