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이 지나 알게 된, 넘어도 되는 선에 대하여

출발이 늦은 사람 - 2

by 마음씨

어른들이 그런 말씀 많이 하셨다. 다 제 때 하는 게 좋다고. 아이가 너무 일찍 철이 들어도 좋지 않고, 남들 놀 때 놀아야 하고, 망가지는 것도 때가 있다고. 나는 소위 말하는 유난한 사춘기 없는 십대를 보냈다. 교복 입고 연애 좀 한다고 엄마 속을 썩인 건 있지만, 애초에 나처럼 좁은 바닥에서 좁은 활동반경을 가지고 사는 아이들에게는 일탈을 저지르는 것이 더 피곤하고 귀찮은 일이기도 했다. 주어진 미션을 달성하고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면 모든 것이 평화로운데, 굳이 내 안의 자아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여기 저기 들이받을 일 자체가 별로 없었다. 가끔 교육열 뜨거운 동네의 아이들이 순하다는 이야기가 기사나 칼럼에 나올 때면 나는 십대 때의 나를 떠올리곤 한다.


마냥 세상이 시간표처럼 잘 돌아간다고 믿던 시절을 지나 좋든 싫든 혼자 결정할 일이 훨씬 많아지는 스무 살이 되었다. 그리고 나보다 자유롭고 열려있고 충동적인 친구들을 산더미같이 만났다. 그들을 보며 나는 생소하고 신기하고 부럽고, 비로소 나도 어쩌면 선을 넘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선이라는 게 별 게 아니었다. 크고 작은 다양한 약속들 - 종교적인 약속, 부모님과의 약속, 학교와의 약속, 음악 클래스에서의 약속,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고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내게 걸려있는 수많은 약속들. 나는 감히 선을 넘기는 커녕 건드려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남들은 정말 자연스럽게 그 선을 이리저리 이동시켰다.


그리 거창한 일들도 아니었다. 나는 일단 정해진 일정이라면 수업을 빠지고서라도 레슨을 받으러 가는데 친구들은 숙취가 덜 깬 날이면 스스럼 없이 선생님에게 연락을 하고 이런 저런 핑계로 시간을 조정했다. 부어라 마셔라 놀다가도 꾸역 꾸역 통금시간 맞춰 집에 기어들어가는 게 나, 그러고 나면 몇몇 친구들은 갑자기 해 뜨는 걸 보러 간다며 그 밤중에 정동진으로 달려가는 것도 보았다. 예측 불가능하고 충동적이어도 삶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돌아갔다.


처음에는 화가 났다는 말이 더 맞을 거다. 나는 그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잘 지키기 위해, 선처럼 나란히 반듯해지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는데, 누가 그 경계를 와르르 무너뜨린 뒤 깔깔 웃는 모습을 보니 난데없는 짜증이 솟구치는 거였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그 감정은 타인에 대한 배려나 눈치도 없이 선을 뭉갠 사람을 향한 분노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고 아이를 키우며 나는 알게 되었다. 사실은 그저 무작정 끼워 맞추려고만 해오던 답답한 나에게 몹시 화가 나는 것임을.


나는 소위 알아서 기는 애였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친구나 선후배 어른들이나 연애에서도 그래왔었다. 그렇게 해서 상황이 매끄럽게 돌아가면 내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마음이 편해졌다. 지구의 평화가 유지되기 위해 내 자신이 공중분해 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회생활이란, 단체생활이란, 조화로움이란, 관계란 원래 그렇게 형성해가는 것인 줄 알았다. 이를 위해 계속해서 나를 희석해가는 것이 중요한 삶의 분기마다 얼마나 내게 독이 되는지를 그 때는 잘 몰랐다.


그렇게 화를 내던 내 마음은 또 체념하는 쪽으로 금방 돌아섰다. 내 마음이 언짢고 불편한들 상대방의 태도를 바꾸기는 어려우니, 그렇다면 내가 맞추는 수 밖에 없지, 하며 제3의 대안으로 조율하는 대신 주어진 상황을 수긍하는 쪽을 선택하곤 했다. 정말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무조건 관철을 밀어붙일 때도 이따금 있었다. 내가 항상 수용했으니 한번쯤 상대가 져줘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억울함이 때론 가득 차올랐다.


그렇게 눌리는 나의 욕구들은 이따금씩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나와 나의 연애사를 간간히 헤집곤 했다. 그러면서도 덕분에 나의 일상이나 음악 공동체에서의 삶은 평화로웠다. 한 쪽을 눌러 평화를 이루고 다른 쪽으로 그림자를 드리우는 습관은 오래도록 내게 남아 삶을 바라보고 감각하고 표현하는 데 몹시 삐뚤어진 균형감각에 적응하도록 했다. 아주 아픈 계기가 있어 도움을 받았던 상담 선생님은 내게 그랬다 - 인생 엉망진창 좌충우돌 살아온 사람들은 삶이 그렇게 유연해야 한다는 걸 체득해서 알고 있지만, 너처럼 반듯하게 아귀 딱딱 맞추려고 살아온 사람들일수록 일그러진 부분들이 있다고.


누군가를 아프게 하거나 힘들게 하지 않는다면 약속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정말 늦게 알았다. 그냥 늦은 게 아니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몇 살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끊임없이 탐색의 시기를 거치는데, 나는 그 과정 중 어느 시간들이 누락된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건 아마 절대적으로 나의 탐험의 시야가 차단되어 있던 십대와 이십대가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주어진 울타리 안에서 나름대로 일탈의 노력은 있었지만, 일탈조차 '노력'해야 할 만큼 나는 타고난 성향이 벽을 깨부시는 스타일이 아니라 주어진 벽에 잘 맞게 몸을 접어 맞추는 유형의 사람이었단 것이다.


어느 날인가 엄마가 하신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너를 양갓집 규수처럼 반듯하게 사회 규범 지키는 사람으로 키워야 할지, 마음껏 탐색하고 자유롭게 날뛰도록 키워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엄마는 어쩌면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른쪽으로 가라면 오른쪽으로 가고 그 자리에 멈추라면 그 자리에 서는 내가 살면서 만나게 될 일들이 어떤 일들인지를. 한편으로는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 에너지를 있는대로 드러내며 살아가는 여성에게 이 세상이, 특히 대한민국 사회가 얼마나 무자비하고 차가운지, 그리고 그렇다 한들 그 삶에 결혼과 육아라는 울타리가 내려앉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엄마는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종종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시간도 남고 그러면 그 때 가서 해도 돼 결혼은." 이런 말도 내게 하셨던 것 같다.


그래도 지난 시간을 생각해보면 하면 안되는 줄 알았던 일들을 하나씩 저질러보는(?) 일곱 살 아이같은 일들이 내 이십대에 조금씩 있었다. 얼마나 그 상태가 늦된 것인지 나는 그 시기를 차마 사춘기라고도 부를 수가 없다. 진짜 사춘기는 삼십대 후반이 되어서야 왔거든. 그 씨앗의 씨앗의 씨앗이 간신히 이십대에 싹을 틔웠을 뿐이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 시작도 못하고 어른이 되어버리고 부모가 되어버릴 수도 있는데, 라고 이십대 초반의 작은 경계 일탈을 격려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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