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강동원
최근 5년 간, 한 해에 두 편 꼴로 스크린에서 강동원을 마주했다. 이보다 더 열심인 배우가 있을까 싶은 묵직한 필모그래피다. 그래서일까. 때로 그가 살아가는 세상은 이곳이 아니라 마치 스크린 같다. 김지운 감독은 애니메이션 ‘인랑’을 실사화하면서 주인공 임중경을 맡을 배우에게서 범접하지 못할 만큼 비현실적인 아우라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답은 처음부터 강동원이었다. 지난해 여름부터 올 봄까지 무려 8개월을 임중경으로 지낸 강동원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할리우드 영화 ‘쓰나미 LA’ 촬영을 앞두고 있는데.
‘인랑’(2018) 홍보가 끝나면 다시 미국으로 가서 준비를 해야 한다. 한국 배우로서 부끄럽지 않게 잘 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촬영이 점점 다가오는데 걱정이 많다. 처음으로 영어 선생님을 두고 하는데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2시간 수업하면 아무 것도 못한다. 아무 생각이 안 난다. 뇌가 다 타들어가서…. (웃음) 그리고 시나리오 회의, 리허설도 많이 한다. 영어로 연기 수업도 하고. 영어도 그렇지만 문화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다. 사람 사는 데가 다 똑같지 싶었는데, 하나도 안 똑같다. 미국은 좋게 이야기하면 스트레이트하다. 원하는 것을 바로바로 이야기한다. 한국에서 똑같이 스트레이트하게 이야기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한국 문화랑은 다르다.
호러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좋아하는 작품은?
‘캐빈 인 더 우즈’(2012). 굉장히 독특했다. 처음 나왔을 때 “와, 이게 뭐야!” 했다. 웰메이드 호러보다는 거친 쪽이 좋다.
이를테면 ‘텍사스 전기톱 학살’ 같은?
아니, 그런 거 말고…. (웃음) 공포는 웰메이드로 하면 이상하게 안 무섭고, 안 와 닿는다. 날것 같은 느낌이 있는 것이 좋다. 비과학적인 것을 잘 믿지 않는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돼야 한다. ‘캐빈 인 더 우즈’가 좋았던 건 발상 자체가 논리적이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다들 귀신이 있다고 하는데, 한데 모아놓으니 말이 되는구나 싶었다.
원작 애니메이션 ‘인랑’(1999)의 주인공 ‘후세’와 이번 작품의 ‘임중경’은 느낌이 다르다. 심지어 강화복 수트를 입고 등장할 때도,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차이가 아니라 분위기 자체가 확연히 달랐다. 캐릭터를 그릴 때 원작을 참고했는지, 아니면 차이를 두려고 했는지?
2012년에 감독님이 하자고 했을 때 원작을 봤다. 아마 그 전에 대학 때 봤던 것도 같고. 만화책은 즐겨 보지만 애니메이션은 그렇게 챙겨서 보는 편은 아니다. 일단 원작의 후세는 아저씨 같았다. (웃음)
앞서 김지운 감독을 인터뷰하면서, 후세가 강동원이 아니라 김 감독님을 닮았다고 했는데 왠지 실례를 범한 기분이다.
(웃음) 많이 참고하려고 했다. 스토리라인도 다른 지점이 많은데, 캐릭터까지 다르면 원작 팬들이 안 좋아할 것 같았다. 또 인물이 가진 갈등은 거의 같다. 그래서 최대한 비슷하게 가져가려고 했다. 감독님은 좀 더 다이나믹한 감정을 원했던 것 같고, 나는 좀 더 차갑게 가려고 했던 것 같다.
남산 서울타워와 이어진 장면들에서 맨몸 액션이 인상적이었다. 임중경이라는 인물에게 감정 이입이 되면서 서글픈 마음까지 들었다.
임중경은 인간병기로 키워졌다. 원래 특수 군인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지 않았을까? 특기대로 와서 사람을 죽이게 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흔들리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액션할 때도 그런 느낌이 있지 않았나 싶다.
40kg에 달하는 강화복 수트를 입은 채 연기가 힘들지 않았나?
예를 들어 무용수들이나 음악 하는 분들이 몸을 움직일 때 연기를 안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감정을 가져야 그런 무브먼트가 나온다. 아무리 강화복 안에 있어도 그런 감정을 안 가지면 그런 움직임이 안 나온다. 다만 조금 달랐던 점은 강화복 수트가 약간의 움직임이 있어서 그런 것을 표현하려고 했다.
액션을 할 때 춤을 추듯 그려지는 ‘강동원의 선’이 있다. 혹시 따로 춤을 배운 적이 있나?
5개월 정도 현대 무용을 배웠다. 영화 ‘형사 Duelist’(2005) 때문에. 그때 엄청 하드하게 배웠다. 기본이 윗몸 일으키기 1000개 하고 시작하는 시스템이었다. 오래 훈련할 때는 하루에 거의 10시간, 12시간도 했다. 무용으로 단련된 몸이 아니라서 그 무용을 할 수 있는 몸으로 만들고 시작한다. 사실 액션을 생각할 때, 치고 받는 게 전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액션도 다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액션도 하나의 감정, 하나의 연기다.
무용을 배운 경험이 연기로 뿌리를 잘 내린 듯한데.
문제가 있기는 하다. 무용으로 기본을 다져서 액션을 하다 보니 대역을 못 찾는다. 움직임이 너무 달라서. 뒷모습이 나올 때는 위험해서 보통 대역을 쓰는데 나는 다 해야 한다. 최대한 액션을 하는 시간을 줄여야 부상도 줄어들 텐데 뒷모습마저 할 대역도 없다.
최근 5년 간 한 해에 두 편 꼴로 스크린에서 만난다. 영화를 향한 열정 없이는 불가능한 스케줄 아닌가?
그래서 광고를 많이 안 하려고 한다. 영화를 최대한 많이 찍기 위해서, 노출을 최대한 줄인다. 배우는 연기를 계속 해야 연기가 는다. 그런데 요즈음은 영화를 한 편 찍으면 배우로서 할 일이 많아졌다. 홍보가 많아지니까 노출이 많아졌다. 관객이 좀 궁금해야 극장으로 찾아오는데…. 그런 부분들이 마음에 걸린다. 영화 홍보를 하는 입장에서는 배우가 올인하기를 원하고. 그런 딜레마가 있다.
[박미영 작가 miyoung1223@naver.com
영화 시나리오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고, 텐아시아에 영화 칼럼을 기고했다.]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340350
*텐아시아에 실린 인터뷰를 다듬어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