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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씨 Jul 09. 2022

왜 예술 밖에서 일해야 할까

기록하는 이유

20년간 바이올린을 하고, 10년간 예술기획과 교육 일을 하고, 5년째 테크 스타트업에서 커리어를 이어가는 내 주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직접 무대에 서지 않은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40% 정도의 지인들은 연주를 하거나 학생들을 가르치며 음악을 키워가고 있다.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발달한 SNS 덕분에 소식을 전하다보면 대부분의 동료들이 내게 말한다.

"어떻게 그렇게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살 수가 있어? 재미있어?"


나는 웃으며 한결같이 대답한다.

"지금까지 음악을 계속 하고 있는 당신이 더 대단하오."


그럼 어김없이 (10명 중 9.9명)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셋 중 하나다.

- 나는 이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 나는 너무 늦었지만 우리 학생들이라도 좀 더 넓은 세상을 봤으면 좋겠어.

- 지금으로도 좋아, 물론 남은 인생이 길어서 언제까지 할까 싶긴 하지만.


반대로 질문해보고 싶다.

왜 꼭 예술 안에 머물러야 할까?


사람에게는 죽을 때까지 새로운 기회가 다가오고, 그러니까 마음 먹으면 언제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믿는다, 아니 배워야 한다. 자라는 내내 예술의 울타리 안에 있었다면, 어느 시점이 되었을 때 예술로부터 벗어나 더 넓은 세상에 예술을 전파할 수 있을 거야.


물론 이 얘기를 자주 입 밖에 내지는 않는다. 그동안 쌓아온 것을 두고 돌아선다는 것이 얼마나 미지의 리스크인지도 잘 알기 때문이다. 


십대의 나를 두고 그 누구도 지금의 나와 같은 모습을 상상한 적 없을 것이다.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스물 여섯 살 가을에 찾아왔다. 한 번 방향을 틀어보니,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 도전부터는 극도의 두려움이나 흥분도 덜했다. 오히려 인생의 핸들을 정말 돌릴 것인가 깊이 고민하고 선택하면서 점점 더 삶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나는 이 글을 ‘예술 안에 머물러 있는 능력자들에게’ 울타리 밖의 세상에 대해 조금이나마 들려주고 싶어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꼭 예술이 아니더라도, 일찍부터 폐쇄적인 환경에서 성장했을수록 내 시도와 실패와 성공의 기록들이 발걸음에 작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예술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손을 내미는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예술하는 또는 예술 곁에 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귀중한 가치 때문이다. 예술인들이, 예술 기획자들이 세상에 나와 미치게 될 영향력이 공동체에 너무나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당사자의 인생이 믿을 수 없이 달라지는 기회를 혼자 누리기 안타까워서이다. 솔직히 누구나 격한 성장을 갈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각자 자신의 바운더리에 적합한 새로운 시도를 충분히 소화하시리라. 하지만 내 경험의 기록들이 누군가 창밖에 손을 내밀어 바람을 느껴보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처음에는 나 혼자만의 생각인 줄 알았는데, 일하며 만나온 극소수의, 비슷한 커리어의 동지들은 비슷한 의견을 낸다. 


일단, 일찍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높은 경지를 꿈꾸며 부단히 자신을 연마하고 끊임없이 개선하는 것은 스포츠와 예술이 유일(유이)하다. 그로부터 오는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내공이 자리잡아 평생 그 사람을 뒷받침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죽자살자 예체능을 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몰입과 자기 단련은 여느 다른 습관들과 마찬가지로 본인이 ‘원해서’ 해야 진정한 자신의 내공이 된다. 원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언제든지 적절하게 꺼내어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된다.


글에 담게 될 여러가지 소재들은 모두 나를 비롯해 예술적 배경을 가진 비예술 분야 동료들로부터 왔다. 애초에 만나기 쉽지 않은 그룹의 사람들을 우연히 한분 한분 수집하면서, 나는 점점 더 꿈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분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왜?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지만, 더 넓은 행복을 위해서.

더 오래 좋은 것을 남기고 더 많은 이들의 삶이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비유가 적합할지 모르겠지만, 대개 유자녀이신 분들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 설명할 방법이 없어, 낳아봐.

모든 것이 좋을 리 없다. 때론 끔찍하게 절망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대체 불가능한 경험이고, 나를 성장하게 하고,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게 만든다. 익숙한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은 이와 비슷한 맥락이면서 아이를 낳는 일보다 리스크가 덜한 일이다. 이미 태어난 아이를 다시 뱃속에 집어넣을 수는 없으니까! 


스스로 백번 천번 다시 생각해도 경계를 넘지 않기보다 더 멀리, 더 많이 넘었기를 바라게 되는 걸 보면, 난 아마 되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그리고, 그래서 더 많은 동료들에게 알리고 함께 하자고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울타리를 벗어나 예술 유전자를 세상으로 가지고 나오라고, 전혀 다른 곳에 예술 세포를 구석구석 심어 달라고, 감각이 살아 숨쉬는 22세기를 만들어가자고.


이미 바깥 세상에서 일하면서 나는 끊임없이 또 다른 밖을 꿈꾼다. 지구에 살면서 달을 꿈꾸고, 달에 가니 태양에 가고 싶고, 태양에 도착하니 태양계 밖이 궁금하고, 은하계를 넘어서니 저 멀리 보이지 않는 블랙홀도 궁금하다.


알고 있다, 모든 사람들의 성향이 같을 수 없고 모든 이들의 이상향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어떤 순간 도전의 선택이 망설여질 때, 내 작은 경험의 공유 덕분에 누군가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게 된다면 정말 기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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