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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영 Jun 16. 2021

찌릿찌릿한 스크래치로 스크린을 할퀴는 빌런

크루엘라

영화 ‘크루엘라’ 스틸컷./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매력적인 빌런의 첫 등장에는 날것 특유의 비린내가 훅 파고든다. 나는 번번이 흠칫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금 가슴을 펴고 빌런의 눈동자를 응시한다. 이번에는 디즈니의 클래식 애니메이션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1961)의 빌런 크루엘라가 스크린에 재등장했다. 위풍당당한 주인공으로. 게다가 또 다른 빌런 바로네스 남작 부인과 동행으로. 나는 숨죽이며 그녀들의 뒤로 바짝 따라붙었다.     


탄생부터 주관이 뚜렷한 소녀 에스텔라/ 크루엘라는 너무도 사랑하는 엄마 캐서린(에밀리 비첨 분)의 당부도 있고 해서 학교생활을 조용히 보내려고 한다. 그러나 50대 50의 비율로 반백 반흑인 유별난 머리로 인해 학교에서 주목받고 놀림거리가 되자 맹렬히 맞붙는다. 결국 교장은 크루엘라를 퇴학시키려 하고 이에 캐서린은 크루엘라는 자퇴할 거라며 선수를 친다. 캐서린은 남다른 패션감을 지닌 크루엘라를 데리고 런던으로 향한다. 그리고 우연한 사고로 크루엘라는 엄마를 잃고 만다.     


크루엘라(에마 스톤 분)는 가족과 다름없는 친구들 재스퍼(조엘 프라이 분), 호레이스(폴 월터 하우저 분)와 함께 소매치기로 생계를 꾸린다. 솜씨 좋은 크루엘라는 원활한 도둑질을 위해 변장용 의상도 뚝딱뚝딱 만들어 낸다. 재스퍼의 도움으로 1970년대 패션의 중심인 영국 최고의 백화점 리버티에 직원으로 입성한다. 단순 근무직 크루엘라가 허드렛일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 바로네스 남작 부인(에마 톰슨 분)에게 남다른 재능을 인정받고 채용된다. 크루엘라는 최고의 패션 브랜드 ‘하우스 오브 바로네스’에서 디자이너로서 첫발을 내딛는다.      


‘크루엘라(Cruella)’는 도디 스미스의 ‘101마리 달마시안’을 원작으로 한다. 각본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의 엘린 브로쉬 맥켄나,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8)의 토니 맥나마라, ‘포드 V 페라리’(2019)의 제즈 버터워스가 공동으로 집필했다. 실사 영화 ‘101 달마시안’(1996)에서 강렬한 클루엘라였던 글렌 클로즈는 제작으로 참여했다. 본편이 아닌 쿠키 영상에라도 혹여 그녀가 등장할까 살짝궁 기대를 품었던 이가 비단 나 뿐일까 싶다.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2007), ‘아이, 토냐’(2017)의 크레이그 길레스피가 감독을 맡았다. 마치 얽힌 실타래를 풀어내듯 인물의 면면을 펼쳐내는 그의 장기를 이번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크레이그 길레스피는 ‘1970년대, 런던, 펑크록’을 키워드로 두고, 도리스 데이부터 퀸까지 50여 곡의 명곡들로 넘실거리는 그야말로 영롱한 빛을 발하는 영화로 완성했다.      


‘크루엘라’에서 패션은 제3의 주인공이라고 할 만큼 비중이 크다. ‘전망 좋은 방‘(1985),‘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로 미국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한 제니 비반이 의상을 맡았는데 총 277벌의 의상으로 인물들의 옷장을 채웠다. 남작 부인은 발렌시아가, 디올의 하이패션으로 에스텔라/크루엘라는 비비안 웨스트우드나 존 갈리아노 스타일을 참고했다고 한다. 두 인물의 의상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오감이 즐겁다.       


크루엘라는 고집통이에 사고뭉치, 싸움닭이다.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미소는 선뜩하다. 리젠트 분수에서 엄마 캐서린을 그리며 혼잣말을 하거나 상처 입은 얼굴은 애처롭다. 풍부한 의상만큼이나 풍부한 표정을 지닌 빌런이다. 사실 크루엘라의 남다른 재능을 알아챈 이도, 제대로 사고를 치고 싶게 만드는 이도 바로네스 남작 부인이다. 그러나 남작 부인에게 타인은 방해물 혹은 소유물일 뿐이다. 남작 부인에게 크루엘라는 방해물이고 에스텔라는 소유물이다. 두 인물을 빚어낸 에마 스톤과 에마 톰슨의 쟁쟁한 연기가 진진하게 펼쳐진다. 어찌 보면 뻔한 복수극에 그칠 수도 있는 드라마를 두 배우의 스파크로 밀어붙인다.      


아역 배우들과 개들의 열연도 인상적이다. 또한 드라마나 영화로 낯이 익은 반가운 얼굴들도 마주할 수 있다. 크루엘라의 친구들인 재스퍼 역의 조엘 프라이, 호레이스 역의 폴 월터 하우저, 아니타 달~링 역의 커비 하월 바티스트 그리고 바로네스 남작 가문의 집사 존 역의 마크 스트롱이 그러하다.      


크루엘라는 찌릿찌릿한 스크래치로 스크린을 할퀴는 빌런이다. 불맛 물씬 나는 빌런이 우리의 마음을 훔치러 성큼 다가오고 있다.      


쿠키 영상은 1개다.      


[박미영 작가 miyoung1223@naver.com 

영화 시나리오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고, 텐아시아에 영화 칼럼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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