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미영 Apr 07. 2020

기억하고 싶은 목소리

배우 전종서

전종서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2018)으로 스크린에 핫하게 등장했다. 유아인과 스티븐 연 사이에서도 톡톡하게 자신의 몫을 해냈다. 이내 웃고, 이내 울고, 이내 잠이 드는 해미로 분한 그녀는 독특한 목소리를 가진 까닭에 영화에서 종수(유아인 분)의 폰에 해미라는 이름만 떠도 목소리가 덧입혀졌다. 이니셜처럼 그녀를 상징하는 목소리는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 탓에 이따금 떨리기도 했지만 영화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또랑또랑했다. 더 많은 스크린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완성된 영화는 어떻게 보았는지?

감탄한 부분이 많았다. 이를테면 현실에서 느껴지는 미스터리 같은 것. 친구들하고 같이 만나서 수다도 떨고 커피도 마시고 하려면 몇 만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르바이트로 받는 시간제 최저임금은 말도 안 된다. 세상은 정말 세련되고, 예뻐지고 겉보기에는 멋있어지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그걸 쫓아가지 못하니까 좌절감, 무기력감을 느낀다.      


영화 속 캐릭터들이 느꼈을 고립감이나 좌절감, 무기력감을 느꼈던 순간이 있다면?

항상 느끼면서 산다. 좌절감, 억울함, 분노…. 굳이 내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친구나 가족처럼 주변 사람을 보면서도 매일 한 번씩은 느끼는 것 같다.     


전종서가 본 ‘해미’라는 사람은?

해미는 희망적이고 자유롭다. 여성의 강인함과 자유로움을 상징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해미는 유독 노을을 좋아하는데, 본인이 좋아하는 하루의 시간대는?

해 진 후를 좋아한다. 생활이 밤낮이 바뀌어 있어서 밤에 활성화가 막 된다. 낮보다는 밤이 좋다. 조용하기도 하고. 해가 지는 타이밍에 영화를 촬영하면서 많이 느꼈는데, 노을은 슬픈 것 같다.      


영화 ‘버닝’ 스틸컷./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해미가 술에 취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평소 주량은?

소주 뚜껑에 담아서 마셔도 취한다. 술은 정말 못 마시고. 곱창집 장면에서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것은 뚜껑 양 정도 마셨고, 계속 울고 그러니까 그랬다. 원래 홍조도 있다. (웃음)      


목소리 톤이 꽤 독특하다.

목소리 톤이 항상 일정하지는 않다. 저음이다, 고음이다, 중저음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없다. 상황에 따라 톤이 다 다른 것 같다. 그래도 대체적으로 평소의 나는 지금 이 가라앉은 목소리인 거 같다.      


영화를 위해서 마임을 배웠다고 들었다.

마임 수업을 할 때마다 울었다. 마임을 배우면서 힐링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되게 많다고 한다. 나는 테크닉적인 수업을 받았다기보다는 교감을 하면서 캐릭터를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노을 앞에서 춤추는 장면이 강렬했다.

그 장면을 위해서 마임 수업을 받았다. 다른 것도 있었지만 중점이 그 노을신에 있었다. 해미가 춤추는 신을 위해서 그 마당도 만들어 놓으신 거고. 감독님 디렉션이 준비한 대로 가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거였다. 감독님이 물었다. “춤을 출 때 너는 어떤 기분이 들어?” 나는 슬프다고 했다. 자꾸 슬픈 마음이 온다고….     


이창동 감독과의 첫 만남은?

비 오는 날에 감독님이 계신 제작사 사무실로 갔는데, 내가 어떤 애인지 궁금해 하셨다. 너의 생에 어떤 굴곡이 있었고, 지금의 네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궁금증…. 내가 어떻게 지내왔고, 그것을 통해서 무슨 생각으로 현재를 살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듣고 싶어 하셨다.      


연기자로서 첫 출연이 ‘버닝’이 된 것은?

기다림이 컸던 것 같다. 뭐가 됐든 내가 진짜 마음이 허락할 때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속사를 알아보러 다녔는데 그 과정이 1년 넘게, 되게 오래 걸렸다. 정말 많은 분들을 만났는데 가치관이 맞고, 생각이 통하고, 마음이 맞는, 그래서 같은 곳을 지향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소속사를 만나면서 적절한 타이밍에 필요한 사람도 만나고, ‘버닝’까지 만날 수 있었던 것 같다.     


배우 전종서./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처음으로 겪은 영화 현장은 어떠했는지?

연기를 사랑한다. 연기하는 순간도 즐겁고. 현장에 있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한 영화가 만들어지고 관객에게 나가는 과정에서, 그 외에 부수적으로 소화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그런데 정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건지를 잘 모르겠다.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도 같고. 앞으로 계속해서 하다 보면 좀 유연성이 생길 것도 같다. 어떤 포즈를 취하고, 어떤 표정을 지으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여전히 어렵지만.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를 기억하는지?

‘해리 포터’. 지금도 본다. 약간 도피시켜 주는, 다른 데로 사람을 갖다 놓는 내용이다. 그러고 싶을 때 거기로 간다. 호그와트로. (웃음)      


차기작이나 이후의 행보는?

이 작품을 하면서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인연’이라고. 원래 일어났어야 할 일이, 만나야 할 사람이 만난 거라고. 그러니까 그 역할에는 주인이 있다고. 감독님은 여태까지 캐스팅을 그렇게 해오셨다고. 나는 앞으로 어떤 영화를 하든, 무슨 일을 하든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자리를 가지려면 나 스스로 계속해서 무언가를 배워나가고 깨닫는 자세로 있어야 할 것 같다.     


1년 후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뭘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내 인생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 줄지…. 작년에도 내가 여기서 이렇게 인터뷰하고 있을지 몰랐을 거 아닌가? 그래도 뭐가 됐든 감당할 수 있는 마음가짐, 받아들일 줄 아는 법을 갖고 있는 나였으면 좋겠다.     


[박미영 작가 miyoung1223@naver.com

영화 시나리오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고, 텐아시아에 영화 칼럼을 기고했다.]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330828

*텐아시아에 올린 인터뷰를 다듬어서 올렸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액션도 하나의 감정, 하나의 연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