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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영 Sep 15. 2020

거짓 이름을 보호색 삼아 삶을 감내하는 열여덟 소녀

선희와 슬기

영화 ‘선희와 슬기’ 포스터./ 사진제공=㈜리틀빅픽처스


열여덟 살 ‘선희’(정다은 분)는 부모의 관심 밖이다.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는 부모의 모습에 자식을 살피는 기척은 없다. 학교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선희는 친구들의 관심을 끄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반 정미(박수연 분)가 지나가는 말로 선희에게 한마디를 건넨다. 선희의 일상에 생기가 일고, 정미에게 다가가기 위한 선희의 거짓말이 시작된다.


정미 때문에 무리에 끼워 주던 아이들은 선희의 거짓말을 쉬이 알아챈다. 지어낸 티가 난다고, 딱 봐도 거짓말이라고, 말 섞기 싫다고, 걔 좀 이상하다고…. 정미는 이런 선희가 불쌍하지 않냐고 한다. 얼마나 자존심이 없으면 그러겠냐고. 우연히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선희의 표정이 흐려진다. 선희는 거짓말로 정미를 살짝 곤란하게 만들려다가 그만 큰 곤경에 빠트리고 만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정미는 목숨을 저버린다.


어느 호수에 간 선희는 목숨을 끊으려다가 이내 살려고 버둥거리며 물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깊게 흐느낀다. 보육원의 선생님들에게 발견된 선희는 보육원에서 살게 된다. 호수로 향하는 버스에서 한 엄마가 옆자리에 앉은 딸을 부를 때 들었던 이름 ‘슬기’로. 슬기는 보육원이라는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속에서 차츰 웃음을 찾는다. 다감한 원장(전국향 분)의 권유로 검정고시를 준비해서 기숙학교로 진학도 하고, 그곳에서 룸메이트인 방울(정유연 분)과 우정도 나누게 된다.


‘선희와 슬기’(2018)의 박영주 감독은 단편 ‘1킬로그램’(2015)으로 제69회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공식 초청되었고, 제15회 블라디보스토크 아시아태평양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FIPRESCI)을 수상했다. 사람이 보이는 영화를 하고 싶다던 박영주 감독의 바램은 첫 장편작 ‘선희와 슬기’에도 고스란히 드리워진다. 조밀한 터치로 10대 소녀를 그려냈다.


관심이, 즉 사랑이 고픈 선희는 크고 작은 거짓말로 위태롭다. 거짓 이름으로 세상을 감촉하고, 행여 들킬라 치면 상대에게 모른 척해달라고 청한다. 선희로도, 슬기로도 불완전한 삶이다. 그래서 거짓 이름을 보호색 삼아 삶을 감내하는 열여덟 살 소녀의 선택은 번번이 아리다.


극 중에서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친구 방울은 말한다. 남의 사진을 찍어도 이상하게 자신이 보인다고. 언젠가 진짜 이름 선희로 돌아올 소녀가 꼭 기억했으면 하는 한마디다.


[박미영 작가 miyoung1223@naver.com

영화 시나리오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고, 텐아시아에 영화 칼럼을 기고했다.]   





https://entertain.v.daum.net/v/20190324082859680

*텐아시아에 올린 리뷰를 다듬어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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