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뛰기 대신 멀리뛰기 할 걸

출발이 늦은 사람 - 3

by 마음씨

나는 우리나라 나이로 스물 여섯이던 해에, 이십년 해온 바이올린을 그만두었다. 주변 분들에게는 많이 놀라운 일이었지만 나와 내 가족에게는 그렇게 충격적인 결정은 아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쉬운 결심은 당연히 아니었는데, 보편적으로 악기 전공을 하다가 그만두는 경우 대부분 훨씬 빨리 그만두는 편이고, 내가 그만둘 나이 쯤이라면 이미 진작에 평생을 그 길을 가는 걸로 결심하고 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내게는 남은 미련보다는 다가올 미지의 시간에 대한 설레임이 훨씬 컸다. 그만큼 하루 빨리 새로운 세상으로 건너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악기를 그만둔 이후의 진로를 고민하고 선택할 타이밍이 몇 번 있었는데,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아주 신속한 결정을 내렸다. 최선인데다 최고의 선택이라고 믿기까지 했다. 스스로 나의 빠르고 확고한 결정에 자랑스러웠던 것도 잠시, 나의 시야가 얼마나 좁고 편협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기까지는 몇 년 걸리지 않았다.


악기를 그만두기 전까지 이십대의 일탈은 주로 잡다한 취미생활을 가지는 것에 머물렀다. 취미라 하기에는 좀 파고드는 면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건 아마도 뭐가 되었든 당장 해야하는 시험공부 보다는 읽다 만 소설책이 훨씬 더 재미있는 것과 일맥상통 하는 열정이었다고 본다. 시간이 흐를수록 몇 개의 잔재주가 쌓여 내 본업인 연주생활을 방해하는 것이 확실한 지경에 이르렀다. 한데 본업에 다시 잘 집중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는 커녕 나는 급기야 나의 '업'이 너무 일찍 결정버린 것에 대한 억울한 마음에까지 도달했다.


그 즈음부터는 마음이 (구태의연한 표현이지만) 방향타 고장난 배처럼 정신없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주위에서 요구되는 바와 스스로 원하는 바를 조화롭게 만들지도, 완벽하게 분리하지도 못했다. 그러다 악기를 그만두면서 정해진 결론 없이 자유롭게 나의 미래를 탐색할 기회가 공식적으로 주어지니, 어쩌면 나는 거의 이성을 잃었던 게 아닐까 싶다. 흥분 상태였다는 건 아니고 한발짝 물러나 상황의 흐름을 바라볼 마음가짐이 전혀 아니었다는 얘기이다. 이 자유를 빨리 누리고 싶었고 그러려면 하루라도 내 입장 정리를 서둘러 해야할 것만 같았다. 20년 족쇄가 풀려 이 무지개가 언제 사라질지 몰라 불안했던 마음도 컸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나는 예술경영 전공으로 학위를 하나 더 따야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여전히 음악을 사랑하지만 음악가들을 돕는 역할을 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누군가는 박수를 쳤고, 누군가는 동경했으며, 누군가는 안타까워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를 오래 본 사람들일수록 비교적 나를 지지해주었는데, 생각해보면 그들도 나와 별반 다를 바 없이 시야의 한계를 가지고 있어서 그랬지 싶다. 단시간내에 내게 주어진 옵션들을 파악하고 차근차근 준비해서, 대륙도 문화도 언어도 다른 곳으로 떠났다 - 예술로 비즈니스를 영위하고 운영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예술을 상업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지만, 먼 길을 돌아 여기까지 왔다는 기쁨이 더 컸다. 확장된 배움과 탐색의 소용돌이에서 일 년간은 꽤 많이 행복했다. 하지만 2학기인가 3학기 무렵부터 관련 타 학과 교양 수업 시간에 앉아있으면서 다시 조금씩 생각이 복잡해졌다. 왜 나는 좀 더 일찍 이 필드를 알지 못했을까? 예술경영보다 그냥 경영이 재미있고, 공연예술법보다 비영리법이 재미있고, 공연장 운영보다 조직 운영이 더 흥미롭고 관객개발보다 소비자 행동심리가 더 끌리는구나. 왜 하필 나는 예술경영을 선택했지?


이 때의 아쉬움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졌다. 실은 이 때도 그리 늦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무언가 모자란 것을 아쉬워하기는 했어도 딱히 어떤 다른 것을 행동에 옮기지는 않았다. 20년 진로에서 간신히 방향을 틀은지도 얼마 되지 않았었으니까. 여기까지 온 것만도 큰 일이었으니까. 그 후 예정보다 유학 생활을 빠르게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계속해서 알 수 없는 애매함과 마주하게 되었다. 예술이면 예술이고 경영이면 경영이지 예술경영은 대체 뭔가? 내가 학과에서 배운 마케팅은 과연 마케팅인가?


전문성을 높이 사는 한국 사회에서 그래도 공연기획 바닥에 있었을 때는 좀 나았지만 이후 교육사업 쪽에 몸담게 되었을 때는 내면의 부침이 더 심해졌다. 이럴 거면 나는 예술을 벗어나 교육학을 배우거나 행정학을 배웠어야 하지 않았을까? 교육도 알고 프로덕션도 알고 광고도 알지만, 나는 교사도 아니고 PD도 아니고 마케터도 아니었다. 관리를 아는 예술가보다 예술을 아는 관리자가 대접받고, 교수법을 아는 예술가보다 예술을 교육에 활용하는 교사가 인정받는다는 걸 첫 직장, 두번째 직장, 세번째 직장을 거치면서 차곡차곡 경험치로 쌓았다.


후회가 태산처럼 쌓이는 데에는 몇 년 걸리지 않았다. 얼마나 어렵게, 그리고 단호하고 멋지게 진로를 변경했다고 스스로 자부했었나. 하지만 어느새 내 마음은 지나버린 몇 년의 시간이, 학업에 늦게나마 쏟은 시간이, 너무너무 아깝게 느껴지는 상태로 쏠려버렸다. 그 생각은 번지고 퍼져, 이럴 거면 훨씬 더 일찍 악기를 그만두는 편이 나았다는 결론에까지 도착했다. 그토록 치열하게 나의 십대와 이십대를 갈고 닦으며 쌓아올린 나의 시간들을 한없이 원망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미련을 두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생각해보면 꽤 많은 경우 미련의 끈을 놓지 못하고 살았다. 친구도, 연인도, 일도, 학업도, 그때 그럴걸 하는 게 남아있으면 그렇게도 혼자 내 마음 한쪽 구석에서 질척대며 뒹굴곤 했다. 더 멀리 가버리지 못하고 예술의 울타리 안에 남은 내 발등을 찍고 싶었다. 시간이 부족했고 사회인이 되기에, 직장 초년생이 되기에 늦은 나이라는 편견도 내 조급한 선택에 모두 영향을 미쳤을 거다.


꽤 많이 훌훌 털어낸 지금도 '되돌아가고 싶은 과거'를 말하라고 하면 진로를 변경하던 그 때를 떠올린다. 나는 그 때 최선의 선택을 했고 내 주변의 환경도 나를 최선을 다해 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로 돌아가 더 널찍한 선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버릴 수 없다. 좀 더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좀 더 정신을 차려 주변을 둘러보고, 좀 더 여기저기 걸어다니며 생각을 하고, 더 멀리 뛰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렇게 했어도 돌고 돌아 나는 지금과 똑같은 자리에 와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계를 두었던' 내 자신이 안타까워 발 동동 구를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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