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브 피트
스텔라(헤일리 루 리처드슨 분)는 낭포성 섬유증(CF)을 앓고 있다. 평범한 10대 소녀의 아기자기한 방처럼 꾸며진 병실에서 매일 ‘할 일 목록’을 차근차근 적어 내려간다. 강박증처럼 모든 게 완벽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스텔라는 투병기를 유튜브에 올리고 직접 앱을 만들기도 한다.
병원에서 스텔라는 자신처럼 낭포성 섬유증을 앓는 윌(콜 스프로스 분)을 만난다. 같은 병을 가진 그들은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어서 안전거리 6피트를 유지해야 한다. 병원 측은 폐 이식을 앞둔 스텔라에게 가까이 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둔다. 사실 일곱 살부터 스텔라의 절친인 포(모이세스 아리아스 분) 역시 같은 병이다. 그래서 스텔라와 포는 한 병원에 있어도 지금껏 서로를 단 한 번도 안아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옥상 난간에 위태로이 걸터앉은 윌에게 스텔라가 다가간다. 스텔라는 병을 낫고자 하는, 즉 삶에 대한 의지가 없는 윌이 못내 신경 쓰인다. 윌은 그림 모델이 되어주면 제대로 치료를 받겠다는 조건을 내건다. 이에 스텔라는 초콜릿 푸딩에 씁쓰름한 약을 퐁당해서 먹는 것과 같은 노하우도 전수한다. 그렇게 둘의 마음은 점차 서로를 향한 감정들로 수줍게 물들어간다. 스텔라는 낭포성 섬유증 환자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고 뺏겼으니 겨우 1피트 정도는 뺏어 와도 되겠다면서 윌에게 묻는다. “한 걸음 가까이 올래?” 5피트에 해당하는 당구 채 끝을 잡은 둘의 데이트가 시작된다.
저스틴 밸도니 감독의 데뷔작인 ‘파이브 피트’(2019)는 북미에서 제작비 대비 5배 이상의 흥행 수익을 올렸다. 10대 관객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은 바가 크다. 주인공인 스텔라와 윌도 10대다. 희귀병을 앓기에 마지막 순간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평생 죽어가는, 모든 생일을 마지막 생일처럼 보내야하는 청춘. 스텔라의 말처럼 살기 위해 치료를 하는 건지 치료를 위해 사는 건지 혼란스러울 만큼 몸도 마음도 아픈 청춘.
‘파이브 피트’에는 구석구석 온기가 흐른다. 주된 배경인 병원은 병원스럽지 않게 따스하고 다채롭고, 윌의 익살스럽고 감성적인 스케치도, 무거운 일상을 버티게 해주는 농담도. 그렇지만 시한부 인생을 사는 주인공을 앞세운 이야기의 얼개는 익숙하리만치 진부하다. ‘콜럼버스’(2017), ‘그녀들을 도와줘’(2018)의 헤일리 루 리처드슨과 넷플릭스 드라마 ‘리버데일’ 시리즈의 콜 스프로스가 이야기를 살렸다. 그들의 풋풋한 표정이 감정을 끌어올린다. 순간이 더없이 소중한 소녀와 소년의 눈물로 관객의 마음을 저민다.
익숙한 틀에서도 감성들은 푸릇하게 돋아난다.
[박미영 작가 miyoung1223@naver.com
영화 시나리오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고, 텐아시아에 영화 칼럼을 기고했다.]
https://entertain.v.daum.net/v/20190410182912445
*텐아시아에 실린 리뷰를 다듬어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