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미영 Nov 05. 2019

숨은 그림 찾기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포스터./ 사진제공=영화사 오원

이 포스터 때문이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재개봉을 알고는 있었지만 1995년 극장에서 본 이후로 지금도 이따금씩 DVD로 보기 때문에 다시 극장을 찾을 마음까지는 품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이 포스트를 마주했다. 포스터에 삽입된 프란체스카의 편지는 로버트 뿐 아니라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1995년의 영화 포스터가 사랑의 진행형이었다면, 이 포스터는 아직 사랑을 시작하기 전의 설렘이 담겨 있다. 비록 나이는 중년일지라도 소년과 소녀의 푸릇한 영혼을 가진 두 남녀와 더 닮아 있기도 하다.      


박람회에 간 가족들과 달리 집에 남은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 분)는 사진작가 로버트(클린트 이스트우드 분)를 만난다. 그리고 그가 찍으려는 로즈먼 다리의 길잡이가 된다. 그가 감사의 의미로 건넨 꽃다발을 그녀가 독초라고 농담으로 받으며 풋 웃음이 터진다. 순간, 둘 사이에 수줍고 내밀한 공기가 스며든다. 스크린 위로 귀에 익은 이 영화의 메인 테마 OST가 흐르기 시작한다. ‘시네마 천국’(1988)의 도입부 음악만 들어도 아릿하듯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역시 그러하다. 사실 이 작품에는 음악이 곳곳에 흐른다. 특히 그녀의 집에서 흐르는 라디오의 음악은 조명보다 더 짙은 바탕색이 되어 무드를 조성하고, 마음의 그림자로 등장한다.      


현실에서 금지된 사랑은 금기이지만 이야기 세상에서는 가장 절절한 사랑의 형태이기도 하다. 그녀가 그를 수줍게 훔쳐보는 시선은 위태롭고, 아는 이가 하나도 없어야 비로소 자유롭다. 집안을 울리는 전화벨은 알람처럼 그들의 상황을 일깨운다.  그가 자신의 인생 전부를 말하는 것을 그만두고 싶다고 할 때 그녀는 탄식한다. 그들에게 허락된 기한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그와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왔다. 그러한 그들에게도 운명적인 교집합이 있으니 바로 그녀의 고향인 이탈리아의 바리다. 바리 기차역 건너편에 위치한 작은 식당을 이야기하면서 두 사람은 어디에 앉았을지 그 모습을 그린다.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시간 어쩌면 같은 시간일지도 모를 그 곳에서 적어도 그들은 함께였다.   


프란체스카 역의 메릴 스트립은 요정과도 같다. 그녀는 그 어떠한 역할도 살포시 내려앉아 캐릭터를 보여주고 사라진다. 놀라운 연기를 하지만 어딘가 늘 닮아있는 연기를 하는 배우들과 비교할 때 눈부신 재능이다. 누가 봐도 하얀 개를 노란 개라고 천연스레 말하는 순간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목욕하며 마시라고 권한 맥주를 꽃다발을 받듯 수줍게 받는 순간도 감탄을 자아낸다. 그리고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대표하는 사거리 이별 신은 그녀가 빚어낸 최고의 연기이기도 하다.      


겨우 4일간이지만 로버트는 프란체스카의 삶을 채운다. 그녀의 귀에는 잊고 있던 귀고리가 찰랑거리고, 음식만 들어있던 냉장고에는 필름이 들어오고, 예이츠의 시와 아프리카와 꿈에 대한 대화들이 채워진다. 그렇게 그녀는 그를 통해 훨씬 더 자신의 모습에 가까워진다. 그는 그녀의 숨은 그림을 찾아낸 것이다.     


[박미영 작가 miyoung1223@naver.com

영화 시나리오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고, 텐아시아에 영화 칼럼을 기고했다.]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291037

*텐아시아에 실린 칼럼을 다듬어서 올렸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냉전이라는 씨실에 사랑이라는 날실이 엮이는 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