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지 Sep 16. 2021

나는 어떻게 그림책 작가가 되었나



편집자로 오래 일했던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저 놀고 싶었다. 어딘가에 속하지 않고, 돈을 벌지 않고 그저 노는 기분은 어떨지 궁금했고, 그림책 편집자라는 일이 너무 힘들고 지긋지긋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자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글 쓰려고?” 


내 대답은 이랬다.


“아뇨, 글 같은 건 전혀 쓸 생각이 없는데요. 난 세상에 말하고 싶은 게 없거든요.”


‘작가가 되고 싶다’ ‘글을 쓰고 싶다’ 등의 말은 당시 나에게 무척 부끄러운 고백처럼 여겨졌다. 멋진 글을 만나 감탄하고, 그 글이 더욱 멋진 한 권의 책이 되도록 힘을 보태고, 때로는 내가 고친 문장을 보며 뿌듯해하고, 그러면서도 이름은 책의 한 귀퉁이에 아주 작은 글씨로만 실리는(때로는 실리지조차 않는) 존재인 편집자라는 역할에 너무 익숙해져서인지, 내 이름 석 자가 표지에 뻔뻔하게 실리는 상상만으로도 얼굴이 달아올랐다. 게다가 나는 정말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이야기도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글 쓰려고?”라는 질문은 마법의 주문처럼 이따금씩 내 머릿속에 불쑥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러다 무언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일이 나에게 생겼다. 바로 외할머니의 죽음이었다. 외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을 다녀오면서, 십여 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외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외할아버지의 장례식과 외할머니의 장례식, 그리고 평생을 작은 시골마을에 살았던 평범하고 작은 두 사람의 인생을 떠올리자 갑자기 글로 남기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생겼던 것 같다. 두 사람은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으리으리한 삶을 살지도 않았다. 하지만 전쟁과 가난을 겪으면서도 나름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지키며 소박하고 진실하게 살아갔다. 그런 조부모 세대의 삶, 그리고 이 작은 마을과 농가는 이제 서서히 사라지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잊힐 것이다. 내가 글로 남기지 않는다면! 의식의 흐름대로 앉은 자리에서 단번에 원고를 완성하고 나서야 내가 마치 그림책을 쓰듯 장면에 따라 한 페이지 한 페이지씩 나누어 가며 글을 썼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글이 정말 그림책이 될까’를 고민하며, 사람들에게 읽혀보았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 뒤, 나도 세상 모든 작가들이 겪는 일을 다 겪었다. 원고를 보여준 편집자로부터 냉정한 답장을 받아 상처를 입기도 하고, 얄팍하고 가식적인 글을 완성한 뒤 명작이라도 쓴 것처럼 뿌듯해하기도 했다. 그간 존경해왔던 한 선배 편집자는 내 원고를 쓱 읽더니, 알 수 없는 웃음과 함께 “참 애쓰는구나”라고 말했는데 대체 무슨 뜻이었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편집자 생활을 오래했으니 아는 편집자와 출판사를 통해 원고를 쉽게 계약했을 것이라 오해하지 마시라. 아는 사람이 더 무서운 법. 게다가 그간 동료 특히 후배로 지내던 사람들에게 나의 근원, 혹은 나의 밑바닥과도 같은 초고를 보여주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차라리 가명을 쓰고 전화번호를 새로 만드는 건 어떨까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아는 사람에게 거절을 당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가능성을 검토하던 편집자로서의 내 능력도 내가 쓴 원고 앞에서 힘을 잃었다. 게다가 ‘어떻게 고치면 더 좋은 원고가 될까?’ 보다는 ‘어떻게 고쳐야 이 편집자의 마음에 들까?’ 하는 생각만 들어 마음이 어지럽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도 내 원고에 확신이 없었던 탓이리라. 결국, 반려당한 원고를 다른 출판사의 마음에 들도록 수정하기보다는,반려당할 때마다 새로운 원고를 쓰는 편이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렇게 여러 번 거절을 당하고, 여러 편의 원고가 내 컴퓨터에 차곡차곡 쌓일 즈음 드디어 첫 계약이 성사되었다. 처음 계약한 그림책은 《한숨 구멍(창비, 2018)이었다. 이 책의 원고는 출판사에 보낼 때부터 책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 원고에 담고자 한 느낌이 잘 살아난 그림책으로 출간되었다. 운 좋게도 적당한 때에 좋은 출판사와 편집자를 만난 덕분이다.


《한숨 구멍》(최은영 글, 박보미 그림, 창비 2018)


지금도 타인에게 나를 소개할 때 ‘작가’라고 말하기는 부끄럽다. 게다가 ‘그림책 작가’라고 말하면 “그림을 잘 그리시나봐요?” “화가시군요!”하는 대답을 들을 때가 많아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황당한 일이 생겨도 ‘이걸 언젠가 그림책에 써먹을 수 있겠군.’ 하고 생각하고, 절망에 빠진 때에도 ‘이런 주제로 어른을 위한 그림책을 한 편 쓸 수 있겠어.’ 하는 생각이 들어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간다. 지독한 위염에 걸려 며칠을 누워 지낼 때에는, 병에 걸려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사람에 대해서라면 상세하게 묘사할 수 있겠다며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내가 쓰는 글이 곧 나이므로,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한다. 이렇게 나는 매일, 그림책 작가가 되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림책, 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