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이 늦은 사람 - 1
내가 늦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일까, 여러 번 되짚어봤다. 부모님은 딱히 비교를 많이 하며 키우신 편이 아니었고 대충 순한 동네 친구들 사이에서 올망졸망 자란 나는 시기 질투란 오직 나보다 고집이 좀 센 남동생에게서나 느끼는 감정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나름 바이올린 좀 배운다고 학원도 가고 레슨도 다녔지만 애초에 나 자신에게 특별한 기대치가 없었다. 그래서 경연대회를 나갔을 때에도 좋아하는 곡을 무대에서 야무지게 끝까지 완주했다는 사실이, 내가 누군가를 꺾고 혹은 누군가를 앞질러 상을 탔다는 사실보다 훨씬 기쁘고 기억에 남았었다. 당시 일등은 누구고 이등은 누구야, 하면서 수군대던 다른 아이들의 눈빛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은 나보다 한 발 빨리 경쟁을 알게 된 아이들이었다.
최초로 '뒤처지는구나' 하는 감각을 처음 맞닥뜨린 건 중학교 2학년 때다. 몇십년 된 일인데 지금도 눈앞의 상황처럼 생생한 걸 보면 내가 제대로 충격을 받았던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나는 그때 막 본격적인 전공생 진로(요즘 말로 하면 바이올리니스트 커리어 트랙 쯤 될까)에 올라탄 시점이었다.
거기엔 동네 학원이나 어릴 때 선생님과 배우던 아기자기한 분위기와는 영 다른 세계가 존재했다. 모든 것은 공개되어 있었고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며 평가하고 있었다. 칭찬도, 비난도, 실수도, 영광도, 모두에게 드러나버리는, 서로가 견제하고 눈치보느라 다정함이란 눈 씻고 찾을 수 없는, 바람 부는 낭떠러지 꼭대기 같은 세계였다. 다른 아이들과 부모들 앞에서 적나라하게 지적받으며 흔들림 없이 지시사항들을 완수해야 했다. 일상의 작은 행동 하나까지도 음악에 영향을 미치는 태도라고 평가받으며 자유로운 탐구보다는 주어진 과업을 초과달성 하는 데 매달리곤 했다. 글쎄, 한 명의 연주자를 강심장으로 단련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보기에는 이제 와 생각해도 유년기의 학생들에게 너무 가혹했지 않나 싶다.
그 날은, 이제 막 첫 발을 들여 사리분간도 잘 못하던 내가 과제곡으로 받은 분량을 간신히 해내어 레슨에 들고 간 날이었다. 낑낑거리며 리딩(악보 읽기식의 연주)을 한 나에게 선생님은 별다른 감정이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다음 주에는 인템포(원곡의 속도)로 해 와." 하셨다. 인템포라니! 이제 겨우 한글을 손으로 짚어가며 더듬더듬 읽기 시작한 아이에게 막힘없이 술술 책을 읽으라는 것과 같았다. 문득 내게 요구되는 속도감이 무서워졌지만 달리 주어진 옵션이 없었기 때문에 "네, 그렇게 해오겠습니다" 하고 나는 반문도 하지 못했다. 레슨 시간이 끝나고 악기를 덮어 넣으면서도 어떻게 일주일만에 인템포로 만들어오나,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 때 다음 순서로 레슨을 받기 위해 악보대 앞에 선 아이의 악보가 눈에 들어왔다. 당시 우리 클래스는 전부 공개된 방식으로 레슨을 진행해서 누구나 들어와 다른 선후배들의 레슨을 참관하곤 했다. 설마 했지만 나와 같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키도 작고 나이도 아홉 살이라고 들었던 그 아이는, 잠깐 악보를 노려보는가 싶더니 날아갈 듯이 그 곡을 단숨에 해치우는 것이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어 물 한 사발을 시원하게 들이키는 것처럼 그 화려하고 어려운 곡을 날렵하고 반짝반짝하게 완성해 버렸다. 반주자 선생님이 함께 피아노 반주를 해 주셨었는지는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지금 보고 듣고 있는 이것이 CD인가 실황인가, 나는 지금 레슨실에 있는 건가 관객석에 있는 건가, 내가 오늘 꾸역꾸역 읽은 그 곡이 저 곡이 맞는 건가, 넋을 놓고 보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 내 모습을 발견한 선생님이 나를 보고 피식 웃었던 것을 기억한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있었지만 그 순간 나는 정말이지 긴 터널로 빠지는 기분, 아니면 출구가 보이지 않게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뒷동산만 넘으면 되는 줄 알고 팔랑팔랑 원피스 차림으로 도시락통 하나 들고 소풍 나섰다가 태백산맥을 만난 느낌이랄까. 이런 거였구나, 이렇게 해야 되는구나, 이미 나보다 몇 년은 먼저, 몇 배나 앞서 이렇게 하고 있구나. 이렇게 멀구나. 세상에, 나는 지금 여기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충격이 며칠은 갔던 것 같다. 그 충격 안에는 놀라움, 실망, 자괴감, 허무함 같은 감정들이 다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설명하기 힘든 그 때의 감정은 어릴 때를 회상할 때마다 빼놓지 않는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그 날 나는 정말로 내가 '늦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아홉 살 아이도 이미 저만큼 가 있는데 그걸 뒤늦게 시작한 내가 따라잡으려면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지는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 간극이 과연 메꿀 수 있는 차이인지 조차도 알 수 없었다. 좌절은 그 감정이 '좌절'이라는 것을 제대로 분별하기도 전에 나를 휩쓸고 지나갔다. 열네 살 아이의 작고 귀여운 노력이 어느 천재적인 아홉살 아이의 탁월한 기량 앞에 '피식' 하는 웃음 한 번으로 그냥 치워져 버렸다는 게 소화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막연하지만 일단 발을 들인 이상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동안 해온 것과는 차원이 다른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나도 '구구단이나 국민체조 외우듯이 해보지 뭐' 이런 마인드로 혼자 정신무장을 했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열네 살이 되도록 그렇게 혹독한 훈련을 강제로 받아보거나 스스로를 다그치거나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연습을 하는 방법부터 실제 연습에 시간을 들이는 과정 자체까지 나는 배워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았다. 몸은 하나이고, 밥도 먹고 잠도 자야하는데, 남들보다 늦었으니 익혀야 할 것도 몇 배로 많다는 압박이 열네 살 나를 볶아댔다.
참, 나는 그 다음 주에 그 곡을 '인템포'로 완성해가지 못했다. 이미 근력이 붙어있는 사람들이 전력질주하는 속도에 이제 막 뛰어든 내가 곧바로 맞춘다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다. 대신 급류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한 기초체력부터 키우는 쪽으로 노력을 했다. 내게는 단순하게, 차근차근, 이 두 가지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 때의 묵묵한 시간들이 이후 해가 가면서 성장할 수 있었던 디딤돌이 되었다. 어쩌면 내가 가장 순수하게 열심과 끈기를 냈던 때가 바로 이 때가 아닌가 싶다. 한동안 나보다 어린 연주자들을 하루가 멀다하고 레슨실에서 마주치며 무너지는 정신줄을 붙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그 때의 나를 생각하면 좀 안쓰럽고 많이 기특하기도 하다.
열네 살의 나를 만난다면 해주고 싶은 말들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네가 '피식'일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네가 멋지고 야무진 존재야. 그리고 사실, 다른 누군가의 평가에 너를 내맡기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하면서 너의 속도대로 가도 괜찮아.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서 살지 말고, 네게 맞는 기준을 찾기 위해 살았으면 좋겠어."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