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상호
김상호는 많은 작품의 곳곳에 깃들어 있다. 관객들에게 그 작품을 대표하는 얼굴로 남지 않아도, 그 작품을 기억에 남게 만드는 연기를 하는 보석과도 같은 배우다. 영화 ‘목격자’(2018)의 고군분투하는 형사 ‘재엽’으로 돌아온 그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는 어떻게 보았는지?
대본보다는 아주 잘 나온 것 같다. 속도감이나 이야기의 밀도가 훨씬 좋아졌다.
살인자와 목격자가 서로를 목격했다는 흥미로운 설정에서 출발하는 작품이다. 배우로서 시나리오는 어떠했나?
처음부터 몹시 좋았다. 살인이라는 것이 내 가족과 이웃이 있는 곳에서 벌어진다. 마음먹고 가야 하는 어떤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친밀한 장소에서 이뤄지는 긴장감이랄까. 집단 이기주의를 이야기로 풀어낸 점도 매력적이었다.
가장 소름끼쳤던 장면을 꼽자면?
이미 다 아니까 영화를 보면서 무섭지는 않았다. 대본을 읽으면서 무서웠던 장면은 있다. 처음에 태호(곽시양 분)가 살인을 하고, 그 다음에 상훈(이성민 분)과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층을 세는데 인물의 심리를 따라가면 굉장히 무서운 장면이다.
이성민과의 호흡은 어떠했는지?
연기 잘하는 사람과 하면 영락없다. 아주 편안하다. 각자 긴장감을 가지고 그 장면에서 각자의 입장을 딱딱 부딪치니까 아주 편안하다.
곽시양과는 형사와 범인의 관계지만 붙는 장면이 많지 않았다.
시양이에 대한 첫인상은 ‘자신만만함’이었다. 정말 잘해낼 거라는, 두고 보라는 느낌…. 독이 바짝 오른 느낌이었다. 좋았다. 성민 형의 표현처럼 되게 섹시한 배우가 한 명 나타난 것 같다. 그 말에 동감한다.
‘잠복근무’(2005) ‘공필두’(2006) 등을 비롯해서 영화에서 형사 역을 많이 했는데.
극에서 내가 맡은 역할답게 리액션을 해나가려고 한다. ‘목격자’의 재엽은 기존의 형사들과 다르다. 보통의 형사들은 신고를 받고 출동해서 정보를 얻는다. 그 정보를 가지고 범인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재엽도 사건 현장에 가서 범인을 따라가려고 하는데, 집단 이기주의에 부딪혀서 범인을 따라갈 수가 없다.
실제로 집단 이기주의를 느낀 적이 있는지?
별로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집단을 별로 안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집단 속에 들어가 있는 것. 운동도 혼자 하는 헬스, 수영, 자전거를 좋아한다.
축구팬으로 유명하지 않은가?
조기축구회는 안 한다. 약속을 하고 지키는 것이 스트레스다. 누가 촬영도 집단 아니냐고 묻길래 그건 직업이라고 답했다. (웃음)
‘목격자’에서 재엽이 후배 형사를 때리는 신에서 조금 불편했다. 감정의 끓는점이 덜 됐는데 액션이 치고 나가는 느낌이랄까?
앞서 편집된 장면이 있다. 산에 올라가서 스마트폰으로 타이어 자국을 찍어서 후배에게 보낸다. 차종을 알아보고 연락해 달라고 부탁한다. 문제는 후배가 알았는데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만약 연락을 했다면 405호 여자가 변을 안 당할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재엽 안에 그 화가 존재했기 때문에 그런 강도의 신이 나온 것이다.
‘전우치’(2008)의 신부 역이나 tvN 드라마 ‘싸우자 귀신아’(2016)의 스님 역도 그러하고, 어떤 종교에 있어도 해당 종교인으로 보인다.
편안함 때문인 것 같다. 가끔 현장에서 듣는 말은 시골에 가서 앉아있으면 시골 주민, 필리핀에 있으면 필리핀 사람으로 보인다고. 종교 뿐 아니라 어떤 배역을 맡든 간에 편안함 때문에 그렇게 비치는 것 같다.
혹 종교가 있는지?
굳이 정하자면, 무교에 가까운 불교다. 부모님이 불교라서. 그런데 한 번도 안 가봤다. 그 또한 단체생활이라서. (웃음)
드라마와 영화에 경계를 두지 않고 고루 출연하고 있다. 연기하는 입장에서 가장 큰 차이는?
드라마의 장점은 시청자와 실시간으로 같이 간다는 점이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을 할 때 집사람 심부름으로 채소를 사러 가는데 어떤 할머니가 “힘들지? 힘내!” 하시는 거다. 드라마 속의 막내아들로 인지하는 거다. 영화의 장점은 연기를 하면서는 관객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모르지만 극장에 걸리고 좋은 반응을 얻을 때 카타르시스가 있다.
얼마 전에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변산’(2018)에서 꼭 봤어야 할 얼굴을 덜 보고 나온 느낌이 들었다. 그 답이 김상호였다. 이준익 감독의 작품에 잘 맞는 배우 중 한 사람이다.
‘변산’에 어울리는 역할이 있었나? (웃음) 필요하면 갖다 쓰실 것이다. 불러주시면 가서 좋은 케미를 보여드리겠다.
‘피와 뼈’(2004)의 각본으로 유명한 정의신 감독의 영화 ‘용길이네 곱창집’(2018)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배우 김상호부터 감독 정의신까지 두루두루 기대가 큰 작품이다.
징용이 되어서 일본에 정착한 교포 1세대의 이야기다. 감독의 연극이 원작으로,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일찌감치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다. 일본에서 주요 연극대상을 휩쓸기도 했다. 내가 만나본 정의신 감독은 천재다. 작게라도 꼭 개봉이 됐으면 한다.
[박미영 작가 miyoung1223@naver.com
영화 시나리오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고, 텐아시아에 영화 칼럼을 기고했다.]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343337
*텐아시아에 실린 인터뷰를 다듬어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