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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영 Jul 23. 2022

어느 시대라도 설렘으로 물들이다

배우 정소민

정소민은 숱한 감정 연기 중에서도 설레는 감정을 표현하는 순간이 유독 빛나는 배우다정소민이 상대역에게 설레는 순간 시청자도 같은 감정으로 물들 만큼그녀에게 로코물의 여주인공 역할이 쏟아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그렇게 현대극의 로맨틱 코미디 여주인공으로 익숙한 정소민이 이번에는 시간을 거슬러 조선시대에 입성했다.

기방도령’(2019)은 폐업 위기에 처한 기방 ‘연풍각’을 살리기 위해 조선 최초의 남자 기생이 된 꽃도령 허색(이준호 분)이 조선 최고의 여심스틸러로 등극하면서 벌어지는 코믹 사극이다. 정소민이 분한 양반가 규수
 해원은 양반과 상민, 남녀의 차별을 부당하게 여기는 등 의식이 깨어있는 양반가 규수다. 극 중 허색은 첫눈에 해원의 꽃처럼 아리따운 미모에 반하지만 꽃처럼 향기로운 심성에 더더욱 빠져든다.

완성된 영화는 어떻게 보았는지?

기방쪽 스토리는 대본으로 본 것이 전부여서 (언론시사회에서) 처음 봤다. 그래서 그 부분들은 관객 입장으로 보게 됐다. 진짜 기대를 많이 했다. 대본 자체도 재미있었고, 선배님들이 연기로 어떻게 더 살리셨을지 궁금해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웃겼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편하게 즐기면서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재미있었다. 웃음이 빵빵 터지면서. (최)귀화 선배님 나올 때 재미있는 장면들이 많다. 그런데 극장에서 바로 옆자리에 앉은 귀화 선배님이 제일 크게 웃었다. 스크린에 있는 사람이 옆에 앉아서 웃고 있으니까 거기서 또 웃음이 터졌다. (웃음)

극 중 기방도령 허색에게 괴짜 도인 육갑(최귀화 분)이 있다면양반가 규수 해원에게는 세상 이치에 밝은 몸종 알순(고나희 분)이 있다.
알순이가 등장할 때마다 깨알같이 귀엽고 웃겼다. (웃음)
 
현장에서 두 사람의 호흡은 어땠나?
해원에게 알순이는 가족과도 같은 존재다. 현장에서 해원이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순이에 대한 애정이 커졌다. 사실 나희가 너무 예쁜 아이다. 연기할 때는 프로페셔널하게 감독님의 주문을 200% 소화해 내고, 평소에는 너무 순수하고 해맑다. 그렇게 서서히 친해지게 된 것 같다. 해원이랑 알순이로도, 나랑 나희로도. 어느 날은 촬영 현장에서 식사를 하는데 먼저 밥을 먹은 알순이가 가도 되는데, 내가 밥 먹는 동안 옆에 앉아서 노래를 불러줬다. 너무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전체 배우들 중에서 가장 친한 배우가 나희다. 연락도 제일 많이 하고.
 
이준호 배우와도 친하지 않은가?
연락의 빈도로 봤을 때 나희랑 더 친하다. (웃음) 이틀에 한 번, 하루에 한 번 꼴로 연락한다. 밖에서도 따로 보고.

극 중 해원이 읽는 서책의 제목이 남대중 감독의 전작인 ‘위대한 소원’(2016)이다.

감독님의 전작이다 보니까 감독님만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셀프 디스 같은 유머코드가 있었다. 그래서 여러 버전으로 찍었다. 책을 덮는 것부터 책을 팍 내려놓는 것 등등…. 영화는 그 중에서 가장 센 대사로 찍은 버전이다.


영화 ‘기방도령’ 스틸컷./ 사진제공=판씨네마(주)

보통 캐릭터를 빚을 때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가?
나는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대본에 없는 전사를 만드는 작업이 캐릭터에 접근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된다. 대본에서는 대부분 그 인물의 짧은 시기를 다룬다. 대본에 없는 부분들이 어떻게 보면 더 중요한 것 같기도 하다. 전사가 쌓여서 이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현재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니까. 그래서 혼자 많이 상상하고, 써본다.
 
그렇다면 정소민 버전의 해원의 전사(前史)?
해원이의 성격은 돌아가신 부모님의 영향이 제일 컸을 것 같다. 두 분 다 양반인데도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나눠 주셨을 것 같다. 현재 해원이가 가난한 이유는 부모님이 주변에 나눠 주는,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해원이도 그런 영향을 받아서 타인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가질 줄 아는 사람으로 큰 것 같다. 이를 테면 반상의 구분을 크게 짓지 않는 것도. 그래서 해원이는 알순이와도 허물없이 지낸다.

몸종인 알순이가 해원을 “아씨”가 아니라 “언니”하고 부른다. 호칭에 대해서 관대한 것도 같은 맥락이지 싶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알순이가 “아씨”라고 하면 해원이가 “사람들이 없는 데서는 언니라고 부르래도” 하는 장면이 원래 있었다. 해원이는 상대방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열녀문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한 배경에 있어서도 부모님 영향이 있었을 것 같다. 나는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셨다고 설정했다. 양반 가문이다 보니까 홀로 남은 어머니를 아버지 가문에서 심적으로 힘들게 했을 것 같았다. 해원이는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열녀라는 제도에 대해서 모순을 많이 느끼지 않았을까. 해원의 전사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다.


이렇게 듣고 보니, 극 중 열녀문 앞에서 해원이 했던 대사들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해원은 반상이나 남녀의 차별을 부당하게 여기는 캐릭터다. 그렇지만 거기서 한걸음 나아가지 못하는 점은 못내 아쉬웠다. 해원의 생각이 오롯이 담긴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원래 절에서 허색과 차를 마시는 장면에서 허색이 알순이를 “맹랑한 계집종”으로 표현했을 때 해원이 “저에게는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아이에요. 나라에서 정한 반상의 구분이 있을 뿐, 사람 간에 상하가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었다. 그 부분이 편집되면서 해원이가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 설명이 덜 되기는 했다.

해원은 은근 밀당의 고수다말끝을 열어둔다든지실제로도 밀당에 능한 편인가?
사실 해원이가 염두에 두고 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더 궁금할 수도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나는 밀당이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 남녀 사이뿐 아니라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굳이 그런 감정 소모가 필요한지.


허색은 우연처럼 혹은 운명처럼 해원과 마주친다극 중에서 허색이 해원에게 첫눈에 반할 만큼 한복을 입은 자태가 아리땁다더불어 한복이 익숙한 듯 참 편안해 보이던데.
고등학교 3년 내내 한복을 더 많이 입고 지냈다. 한국무용을 전공해서. 그렇게 한복이라는 의복 자체가 내 몸에 편하고 해서, 데뷔 초부터 사극을 빨리 해보고 싶었다.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늦게 첫 사극을 하게 됐다. 9년 만에.

첫 사극이라 힘들지는 않았나?
현실에 살고 있는 내가 조선시대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은 판타지 세계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그 경험이 너무 재미있었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는 걱정이 많았는데, 막상 현장에 가니 내가 집에서 상상해서 연습을 한 것과는 달랐다. 미술, 의상, 분장 등 모든 것이 조선시대 배경으로 세팅되어 있었으니까. 그 장소에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았다. 사극에, 조선시대에 발을 담그게 된 것이 새롭고 재미있었다.


배우 정소민./ 사진제공=판씨네마(주)

한국무용을 전공한 까닭인지 골든슬럼버’(2018)에서 액션 연기가 참 인상적이었다어떤 선이 그려지는 액션이라고 할까?
‘골든슬럼버’를 하기 위해서 두 달 정도 액션 스쿨을 다녔다. 나는 유연성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이 없어서 유연함이 돋보일 수 있는 동작들이 추가됐다. 내가 캐스팅 되면서 나 같이 작은 체구의 여자가 (강)동원 선배님처럼 큰 사람을 제압할 수 있는, 실제 사용 가능한 기술들로 액션 콘티가 바뀌었다.
 
본격 액션물을 하고 싶은 생각은?
‘골든슬럼버’ 전에는 액션에 대해서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하고 나니 의외로 나랑 잘 맞고 재미있었다. 액션을 하면서 오는 희열감도 있었다. 나중에 꼭 한 번 제대로 화려한 액션을 해보고 싶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출신이다동기인 배우 이제훈과 한 작품으로 만나도 좋을 것 같은데.
좋다. 기회가 되면. (이)준호와 ‘스물’(2015)에서 만나고 이번에 다시 만났던 것처럼, 그런 편안함이 확실히 있을 것 같다.
 
좋아하는 배우 혹은 연기가 있다면?
모든 작품을 챙겨보고 기다리게 되는 배우는 미셸 윌리엄스와 제니퍼 로렌스다. 그 두 배우의 작품이나 행보를 봤을 때, 200% 혹은 생각한 것 그 이상이다. 미셸 윌리엄스 같은 경우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임에도 영화에 나올 때마다 못 알아본다. 그 정도로 맡은 캐릭터를 다 자기 옷처럼 소화해내는데 대단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항상 멋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당신이 맡은 역 중 가장 사랑스러운 역을 꼽자면, 드라마 ‘마음의 소리’의 애봉이 역이다.

사실 처음에는 걱정이 됐다. 굉장히 괴팍해 보일 수도 있어서. 코미디 장르이지만 내가 중점을 뒀던 부분은 마음속에 조석(이광수 분)에 대한 커다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고 접근했다. 사실 주변에도 이런 분들이 있다. 행동은 거칠고, 말도 막 하는데도 따뜻하게 느껴지고, 호감이 가는 분들. 애봉이도 겉으로 보여지는 행동은 괴팍하고 거칠지만, 속에 사랑이 많은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숱한 감정 연기 중에서도 설레는 감정을 표현하는 순간이 빛난다당신이 상대역에게 설레는 순간보는 사람들도 같은 감정으로 물들 만큼.
감사하다. 거의 모든 작품에서 로맨스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상대 배우를 만났을 때, 항상 그 사람의 장점을 많이 보려고 노력한다. 상대 배우를 남자로서뿐 아니라 사람으로서도 애정을 가지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다. 그 사람의 좋은 점들을 계속해서 찾고, 또 많이 보려고 집중하다 보니까 연기할 때 그런 것이 녹아나는 것 같다.


[박미영 작가 miyoung1223@naver.com

영화 시나리오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고, 텐아시아에 영화 칼럼을 기고했다.]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396931


*텐아시아에 실린 인터뷰를 다듬어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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