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현 Mar 03. 2018

어떤 이야기, 그 이야기

창작소리극 <오시에 오시게> 리딩 쇼케이스 후기

바우덕이라는 이름은 친근하면서도 낯설게 다가옵니다. 이름을 들으면 전래동화에 나오는 옛날 사람 같다는 느낌으로 익숙하다가도, 그게 누구인지 알 수 없는 탓이겠지요. 소리극 <오시에 오시게>의 이야기를 써낸 박예슬 작가는,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난 바우덕이는 남사당패에 들어가 15세에 꼭두쇠가 되었다'는 한 줄 전설을 모티브로 이 작품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양식과 장르를 뛰어넘는 생생한 예술작품

지난 화요일과 수요일, 서울 문래예술공장에서 열린 소리극 <오시에 오시게> 리딩 쇼케이스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리딩 쇼케이스라는 말이 생소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리딩 쇼케이스는 연극이나 뮤지컬의 대본을 가지고 동선이나 무대장치 같은 극 구성요소 일부를 생략하고 내용 중심으로 공연하는 형태입니다. 대본을 완성한 후 공식 초연 전 준비 단계에서 관객들에게 미리 선보이는 경우나 투자 심사 과정에서 리딩 쇼케이스를 진행하곤 합니다.


<오시에 오시게>의 경우는 2년 전인 2016년 2월에 이미 대본과 음악이 완성되었습니다. 지난해 6월 서울문화재단의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리딩 쇼케이스 추진이 결정되었고, 9개월 동안의 여정을 거쳐 이번에 많은 분들께 선을 보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쇼케이스 출연진은 모두 수준급 연기자들로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펼친 열연 덕분에 이야기가 가진 감동과 힘이 제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이었죠. 전통 소리와 모던 팝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심지어 랩도 합니다) 넘버들은 배우들의 목소리를 통해 반짝였고, 제작여건상 무대를 간소화하고 동선을 최소화하는 쇼케이스의 한계점들이 무대 뒤 스크린을 활용한 미디어아트나 배우들의 끼 넘치는 즉흥연기로 극복되면서 오히려 작품을 더 돋보이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다 죽고, 이야기만 남았다
이야기는 남았다
그리고 계속 흘러간다, 강물처럼


뭐니뭐니해도 <오시에 오시게>의 감동은 내용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설화의 형태로 짤막하게 전해지는 남사당 '바우덕이'의 삶을 되짚어가는 과정에서 탄생한 이 작품은 삶에서 삶으로 흐르는 이야기와 이야기꾼의 삶을 주제로 다룹니다. 


무대는 19세기 중후반 조선 곳곳을 떠돌며 이야기를 낭독했던 전기수(傳奇叟) 중 한 명인 '충삼'이 관객에게 말을 걸면서 시작됩니다. 뒤이어 청계천에서 오시(午時, 낮 열한 시 경)면 이야기를 들려주는 또 다른 이야기꾼인 '성진'과 그의 제자 '승영'이 소개되고, 성진의 기억 속에서 살아뛰는 남사당 '바우덕이', 극의 갈등과 위기를 고조시키는 흥선대원군 '하응'까지, 이들 사이의 사건과 기억이 물고 물리면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역사 속 인물들은 죽었을지 몰라도 그들의 삶과 이야기는 무대 위 이 인물에서 저 인물로, 전기수 충삼에게서 관객들에게로, 어렴풋한 설화에서 새롭게 해석된 거대한 이야기가 되어 전해집니다.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말이죠. '이야기 속 이야기', '액자식 구조'가 한층 업그레이드 되었달까요, 여러 인물간의 이야기가 서로를 통해 전해지는 구조는 소리극 <오시에 오시게>의 서사에서 드러나는 독특한 지점이기도 합니다.


'어떤 이야기'에서 '그 이야기'가 되는 <오시에 오시게>

사상 최초의 사당패 여성 꼭두쇠(리더)였던 바우덕이는 17세의 젊은 나이에 폐병으로 객사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박예슬 작가는 요즘으로 치면 굴지의 연예기획사 대표이자 당대 최고의 예술가로서 불꽃처럼 왔다간 바우덕이의 간난했을 삶과 그의 죽음을 기리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시에 오시게>는 무대와 관객이 함께하는 소리판이자 굿판인 셈입니다. 


실제로 극중 인물들은 무대 위 다른 인물의 행동에 마치 자기가 관객인 것처럼 끼어들고, 동시에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장난을 칩니다. 배우들의 천연덕스런 행동은 무대가 자신들의 공간이 아니라 관객들 모두의 '판'임을 상기시켜주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젖어들게 만듭니다. 이는 연출 과정에서 만들어진 '극적 장치'가 아니라, 박예슬 작가가 창작 중에 처음부터 자연스레 녹여낸 부분입니다. 덕분에 관객들은 능청스런 배우들의 행동에 웃음을 터뜨리면서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작품과 인물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이게 됩니다.


쇼케이스를 통해 관객들에게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오시에 오시게>는 올 하반기 정식 초연을 목표로 다시 작업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형식, 장르, 무대와 관객 사이의 모든 경계를 가볍게 뛰어넘는 <오시에 오시게>의 힘이 완전히 갖추어진 공연에서 어떻게 펼쳐질지 큰 기대를 갖게 됩니다.


공연 전 <오시에 오시게>가 '어떤 이야기일까' 하고 궁금증을 갖고 자리에 앉았다가, 객석을 일어서는 순간 잊혀지지 않는 '그 이야기'가 되는 감동을 더 많은 분들이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조한나 선생님과, 작품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박예슬 작가님, 공연 당일 함께 일하며 도움을 주신 고민규 감독님, 그 외 마음을 다해 작품을 함께 만들어온 출연진과 스탭 한 분 한 분께 감사를 전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2월 17일 00:3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