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추천] 그림자를 판 사나이-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그림자 없이 살 수 있는가

by 리틀캐빈클럽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생각을 쓴다는 것은 참 부담스러운 일이다.

더군다나 같이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누군가에게 추천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솔직히 누군가와 생각을 나누기 위해 책을 읽어본 적도 없고, 나 스스로도 책을 읽으며 깨닫는 것들을 일일이 기억에 담아두는 편은 아니어서 과연 내가 추천할 자격이 있을까 주저했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조금은 어설프지만, 참 잘 읽었다고 감동을 받고, 중고서적에 되팔지 않고 내가 10년 이상 간직하고 싶은 책들을 기준 삼아 도서 추천을 하기로 했다.


혹시라도 그 기준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나열해 보자면,


쉽게 읽히며 스토리가 재미있어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책 (개인취향이다. 판타지, 성장 소설들이 많다)

나라면 결코 쓸 수 없는 기가 막힌 문장을 만나게 해주는 책 (이건 진짜 많아서, 늘 고민)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모르고 있던 문제를 알게 해주는 책

본질을 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게 질문을 던지는 책

작가의 시선을 배울 수 있는 책 (작가의 고민과 그 해결방법이 공감이 되진 않더라도)


물론 나만의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그 판단 기준은 다르겠지만, 오늘 추천하는 도서는 이 모든 기준에 꼭 부합하는 그런 책중의 하나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지음 / 최문규 옮김



아마 고전이고 여기저기서 리뷰도 많이 된 책이어서 이미 읽으신 분들도 많을 것이다. 문학적으로도 의미 있게 평가받는 도서이니, 자세한 해석이나 전문적인 서평들을 챙겨보면 훨씬 생각의 시야를 넓힐 수 있고,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깊게 작품 해석을 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같이 수록되어 있는 최문규의 <작품 해제>를 반드시 읽어보길 권한다. 그림자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을 참고하며, 나에게 그림자는 무엇인지, 우리 사회에서 그림자는 어떤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지 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림자 없이 살 수 있을까


이 책을 처음 접한 4,5년 전에는


'그림자를 왜 팔아가지고는....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그림자가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야지, 순간의 욕심에 소중한 것을 놓치면 안 되지."


이런 단순한 교훈적인 관점이 먼저였다. 그래서 그림자가 있다는 사실, 나는 그림자를 지키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여러 번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주인공 슐레밀이 보여준 그림자 없는 삶을 선택하는 용기, 그리고 상실 이후 자신에게 남겨진 것에 집중하는 삶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그저 인간사회 속에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주인공(슐레밀)은 그림자와 돈을 바꾸는 선택을 했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인간사회로부터의 조롱과 멸시를 받으며 철저히 외면당한다. 그리고 이 고난의 시간 동안 슐레밀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통스럽게 성찰하고, 결국 그림자도 없고, 돈도 없는 삶을 선택한다.


물론 팔아서는 안되었겠지만, 이미 팔아서 잃어버리고 없다면, 이 결핍으로 인한 불행에 매몰되는 대신, 이 결핍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을 과감하게 선택하는 용기를 가진 주인공에게 박수를 보낸다.



모든 것(처럼 보이는)을 내려놓는 선택을 했을 때 나타나는 것들


그림자와 행운주머니(돈)를 모두 버린 후 슐레밀은 그저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이 결심에 쫓아 묵묵히 걷다 보니,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장화(행운)를 얻을 수 있었고, 이 행운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에 몰두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가진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나의 삶'을 살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여정이었다고 슐레밀은 이해한다.


나는 내 삶의 의미를 어디서 찾고 있을까? 사람들과의 관계와 사회의 기준에 맞추어진 나를 진정한 '나'라고 할 수 있는지 때로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슐레밀의 이야기처럼 어쩌면 내려놓아야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는 시작을 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내가 '나'의 영혼을 가지고 '나'로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어디에 있던지 말이다.






p33

"성실한 사람은 태양 아래서 걸어가면서 자신의 그림자를 잘 간직하는 법이지"

그들을 피하기 위해서 나는 한 줌의 금화를 내던졌고, 동정심 많은 이들이 구해준 임대 마차에 얼른 올라탔다.

달리는 마차 속에 혼자 있으면서 나는 쓰디쓴 눈물을 흘렸다. 내 마음에는 벌써 어떤 예감이 싹트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업적과 덕성보다 돈이 훨씬 중요할지라도 실은 그림자야말로 그런 돈보다도 훨씬 더 귀중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전에는 내 양심에 모든 재산을 바쳤지만, 그런데 지금의 나는 단지 돈 때문에 그림자를 바치고 말았구나. 이제 나는 이 지상에서 어떤 사람이 될 수 있고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p48

그것은 바로 인간들 가운데였다. 인간들 가운데야말로 닻이 가장 믿음직스러운 토대를 내리는 곳이었다.



p81

정말 오랜만에 내 그림자를 다시 보았다. 그렇지만 내 그림자가 터무니없는 일을 하도록 가볍게 취급되고 있는 것을 보니, 또한 내가 저 그림자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곤경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니 내 가슴은 터질 것만 같았다.



p98

나중에는 나 자신과 화해했지만, 처음에는 필연성을 받아들일 것을 배웠지. 이미 벌어진 행위, 일어난 사건이란 필연성에 의한 것일 뿐, 다른 무엇이 더 있겠는가! 나는 필연성을 현명한 섭리로 받아들이는 것을 배웠지. 즉 전체의 거대한 움직임에 의해 스쳐 지나가는 섭리로서 말이야. 우리는 단지 동일하게 수동적으로 작동되는 동시에 능동적으로 작동하는 수레바퀴로서 그 안에 물려 있을 뿐이지.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 일어나는 것이고, 존재해야만 했던 것이 일어났던 것이며, 그러한 섭리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아. 마침내 내 운명에서, 그리고 내 운명을 공격하는 이들의 운명 속에서 나는 그러한 섭리의 수용을 배웠던 거야.



p118

아직 소지하고 있는 것을 가볍게 내버리고 향후 내게 일어날 것을 운명에 맡기기로 하고 산을 뒤덮은 산자락의 옆길로 걸어 나가기로 결심했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으며, 홀로 놔두고 온 돈 있는 벤델에게로 다시 방향을 되돌릴까 하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새로운 인물이 돼서 이 세상에서 살아나가고자 했다. 내 옷차림은 매우 보잘것없었다. (중략) 몸을 일으켜 일어났고, 바로 그 자리에서 마디가 많은 지팡이를 기념 삼아 잘라서 길을 걸어갔다.



p125

말없이 경건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었고 감사의 눈물을 한없이 흘렸다. 나의 미래가 마음속에 갑작스럽게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전의 죄로 인해 인간 사회로부터 차단되었지만, 그 대신 나는 이제 언제나 좋아했던 자연에 의존하게 되었다.

(중략)

물론 그것은 내가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나는 단지 그 원형에 있어서 밝고 완전하게 내 눈앞에 나타나는 것들을 충실히, 말없이 엄격하게, 지칠 줄 모르는 노력으로 서술하려 했으며, 원형과 서술된 것 간의 상호 일치에서 만족감을 찾았다.


p138

친구여, 자네가 만약 사람들 가운데 살고 싶다면, 부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도 그림자를 중시하고 그다음에 돈을 중시하라고 가르쳐 주게나. 물론 자네가 단지 자기 자신, 그리고 더 나은 자기 자신과 함께 살고 싶다면, 자네에게는 그 어떤 충고도 필요 없겠지만.




25년에는 책과 함께 성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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