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노정의
영화 ‘소녀의 세계’(감독 안정민)의 소녀들은 누군가를 동경한다. 언니 선주(조수하 분)는 아이돌 ‘아스트로’를, 단짝친구 지은(김예나 분)은 연극부의 하남 선배(권나라 분)를. 그러나 봉선화(노정의 분)에게는 여학교의 아이돌인 젊은 남자 선생님마저 덤덤하다. 지금 이곳보다 미지의 우주에 더 관심이 많은 열일곱 소녀다.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아역배우로 출발해서 당당하게 첫 주연을 따낸, 아직도 소녀인 노정의를 만났다.
완성된 영화는 어떻게 보았나?
생각했던 것보다 잘 나왔다. 너무 좋았고. 색감도 묘한 감정들도 잘 표현된 것 같다.
촬영 당시에는 중3이었다. 그래서 함께 출연한 언니들의 배려가 있었을 것 같다.
중3과 고1은 확실히 다르다고들 한다. 고1과 고2가 다르듯이. 매년 얼굴이 조금 바뀌는 성장 과정을 보는 것 같아서 부끄럽기도 한데 새로웠던 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도 같다. 그리고 언니들이 친언니처럼 챙겨줬다. 먼저 말도 편하게 놓으라고 해주고, 먹을 것도 챙겨주고, 정말 친동생처럼 챙겨줬다. 연기할 때 더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촬영 시기(2016)에 비해서 개봉(2018)이 늦었기 때문에 개봉 소식은 특별했을 것 같은데.
처음에는 안 믿겼다. “진짜요? 진짜요?” 계속 이렇게 질문했다. 그 질문을 하는 순간에도 너무 행복했다. 사실 1년이 지났을 때까지는 개봉을 언제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좀 많았다. 드디어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개봉을 한다니까 너무 행복했다. (웃음)
극 중 역할인 봉선화와의 싱크로율은 얼마나 되는지?
85~90%. 대본을 보자마자 ‘아, 봉선화는 나다’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 나이대의 밝고 물들지 않은 모습들이 잘 표현되어 있어서 실제 모습이랑 잘 맞다고 생각했다.
봉선화는 밤 늦게까지 딱히 공부를 하지 않는데도 늘 잠이 고픈 소녀다. 그런 모습마저 닮았는지?
잠을 즐기기는 하는데 수업시간에는 최대한 안 자려고 한다. 공부처럼 뭔가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는 과정의 뿌듯함이 좋아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하려고 한다.
가족들에게 약간씩 괴짜 기질이 있다. 봉선화의 엉뚱한 매력엔 가족력도 작용하는 것 같다.
실제로도 너무 재미있었다. 옆에서 선배님들이 아재 개그도 많이 해주시고…. (웃음) 옆에서 카메라가 돌아가는 것도 모를 정도로 편하게 연기할 수 있게 해주셨다.
영화에서 가장 많이 호흡을 맞춘 권나라 배우는 어떠했는지?
나라 언니와 계속 같이 있다 보니까 친해졌다. 처음에 감독님이 그렇게 친근감이 느껴지면 안 되는 부분이 있으니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서 감독님 앞에서는 최대한 대화를 안 하려고 하고 차에 가서는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했다. 무더위로 힘들었던 현장에서 재미있게 촬영할 수 있었다.
친구로 나오는 김예나 배우는 학창시절 꼭 어디선가 있을 법한 존재감이 있는 마스크였다. 두 사람의 단짝 케미가 좋았다.
예나 언니랑 호흡을 좀 맞춰보려고 촬영 들어가기 전에 만나서 대사도 맞춰보고, 같이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그랬다. 그렇게 쌓여진 것들이 잘 표현된 것 같다. 둘 다 낯을 가린다. 언니가 훨씬 더 그래서, 내가 더 다가가서 장난치고 그러면 언니가 잘 받아주고 마음을 열어주었다.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봉선화의 “나의 첫사랑은 로미오였다”이다. ‘하남 선배’가 아닌 ‘로미오’였다. ‘로미오’라는 단어는 특정한 대상에 봉선화의 애틋한 시간이 스며들어서 애련하게 다가왔다.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대사 중의 하나다.
또래와 달리 아역배우로서 현장에서 보낸 시간이 길다.
행복했던 것 같다, 그때 그 시절이. 후회가 없다. 앞으로도 더 많은 작품으로 현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동안 작품에서 만났던 선배들 중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배우는?
김남길 오빠. 내 바스트 샷인데도 앞에서 연기를 계속 해주고, 더울까봐 틈틈이 음료수도 사주고, 그렇게 연기를 함에 있어서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밝은 성격이 전해진다. 예능 프로그램도 좋아할 것 같다.
‘런닝맨’ 하는 꿈도 꿨다. 요즘엔 ‘신서유기’를 되게 좋아한다.
내년(2019)에는 고3이다. 연극영화과로 진학하나?
그렇다. 원래는 체육교육학과를 준비했다. 운동을 좋아하고 사람을 대하는 것을 좋아해서 잘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연기를 병행하면 무리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연극영화과로 정했다. 그래도 배우고 싶었던 체육교육학을 부전공으로라도 도전하고 싶다.
스무살, 소녀가 아닌 어른이 되면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엄청 많다. 민증도 찍으라고 연락이 왔는데 떨려서 못 찍고 있다. 지갑 보이는데다 꽂고 다니고 싶다. 스무 살이 딱 되는 날, 부모님께 술을 배워보고도 싶다. 친언니가 27살인데 나이 차가 많이 나서 엄마 같다. 언니가 굳이 지금 안 해도 되는데 하고 싶은 사춘기의 생각을 딱딱 제재해 준다. 밤에 친구들도 만나보고 싶고, 운전면허증 따서 여행도 혼자 가보고 싶고…. 로망은 되게 많다. 그리고 작품을 하면 뒷풀이를 어른들은 항상 2차로 더 재미있는 자리를 가진다. 저희는 형식적인 밥만 먹지만.
형식적인 밥인가? (웃음)
많은 대화를 못 나눈다. 깊이 있는, 다양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항상 밥 먹고 늦지 않게 가야 하니까 일찍 가는 것이 아쉬웠다.
앞으로 노정의라는 배우 앞에 품고 싶은 수식어가 있다면?
말이 필요 없는…. 이런 수식이 붙으면 좋겠다. 완벽하고 싶다. 나는 언제나 부족하다고 느끼겠지만 관객에게는 완벽한 연기를 보여 드리고 싶다.
[박미영 작가 miyoung1223@naver.com
영화 시나리오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고, 텐아시아에 영화 칼럼을 기고했다.]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357702
*텐아시아에 실린 인터뷰를 다듬어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