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사람, 쓴다는 건 무엇이기에
천천히 눈을 감는다. 따끔거리는 눈알을 천천히 굴려본다. 마른침을 삼키고, 가느다란 한숨을 길게 내쉰다. 갑자기 알림이 온다. 예약이 취소되었다는 메시지. 아쉬움과 동시에 기쁘다. 오늘 저녁, 서재는 나만의 것이 된다.
의자에 몸을 늘어뜨린 채 보일리가 없는 하늘을, 눈을 감고 바라보며 생각했다. 책을 읽을까, 쓰던 글을 마저 쓸까. 고민하던 차에 미루었던 일이 생각났다. 창고에 있는 책상을 갖다 놓아야 한다. 시작할 때부터 만들고 싶었던 자리가 있다.
카운터로 사용되던 테이블 위의 물건을 하나씩 걷어낸다. 조화가 담긴 화병, 멀티탭과 케이블, 책과 조명, 그리고 작은 모형의 소품들. 가지각색의 물건들을 하나씩 가지런히 내려놓는다. 일회용 클리너로 쌓인 먼지를 닦아낸다.
1600에 600, 확실히 혼자 들 수 없다. 바닥의 카펫을 접어 밀쳐두고 테이블 한쪽을 든다. 바닥이 긁히는 소리가 나는 건 아닌지 귀를 기울이며 조심스레 뒷걸음질 친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슬쩍 바닥을 보니 괜찮은 것 같다. 테이블을 쭉 끌어당긴다.
같은 방법으로 창고의 책상을 서재로 가져온다. 앞뒤는 조금 좁지만, 좌우로 넓은, 조금 낮은 톤의 나무 책상. 손을 올려 딱딱하고 차가운 표면을 괜스레 쓸어본다. 좋다. 너의 이름은, '쓰는 사람의 책상'이다.
쓰는 사람, 쓴다는 건 무엇이기에 한 종류의 사람을 만들어낸 걸까.
쓰는 일은 간단하다. 펜을 든다. 선을 긋는다. 글자를 만든다. 문장을 엮는다. 글을 짓는다. 단순히 짧디짧은 선을 긋는 일의 반복. 그 작은 움직임을 그저 쌓아가는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나 쉬운 일이 때로는 더없이 어렵다.
어디 있는지 모를 글자를 쫓아다니고, 문장을 늘렸다가 줄이기도 하고, 글을 뜯고 다시 붙이며 용을 쓴다. 무엇보다 애써 마침표를 찍은 글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의 허탈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찢기고 구겨져 버린 글의 비석이 그득하다.
그럼에도 계속 쓴다. 비석들 사이에서 다시금 쓴다. 어두컴컴한 마음속 깊은 곳을 헤집고 긁어낸다. 그렇게 자기 안의 소리를, 진실한 마음의 소리를 토해내어 쓰고 나면, 쓰기 전의 나와 쓰고 난 후의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 책을 읽고 나서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 것 같지만 그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변화를 불러오듯이, 아주 작을지라도, 나아간다.
쓰는 일은 자신을 스스로 탐구하고 인식하게 한다. 타인과 세상으로부터 넘쳐흐르는 관념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렇기에 비록 느릴지라도 주도적으로 자신을 이끌어나가게 한다. 오롯이 자신의 시선과 손으로 스스로를 찾아가는 구도자가 된다.
그러므로 나에게 쓴다는 건 혼잡한 세상에서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며, 굳건히 바닥에 발을 딛는 방법이다. 현재를 낱낱이 밝혀내고 미래를 그리는 수단이다. 나에게 쓰는 일이란, 쓰는 사람이란 그런 것이다.
일어난다. 이 자리에서 수십 개의 버려진 글 가운데 하나의 글을 건져냈다. 황폐한 묘지에 작은 싹을 피워냈다. 언젠가는 나무가 되어 숨과 그늘을 펼쳐내리라 믿는다. 나와 곁들에게.
이 책상이 쓰는 사람과 쓰고자 하는 사람 모두에게 닻이 될 수 있길 바란다. 내게 그랬듯이, 그들에게도 그렇기를 바란다.
간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