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수현
‘신비한 동물사전’(2016)의 속편인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 (감독 데이빗 예이츠)는 파리를 배경으로 전 세계의 미래가 걸린 마법 대결을 그린다. 수현은 이번 작품에서 저주를 받아 뱀이 되는 크레덴스(에즈라 밀러 분)의 친구 내기니 역을 맡았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의 닥터 조 역에 이어서 전 세계가 주목하는 프랜차이즈 영화에 두 번째 캐스팅이다. ‘해리 포터’의 스핀 오프인 ‘신비한 동물사전’의 한 페이지가 한국 배우인 그녀로 채워지는 것이다. 수현의 성큼성큼 행보에 염려보다는 격려를 가득가득 담아 본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후광 효과가 있었는지?
있다. 영화가 공개되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보였던 이유가 마블이 깐깐하게 선택했을 거라는 점이었다. 또 한국 영화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다. 한국 영화 시장, 한국 사람에 대한 관심도 분명히 있다.
가장 핫한 프랜차이즈 영화에 두 번째 캐스팅이다.
에즈라 밀러랑 연기하는 신을 받아서 오디션을 했다. 워낙에 비밀리에 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서 다른 사람하고 공유하거나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신을 보고, 직감에 의존해서 영상을 찍어 보냈다. 이후 스카이프로 감독님과 만났고, 마지막으로 영국에 가서 최종 오디션을 봤다.
완성된 영화는 어떻게 보았는지?
재미있었다. (웃음) 배우들도 만족해했다. 또 보고 싶다. 왜냐하면 볼거리도 캐릭터도 많아졌다. ‘신비한 동물사전’이 캐릭터에 대한 소개라면, 이번 편에는 ‘갈등’이 있다.
내기니 역 캐스팅과 관련해서 인종차별 논란도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내가 내기니 역이라고 들었을 때,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중요한 캐릭터라 뜻깊다고 생각했다. 또 백인 배우 중심의 프랜차이즈 영화라서 더 기뻐해 주시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런 논란이 부정적으로만 생각되지는 않는다. 이렇게 동양인들이 활동하고 있는 거에 대해서 많이 주목하고, 이런 이슈들을 잘 살펴보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아직 언론시사 전이라서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염려가 격려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번에 뉴욕에서 연극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를 봤다. “아, 내기니를 죽여야 했어”란 대사가 엄청 나온다. 그때마다 어떡하지, 왜 자꾸 내 이름을 이야기하지 했다. (웃음) 이야기의 전개에서 단순 애완 뱀이라고 보기에는 강한 캐릭터다. 다만 영화를 봤을 때, 그런 염려들을 잠재울 수 있을 만한 어떤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좋겠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5편이 나올 거라고 발표를 했다. 앞으로 내기니가 ‘해리 포터’의 시대와 어떻게 만날지 기대해 주시면 좋겠다.
내기니의 운명을 알고 있는지?
모른다. 조앤 K. 롤링 작가님이 가끔 파티장이나 사적인 자리에서 이야기하면 안 되는데 하면서 조금씩 흘려주신다. 그런 것 외에는….
조앤 K. 롤링 작가의 ‘밀당’ 같다. (웃음)
(웃음) 사실 배우들도 질문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지만, 가만히 듣는 경우가 더 많다.
예고편에서 내기니의 변신하는 장면은 임팩트가 느껴졌다.
예전에는 해외 활동에 대해서 서포트 하는 글들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기뻐해 주시는 것 같다. 정말 피부에 와 닿게. 최근에 내가 지나가면 (예고편의 내기니 변신 몸짓을 하며) 이렇게 하는 분들도 있다. (웃음) 많이 알아봐 주시고 너무 감사하다.
상대역인 에즈라 밀러와의 호흡은 어떠했나?
처음부터 케미스트리가 좋았다. 느낌이 잘 통했다. 감독님이 어떤 신은 그냥 너희 느낌으로 마무리하라고 할 때도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잘 이뤄졌다. 감독님이 ‘해리 포터’ 영화를 많이 연출하셔서, 그와 관련된 지식이나 센스가 넘치신다. 감독님이 이 여자는 슬픔도, 사연도 많고 어떻게 보면 크레덴스처럼 굉장히 상처 받은 영혼이지만 엄청난 파워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늘 염두에 두라고 하셨다.
데이빗 예이츠 감독의 세밀한 디렉션이 느껴진다.
하루에 4개의 세트가 막 돌아가는 상황에도 감독님은 조급해 하지도, 화내지도 않는다. 감독님을 찾으면 정말 나이스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사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 엄청나게 예리한 면이 있다. 대사 있는 신이 아니어도 나의 움직임만 보고도 의도를 파악한다.
내기니를 연기하는데 조앤 K. 롤링 작가에게 의지하는 부분도 컸을 것 같은데.
사실 뱀은 굉장히 악하고, 교활하고 안 좋은 상징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 캐릭터에게 이런 백스토리를 만들어주었다는 것을 보면 정말 상상력이 풍부한 분이다. 사실 이런 점을 팬들이 좋아한다. 생각지도 못한…. 나는 내기니 역할을 하면서도 아직 완전하게 이 사람의 전 아니면 후 스토리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정말 주어진 대본에 충실하고, 믿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 본 인상적인 한국 영화가 있는지?
영화는 아니지만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는 진짜 너무 좋았다. 넷플릭스도 많이 보지만, 올레TV도 많이 본다. (웃음)
한국 영화 크레딧에서도 당신의 이름을 보고 싶다.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데 스케줄이 안 돼서 못 했다. 늘 기회만 되면 병행하고 싶다. 참, 해외 활동이 많아서 오해가 있는데 나는 한국인이고, 한국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웃음)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냈다고 들었는데.
어릴 때 미국에서 계속 살 수가 있었다. 그런데 아빠가 시민권까지 포기하면서 한국행을 결정했다. 한국인은 한국말을 똑바로 해야 하고, 역사도 알아야 한다고. 어려서는 외국에서 살았던 기억 때문에 정체성 혼란이나 문화 충격이 심했다. 그래서 다시 가겠다는 말도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아빠가 붙잡았다. 이제는 한국인으로의 정체성이 확고해졌지만, 지금도 가끔 외국에 가면 한국인 같고, 한국에 있으면 외국인 같을 때가 있다. 그런 정체성의 혼란이 오히려 지금 시대, 내가 하는 일에 좋게 작용하는 듯싶다.
해외 활동으로 한국보다 외국에 있는 시간이 길기는 하다.
어릴 때부터 외국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공항 가는 것이 취미였다. 복잡하거나 스트레스 받으면 괜히 버스 타고 공항을 갔다. 뭔가 호텔처럼 느껴졌다. 좀 이상한가? (웃음) 원래 역마살이 있는 것 같다. 외국에 가면 힘들고, 외롭기도 하지만 뭔가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있다.
‘서치’(2017)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2018)처럼 최근 할리우드에서도 아시안 파워가 두드러진다. 남다른 기분이었을 듯싶은데?
존 조 선배님을 좋아한다. 예전 작품들도 봤고. 그때만 해도 풋풋한 역할을 했다가 지금 또 멋있는 분위기의 아버지 역을 훌륭하게 했다고 들었다.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했는데, 선배님은 팔로우를 안 해주셨다. (웃음) ‘마르코 폴로’를 함께한 몇몇 친구들도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 캐스팅 됐다. 의미 있는 것 같다. 나를 포함한 동양인 배우들이 자기 일처럼 포스팅도 많이 했다.
할리우드에서 역할을 고르는 나름의 기준이 있을 것 같은데.
동양인 역할이 주어지더라도 너무 전형적인 역할은 피한다. 일부러라도 백인 역할 오디션을 많이 본다.
한국에서 라라랜드를 꿈꾸는 배우들에게 당신의 행보는 특별하게 다가갈 듯싶다. 혹시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과감한 시도가 중요하다. 틀에 박힌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나의 경우에도 한국에서 해외 진출에 대해 고정관념으로 누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자기 스토리는 정말 어떻게 쓰여질지 모르는 것이다. 인생은 짧고 재미나다. 뜻이 있다면, 과감하게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박미영 작가 miyoung1223@naver.com
영화 시나리오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고, 텐아시아에 영화 칼럼을 기고했다.]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354662
*텐아시아에 실린 인터뷰를 다듬어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