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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영 Jan 20. 2021

관객을 따라붙는 영화의 그림자

킬링 디어

영화 ‘킬링 디어’ 스틸컷./ 사진제공=오드

성공한 외과 의사 스티븐(콜린 파렐 분)은 자신처럼 의사인 아내 애나(니콜 키드먼 분)와의 사이에 사랑스러운 딸과 아들을 둔 이상적인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가 이따금 만나는 미스터리한 소년 마틴(배리 케오간 분)을 집으로 초대하면서, 그동안 숨겨왔던 불편한 진실로 점점 가까워진다. 얼마 후, 마틴은 스티븐의 가족이 치러야 할 대가를 읊조린다. 스티븐이 가족 중 희생양이 될 한 사람을 택하지 않는다면 가족 모두 사지마비, 거식증, 안구출혈의 순으로 증세가 나타나고 끝내 죽음에 이를 것이라는 저주다. 무시무시한 저주는 이내 현실로 다가온다.


‘킬링 디어’(2017)는 실제 수술 장면을 담은 강렬한 인트로로 시작한다. 온전히 수술을 받는 심장에만 집중한 장면으로 이후 관객의 심장마저 쥐락펴락할 공포의 시작처럼 여겨진다. 사실적이지 않으나 극적인 드라마는 겹겹이 공포가 쌓인다. 그래서 잔혹한 장면이 범람하는 영화보다 길고, 깊게 파고든다. 우아한 클래식과 스산한 사운드는 마치 제3의 인물처럼 작품 안에서 분명한 자기 목소리를 낸다.


콜린 파렐과 니콜 키드먼의 연기력은 나무랄 구석이 없다. 부부로서 두 사람이 나누는 평범한 대화에도 솔깃할 만큼 관객을 사로잡았다. 마틴 역의 배리 케오간은 범상한 눈빛과 말투로 비범한 연기를 해낸다. 이 영화에 대한 평가가 엇갈릴 수는 있어도 그에 대한 평가에서는 이견이 없을 듯싶다. 스티븐의 가족을 옥죄는 복잡미묘한 심리를 최선이 아닌 최상의 연기로 표출했다.


‘킬링 디어’의 원제는 ‘The Killing of a Sacred Deer’다. ‘송곳니’(2009), ‘더 랍스터’(2015)로 독특한 세계를 구축했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그리스의 비극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죽음을 앞에 두고 민낯을 드러내는 스티븐과 그의 가족들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고대 그리스의 원형극장 공연을 보는 듯한 기시감이 든다. 누군가에게는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하거나 불쾌할 수 있지만 눈을 뗄 수 없는 매혹적인 작품이다.


보통 몸서리치게 무서운 영화를 봐도 어두운 극장을 빠져나가면 점차 옅어진다. ‘킬링 디어’는 다르다. 극장을 나서도 따라붙는 영화의 그림자에 잠식된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소리 내어 탄산음료를 마시고 있는 마틴을 마주할 것만 같다.


[박미영 작가 miyoung1223@naver.com

영화 시나리오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고, 텐아시아에 영화 칼럼을 기고했다.] 





https://entertain.v.daum.net/v/20180711181139718

*텐아시아에 실린 리뷰를 다듬어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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