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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지 Oct 27. 2016

생각이 다른 당신과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작은 사람>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2015년을 맞으면서 세운 새해 계획 가운데 '생각이 다른 사람과 친구 되기'가 있었습니다. 교황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교황님, 그 계획 성공하셨나요? 어떻게요? 방법 좀 알려주세요!"

저는 당신과 정말 친구가 되고 싶은데, 어떤 때는 마음이 꼭 맞는 것 같은 순간들도 있는데, 하지만 돌아오는 4년마다, 5년마다 우리는 싸우게 됩니다. 당신은 나에게 어리석다고 하고, 나라를 망치는 주범이라고도 했지요. 어려서 뭘 잘 모른다는 말도 늘 하시는 말씀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누가 사십 대 중반의 사람을 어리다 여기나요?

우리의 관계는 꼭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처럼 저를 괴롭힙니다. 언젠가는 차분하게 당신의 말씀을 들으려고도 노력했습니다. 논리적인 대화로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었던 적도 있었다고 고백해야겠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당신의 말은 화를 부채질하고 결국 우리는 싸우고 말았지요. 꼭 이 책의 두 사람처럼요.



<레이먼드 브릭스 글그림, 논장>




어느 날, 존의 방에 난데없이 작은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 왜 왔는지, 외계인인지, 사람인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지요. 게다가 이 작은 사람의 존재를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존은 어쩔 수 없이 작은 사람을 보살피기 시작합니다. 마멀레이드와 우유를 먹이고, 옷을 구해주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려고 노력했지요. 하지만 작은 사람은 언제나 불평을 해댑니다. 존이 작은 사람 때문에 부모님에게 혼이 나기까지 했는데도요.

결국 두 사람은 싸우게 되었습니다.





작은 사람은 존에게 말합니다. 네 마음은 진심이 아니라고. 자기가 작기 때문에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친절하게 굴었을 뿐이라고. 
싸우고 난 다음 날, 작은 사람은 사라졌습니다. 편지 한 장만을 남긴 채. 작은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요? 



나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작은 사람과 존은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는데 결국 마지막 날의 싸움은 서로를 살인자라고 욕하는 극한으로 치닫고 맙니다. 하지만 작은 사람이 떠나고, 남겨진 편지를 읽으면 묘한 그리움이 느껴집니다. "고마워, 너는 착한 애야. 내 생애 누구보다도 친절했어."라는 말에서 작은 사람이 얼마나 거칠고 메마른 삶을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헤어질 순간이 되어서야 서로를 친구라고 부를 수 있게 된 두 사람. 저는 두 사람이 서로를 오래 그리워하길 바랍니다.

다시 당신을 생각합니다. 저는 당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제가 태어나기 전 당신의 삶은, 존을 만나기 전 작은 사람의 삶처럼 미궁에 쌓여 있습니다. 가끔 사진을 보고,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당신이 겪은 전쟁과 공포, 가난과 노동을 상상할 수는 있겠지만, 당신이 겪은 그대로 오롯이 알 수는 없을 겁니다. 당신의 삶을 좀 더 들여다보고, 당신에게 물어보고,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내가 당신의 말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까요? 혹은 존과 작은 사람처럼 극한으로 싸워야만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는 걸까요? 당신과의 싸움과 당신의 고단한 삶을 통해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 중에서 무엇이 더 두려운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도 나와 친구가 되고 싶으시겠지요? 그것만은 분명할 거라 믿습니다. 그러니 오늘 할 수 있는 결심은 그저, 당신과 내가 이미 친구라고 마음먹겠다는 것입니다. 존과 작은 사람이 서로를 싫어하면서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친구가 되어버린 것처럼. 당신과 나는 끝까지 생각이 다른 사이로 남겠지요. 하지만 당신의 손을 잡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영원히 헤어지기 전까지, 당신이 나에게 친절하고 다정했으며, 나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노라고 더 자주 말하겠습니다. 



아빠에게

최은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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