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마로나
*이 글에는 ‘환상의 마로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래전 천호동의 마당이 딸린 집에서 백구 한 마리를 키웠다. 이름은 방울이였다. 나는 개를 싫어하진 않았지만 못내 두려운 어린이였다. 딱 한번 엄마에게 방울이에게 목줄을 채워달라 청하고는 호기롭게 집을 나섰던 적이 있다. 아마 전날 텔레비전에서 본 만화 영화 ‘플란다스의 개’ 영향이었지 싶다. 역시 현실은 달랐다. 나는 차마 목줄을 놓지는 못하고 죽을힘을 다해 달렸고 그 뒤로 방울이는 신이 나서 달렸다. 나의 ‘방울이’가 될 수 없었다. 그저 이남(엄마)의 ‘방울이’, 순옥(외할머니)의 ‘방울이’였다. 우리 가족이 잠실의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방울이는 외삼촌에게 보내졌다.
내가 태어나서 여섯 살 무렵까지 살고, 잦은 이사 끝에 열두 살에 다시 돌아와 긴긴 시간을 함께했던 창신동에는 주인 없는 개들이 참 많았다. 성마른 개들은 작은 인간인 나를 얕잡아 보았다. 나를 향해 으르렁거리며 겁을 주어서 발걸음을 돌리게끔 했다.
영화사에서 마련한 작업실에 개 한 마리가 찾아들었다. 여러 주인의 손을 거친 탓인지 민감했던 개의 새 주인은 내가 아니라 영화사 직원이었다. 한데 무슨 이유에선지 그 녀석은 나를 찜했다. 내 주변을 졸졸거리며 따라다녔다. 시나리오 작업이 툭하면 새벽까지 이어지던 시기였다. 하릴없이 내 곁을 지키는 녀석이 가여워서 무릎 위에 올려놓으면 이내 새근새근 잠이 들곤 했다. 몽글한 녀석의 따스한 체온은 녀석의 마음의 온도 같았다. 새 주인이었던 직원의 상황도 여의치 않아서 녀석은 결국 또 다른 곳에 맡겨지게 되었다. ‘환상의 마로나’는 바로 그 녀석을 떠올리게 했다.
강아지 마로나(리치 브로체르 분)는 차에 치여서 죽음과 마주하고 있다. 마로나는 세상을 떠나기 전 이제껏 살아왔던 시간 즉 견생을 더듬으려 한다. 명견인 도고 아르헨티노 아빠와 모든 종이자 어떤 종도 아닌 잡종견 엄마 사이에서 9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던 출발점부터. 엄마의 주인은 무덤하게 ‘아홉’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아빠의 주인은 무정하게 쓰레기통에 버린다.
곡예사 마놀을 만나면서 새 보금자리와 ‘아나’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된다. 아나는 가난한 마놀의 곁에서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누린다. 모든 순간을 함께하기에 빚어지는 행복이다. 마놀은 서커스단으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는데 아나를 데려갈 수 없기에 거절한다. 그러나 아나는 마놀의 미묘한 심경을 감촉한다. 아나는 마놀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떠난다.
자신처럼 외로움이 싫은 건설업자 이스트반을 만나고, ‘사라’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사라는 이스트반의 쓰다듬는 손길과 행복한 얼굴이 마냥 좋다. 그래서 이스트반의 신경질적인 노모가 접시를 내동댕이쳐도, 동물을 싫어하면서 좋아하는 척 가식하는 이스트반의 아내가 벽장에 가두어도 묵묵히 감내한다. 결국 사라는 또다시 버려진다.
우연히 작은 인간 솔랑주를 만난다. 그리고 수고양이 마르초펠과 삶에 지친 싱글맘, 괴팍한 할아버지가 사는 솔랑주네 군식구로 받아들여진다. 즉흥적이고 모든 것에 쉬이 싫증을 내는 소녀 솔랑주는 이름부터 붙여준다. ‘마로나’라고.
‘환상의 마로나’의 원제는 ‘마로나의 환상적인 이야기(L'Extraordinaire Voyage de Marona)’다. 애니메이션 ‘나의 저승길 이야기’(2011)의 안카 다미안 감독의 작품으로 시나리오는 아들 앙헬 다미안이 맡았다. 제21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장편부문 대상과 관객상을 수상했다. 극 중에서 검정 강아지인 마로나를 누차 갈색으로 표현하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엔딩 크레딧에서 그 해답을 얻었다. 실제 모델인 갈색 강아지 마로나의 사진이 등장한다. 벨기에의 일러스트레이터 브레흐트 에번스가 캐릭터 디자인에 참여했다. 앙리 마티스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강렬한 화풍은 관객을 쏘옥 빨아들인다. 오롯이 마로나의 시점으로 담기는 마놀의 곡예하는 모습이나 노인의 주름진 얼굴 등 묘사가 다채롭다.
마로나는 날개 모양의 귀와 초롱한 눈, 하트 모양의 코를 지닌 바둑이다. 9남매로 태어난 마로나는 애초에 행복도 9분의 1만이 자신의 몫이라고 가른다. 아빠와는 고작 12분을 함께했기에 그 무엇도 나눌 수 없었지만, 엄마에게는 인간의 말을 배우라는 특별한 가르침을 받았다. 마로나는 개의 삶이란 오줌과 똥을 참아야만 하고, 인간이 소리치면 겁을 집어먹게 되고, 이빨 달린 괴물(자동차)이 넘실거리는 곳을 질러 가야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마로나는 콧속을 냄새로 그득 채운다. 그렇게 기억을 간직한다. 인간에게서 전과 다른 냄새가 풍기면 혹여 불행의 냄새나 슬픈 냄새가 아닌지 감별한다. 인간이 마음에 부담을 느끼면 자신을 방치할 조짐까지 알아차린다. 그러한 연유로 녹슨 냄새와 썩은 낙엽 냄새를 닮은 마지막의 냄새는 가장 아리다. 마로나는 늘 지금 이대로가 제일 좋은 강아지다. 나만의 보금자리와 나만의 이름과 나만의 주인을 갖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 마놀의 ‘아나’로서, 이스트반의 ‘사라’로서, 솔랑주의 ‘마로나’로서. 그래서 마로나는 의아하다. 인간들은 갖지 못하는 것을 원하고, 인간들은 그것을 꿈이라고 칭하지만 행복을 모르는 소리다. 코로나로 일상이 무너진 이즈음, 마로나가 정의한 행복의 크기가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나는 개와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오래전 나의 ‘그 녀석’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당시의 나는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그 녀석은 자는 동안 지켜줄 한 인간으로 가장 미약한 존재를 골랐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의 마지막 날, 녀석은 잠시도 내 곁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병이 있었던 녀석은 새 주인과 잘 지내다가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날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채 열흘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이름 하나 내어주지 않았던, 어쩌면 내내 마지막의 냄새를 피웠을지 모를 인간이 말이다. 나의 손끝에 그 녀석의 온기가 들어찼다. 나는 촉각으로 그 녀석과의 시간을 간직하기로 했다.
‘환상의 마로나’는 내내 오감으로 쓰다듬는다. 그리고 끝끝내 눈물이 차오르게끔 이끈다.
[박미영 작가 miyoung1223@naver.com
영화 시나리오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고, 텐아시아에 영화 칼럼을 기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