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미영 Sep 15. 2020

미처 몰랐던 역사에 남다른 호흡을 얹다

공작

영화  ‘공작’ 포스터./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1990년대, 육군 정보사 소령 박석영(황정민 분)은 안기부에 스카우트되어 신분을 세탁한 후 대북 공작원으로 은밀하게 활동한다. 그의 암호명은 ‘흑금성’이다. 그는 북핵의 실체를 캐기 위해 자본주의에 찌든 대북사업가로 위장하여 베이징 주재 북한 고위 간부 리명운(이성민 분)에게 접근한다. 수년에 걸친 공작 끝에 리명운과 신의가 두터워지고, 평양으로 가서 최고지도자인 김정일(기주봉 분)까지 만나게 된다. 그러나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남북 수뇌부 사이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하면서 공작원으로서 자신의 역할, 나아가 정체성에 커다란 혼란을 느낀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공작’(2018)은 첩보 영화의 익숙한 코드를 배제하고, 최대한 사건과 인물의 민낯에 집중한다. 액션을 대신하는 치열한 심리전에는 긴장감 넘치는 대사들이 쉴 새 없이 파고든다. 윤종빈 감독의 장기인 위트 넘치는 대사나 설정은 ‘공작’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활력을 부여한다. 또한 1990년대의 시대적 분위기를 리얼하게 구현했다. 특히 북한 김정일의 별장은 스크린을 넘어서 관객을 압도하며 다가왔다.


배우들의 비범한 연기가 수를 놓는 작품이다. 무대에서 내려올 수 없는 모노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스크린을 채운 황정민의 연기는 한 치의 모자람도 없다. 북한판 금수저 출신으로 비치는 국가안전보위부 정무택 역의 주지훈의 통통 튀는 연기는 색다른 즐거움이다. 또한 북한 대외경제위 부장 김명수 역의 김홍파는 짧지만 짙은 여운을 남긴다. 그 누구보다 ‘공작’의 무게 중심에는 이성민이 있다. 어떠한 배우든 이성민과 붙는 장면에서는 시너지를 발휘힌다. 카메라가 이성민의 옆얼굴을 훑는 장면에서는 진짜 리명운을 만난 느낌이다. 캐릭터의 온전한 숨결이 느껴진다.


극 중에서 박석영은 리명운에게 비즈니스라는 단어에는 사업이란 뜻 말고도 모험이라는 뜻이 있다며 함께 모험을 하자고 제안한다. 박석영을 믿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던 리명운은 그 모험에 동참한다. 짝퉁이 오가는 사이에도 진심이 담긴 선물이, 진짜 마음이 서로에게 전해진다.


전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마주할 ‘공작’의 엔딩은 더욱 뭉클하지 싶다. 윤종빈 감독은 미처 몰랐던 역사에 남다른 호흡을 얹었다.


[박미영 작가 miyoung1223@naver.com

영화 시나리오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고, 텐아시아에 영화 칼럼을 기고했다.]   





https://entertain.v.daum.net/v/20180803144827723

*텐아시아에 올린 리뷰를 다듬어서 올렸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쟁의 민낯을 마주하고 스러진 학도병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