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프의 1인칭 주인공 시점

겨울왕국 2

by 박미영
영화 ‘겨울왕국 2’ 스틸컷./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이 글에는 ‘겨울왕국 2’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극장에서 ‘겨울왕국(Frozen)’을 봤던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아니 대부분의 소녀들처럼 나의 7살 딸은 엘사와 안나 공주를 꿈꿨다. 그렇지만 딸과 높은 싱크로율을 보인 캐릭터는 공주 자매가 아니라 바로 올라프였다.


딸이 한참 어릴 적의 일이다. 내가 딸을 등에 업고는 나직이 자장가를 부르며 재우려 하는데 어느샌가 딸이 나보다 더 큰 목청으로 또랑또랑 자장가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딸은 4살에 첫사랑을 시작했다. 눈부신 미모를 뿜는 여섯 살 위 한동네 오빠였다. 4살 딸은 동네에서 10살 오빠를 마주할 때마다 쪼르르 내 뒤로 숨어서는 소곤거렸다. “엄마, 저 오빠 왕관 쓰고 다니라고 해.” 동화책이나 애니메이션에서만 볼 수 있던 왕자님이 딸의 눈앞에 짠 등장한 까닭이다. 엉뚱방뚱생뚱한 딸은 딱 올라프였다.


아그나르 왕(앨프리드 몰리나 분)과 이두나 왕비(에반 레이첼 우드 분)가 다스리던 시절의 아렌델 왕국. 어린 엘사와 안나는 ‘마법의 숲’ 놀이에 푹 빠져 있다. 안나의 구연(서사)에 엘사의 마법(특수효과)이 덧입혀진 자매만의 각별난 놀이다. 아그나르와 이두나는 두 딸에게 마법의 숲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장 강력한 정령들이 지키는 마법의 숲에는 ‘태양의 사람들’로 불리는 노덜드라 사람들이 숲의 선물을 누리면서 살았다. 당시 아렌델의 왕이었던 루나드는 평화의 선물로 댐을 선물하면서 마법의 숲을 찾아가지만 노덜드라의 이유 모를 공격을 받고 전사했다. 두 땅의 사람들 간에 벌어진 싸움에 화가 난 정령들은 자취를 감추고 마법의 숲을 안개로 봉인했다. 그리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루나드의 아들인 아그나르 왕자만이 목숨을 구했다.


여왕 엘사(이디나 멘젤 분)가 다스리는 아렌델 왕국에는 평화가 깃들어 있다. 그러나 엘사는 자신에게만 들리는 어떤 목소리로 인해 마음에 스산한 불안의 싹이 돋는다. 머잖아 불안은 현실이 된다. 불, 바람, 물, 땅의 정령이 아렌델을 위협하고 백성들은 왕국 밖으로 몸을 피한다. 트롤들은 과거의 진실이 왜곡되었다며 잘못된 일을 바로잡지 않으면 아렌델이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엘사는 서슴없이 마법의 숲으로 향한다. 안나(크리스틴 벨 분)와 올라프(조시 개드 분), 크리스토프(조너선 그로프 분), 순록 스벤도 동행을 자처한다. 그들은 마법의 숲에서 불의 정령 ‘브루니’, 바람의 정령 ‘게일’, 물의 정령 ‘나크’, 땅의 정령 ‘바위거인’을 마주한다. 그리고 긴긴날을 마법의 숲에 묶여 있던 아렌델의 마티아스 총독과 노덜드라 주민들도. 엘사는 두 땅의 사람들에게 다짐한다. 숲의 저주도 풀고 아렌델도 되찾겠노라고. 그리고 과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마법의 강 ‘아토할란’으로 최종 목적지를 정한다. 안나는 못내 두려움이 앞선다. 모두를 위한다는 이유로 희생도 마다하지 않을 언니 엘사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을 각색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013)이 뭉클한 속편으로 돌아왔다. 전편처럼 제니퍼 리와 크리스 벅이 공동으로 연출을 맡았다. ‘겨울왕국 2’에는 불, 바람, 물, 땅의 정령이 등장한다. 엘사와 안나는 인간과 자연의 마법을 잇는 다리인 다섯 번째 정령으로 같이한다. 극 중에서 엘사의 서늘한 손을 좋아하는 불의 정령 브루니는 원조 귀요미 올라프도 인정할 만큼 깜찍하다. 엘사를 밀어내고 덮치는 물의 정령 나크는 유려하고 기백이 넘친다. 매력적인 정령들만 심어놓은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망가트린 환경에 대한 메시지도 함의하고 있다. 물과 땅의 정령이 인간에게 쉬이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 까닭을 헤아리게 된다.


전편보다 뮤지컬적인 면이 더욱 부각되었다. ‘겨울왕국’ ‘코코’(2017)의 크리스틴 앤더슨 로페즈, 로버트 로페즈 부부가 이번에도 음악을 책임졌다. 전편의 ‘Let It Go’나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처럼 귀에 착착 감기는 곡은 없지만 감성 돋는 곡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왕비 이두나의 아렴풋한 자장가 ‘All Is Found’, 시원시원한 주제곡 ‘Into the Unknown’ 그리고 그윽한 매력의 ‘Show yourself’가 그러하다. ‘Lost in the Woods’는 추억의 80년대 발라드를 소환한다. 크리스토프가 당돌하고 용감한 빨간 머리 안나에게 청혼하고 싶지만 영 뜻대로 되지 않는 절절한 심경이 담긴 곡이다.


‘무릅쓰다’. ‘겨울왕국 2’를 보는 내내 심장에 쏘옥 새겨지는 단어다. 6년 전 딸을 위하는 마음에 마법의 근원, 즉 엘사의 근원을 찾고자 길을 나섰다가 목숨을 잃은 아그나르와 이두나 역시 위험을 무릅쓴다. 어머니를 빼닮은 두 딸은 힘겨우면 어머니의 스카프를 두르며 마음을 다독이고, 잠을 못 이루는 밤이면 어머니의 자장가를 나눈다. 한 자매임에도 둘은 참 다르다. 신화에 나올 법한 인물인 엘사는 마법의 힘이 있지만 소침하고, 동화에 나올 법한 인물인 안나는 극히 인간적이지만 언니를 지키겠다며 대차다. 두 딸의 선택도 부모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엘사는 아렌델을 위해서 목숨까지 내놓고, 안나는 언니를 잃은 깊은 슬픔으로 주저앉은 순간에도 다시 일어나서 내달린다. 세상 그 누구보다 서로를 믿기에 그 무엇이든 무릅쓰는 자매 덕분에 34년 5개월 24일 만에 마법의 숲에 맺힌 저주가 풀린다.


“나랑 눈사람 만들지 않을래?” ‘겨울왕국’을 대표하는 대사다. ‘겨울왕국’을 대표하는 캐릭터 역시 눈사람 올라프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겨울왕국’ 시리즈의 주인공은 엘사도 안나도 아닌 올라프이기도 하다. ‘겨울왕국 2’에서는 올라프가 한편의 모노드라마처럼 전편을 요약하고, 쿠키 영상까지 솜씨 좋게 책임진다.


기실 올라프는 등장만으로도 웃음을 자아낸다. 올라프는 상의 실종 미키마우스나 하의 실종 곰돌이 푸보다도 자유로운 차림을 하고, 엘사의 도도한 걸음새를 완벽하게 흉내 내는 ‘제스처 놀이’의 초강자이고, 작별 인사 없이 밀어내는 이별은 싫고, 따뜻한 포옹과 해피 엔딩을 좋아한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올라프와는 잠깐의 이별도 싫다. 슬프다. 아니 아프다.


엘사와 안나의 눈물겨운 성장에는 올라프도 늘 함께였다. ‘겨울왕국(Frozen)’임에도 속편에서 가을을 배경으로 끌어온 것에 의아했는데 영화를 끝까지 보면 탁월한 선택이지 싶다. 올라프는 엘사의 강력해진 마법으로 더 이상 녹지 않는 몸을 가졌건만 상념이 많아진다. 어른이 된다면, 좀 더 철이 든다면, 나이가 더 들고 나면 등등의…. 올라프는 성숙해지니까 시인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젖는다. TMI(Too Much Information)답게 올라프의 생각은 입에서 술술 흘러나온다. 상상의 존재 ‘사만다’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가없는 올라프의 매력이 관객을 홀린다.


나의 딸이 6살에 유치원에 입학하면서 한껏 긴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방글방글 웃으며 하원하길래 이제 긴장이 좀 풀렸냐고 물었더니 긴장이 햇볕에 사르르 녹았다고 했다. 딸이 8살에 절친과 매일 꿈에서 만난다며 쓴 그림일기의 마지막 문장도 문득 떠오른다. ‘그곳은 항상 봄날이다.’


올라프도, 올라프를 빼닮은 나의 딸도 시인의 심장을 가졌다.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 앞에서든 제 몫에 해당하는 1인칭의 목소리를 오롯이 내는….


[박미영 작가 miyoung1223@naver.com

영화 시나리오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고, 텐아시아에 영화 칼럼을 기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