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의 글
저는 요즘 글을 쓰며 자가치료 중입니다. 오늘도 틈새 시간에 최근 며칠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써요.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심리상담 센터를 찾게 된 것은, 몸과 마음을 바쳐 열정 200%을 쏟아부으며 가정도 내팽개치고 매달리던 프로젝트에 대형 사건이 터지면서 일순간에 정신적 감각마비(라고 제 맘대로 이름 붙임)가 찾아온 것이 계기가 되었지만, 꾸준한 상담 과정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바닥을 치고 있던 저의 자존감 이었어요.
여기서 잠깐, 자존감이란 (위키 펌)
자아존중감(自我尊重感, 영어: self-esteem)이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자아존중감이 있는 사람은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할 수 있고, 정체성이 제대로 확립된 사람은 자아존중감을 가질 수 있다.
자아존중감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판단이라기보다 주관적인 느낌이다. 자신을 객관화하는 것은 자아존중감을 갖는 첫 단추이다. 간단히 자존감이라고도 부른다. 이 용어는 미국의 의사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가 1890년대에 처음 사용하였다.
자존감이라는 개념은 자존심과 혼동되어 쓰이는 경우가 있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자신에 대한 긍정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자존감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대한 긍정'을 뜻하고 자존심은 '경쟁 속에서의 긍정'을 뜻하는 등의 차이가 있다.
남들의 순수한 칭찬도 "내가 얼마나 가엾어보이면 저렇게 위로와 격려를 해줄까" 하고 받아들였고, 다른 사람이 상처받는 일을 막기 위해, 상황이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나 하나쯤의 희생이야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고, 그런 희생에 뒤따르는 엄청난 체력적 정신적 노고에 대해서 스스로 위로해준 적도 단 한번도 없었으며, 힘들다고 느껴지면 "남들도 다 이러고 사는데 왜 넌 이런 것도 감당 못하냐" 며 자신에게 채찍질을 해왔고, 남이 하는 실수는 "그래, 저 사람도 자기 입장이 있으니까" 라고 이해해 주면서도, 만약 제 자신이 작은 실수라도 했다 치면 밤잠을 못 잘 정도로 자학을 하기도 했습니다.
적다보니 또 마음이 아프네요.
그동안 보호와 돌봄을 받지 못했던 제 마음이 안타까워서요.
그러다 보니 어떤 상황이나 사람이 치고 들어올 때, 제 자신을 지켜내는 능력이 완전히 바닥인 겁니다. 누군가 저에게 얼토당토치 않은 것으로 화를 내더라도, 일단 저는 무조건 제 자신의 반성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아, 혹시 내가 미처 생각치 못한 어떤 것이 저 사람으로 하여금 화를 내도록 원인 제공을 한건 아닐까? 하면서. 왜 저 인간은 저런 말도 안되는 걸로 나에게 화를 내는가! 라고 같이 맞받아치지 못하고, 나의 어떤 부분이 잘못되어서 저 사람이 화를 내게 만든걸까? 어떻게 하면 안 그럴 수 있을까? 하고 밤새 고민하는 거죠.
예를 들면.
학창시절 만났던 한 사람은 감정 과잉으로 기분이 좋을 때와 나쁠 때의 대비가 심각한 사람이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분노조절 장애가 있었던 것 같아요. 화났을 때의 폭언 수위가 제 평생 처음 듣는 인격 모독적 발언을 쏟아내는 사람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보기에 제 정신 아니라고 할 정도로 그 사람이 저에게 화를 내는 이유가, 제가 그 사람의 마음을 몰라주고 무심하게 행동해서 크게 상처입혔기 때문이라 믿었어요.
불과 2초 전까지는 저를 차 문도 열지 못하게 '왕비마마'로 모시다가, 갑자기 이상한 꼬투리를 잡아 돌변해서 '너같이 잔인한 애가 없다'며 저에게 온갖 폭언을 퍼붓고 길바닥에 저를 버리고 간 채 연락을 끊어 버려서 2박3일 꼬박 제가 집에 찾아가 무릎 꿇고 매달려 빌어서 화를 풀더라도, 그건 그 사람의 마음이 너무나 크고, 제가 그 마음을 감지하지 못하는 둔감한 성격이라고 믿었어요. (지금 쓰면서도 기가 찹니다)
그 때 정말 그 사람의 독점욕이 심해서 친구들도 거의 못 보고 살았는데 간신히 안전 이별을 한 후 저는, 감히, 맞고 살면서도 차마 헤어지지 못하는 여성분들을 아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답니다. 감정적으로 내 자신이 온전히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기준과 보호막이 없는 상태에서 누군가 저를 @@@ 이라고 공격하면, 아, 내가 정말 @@@ 인가? 라고 하염없이 흔들리는 거였습니다.
또 예를 들면.
저는 친정엄마를 '엄마 존재의 이상형'으로 생각하고 자라왔어요. 긍정적인 배움도 많았지만, 성인이 되어 서로 볼꼴 못볼꼴 보면서 환상과 현실의 간극이 무너지기 전에 엄마가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에, 저에게는 엄마가 그저 환상적인 존재로 남아있는 부분이 많았답니다. 이것이 부작용으로,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제 자신에게 엄청나게 가혹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나를 정확하게 알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고, 수고한 것에 대한 마땅한 칭찬을 하면서, 나 자신의 가정을 꾸려나가야 하는데
- 엄마는 이런 것도 했는데, 난 왜 이런 것도 못하지
- 엄마는 늘 이렇게 해주었는데, 난 왜 이렇게 하지 못하지
- 엄마는 절대 그러지 않았었는데, 난 왜 자꾸 그렇게 되는거지
이것만 저에게 가득해 있는 거예요.
아내의 입장이 되었으니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도 문제가 발생했어요. 친정엄마는 정말 헌신적인 아내이자 전업주부 였지만, 저는 피터지는 사회에서 같이 전쟁 중인 워킹맘. 이것만으로도 엄마와 저의 상황은 충분히 다르고, 엄마는 엄마, 나는 나, 이 구분이 생겨야 했는데, 저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바쁜 아버지의 부재에도 빈 자리를 모두 메워주셨던 엄마를 기억하며, 저는 가정과 돌봄의 불균형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가족의 요구보다 일터의 요구를 우선시하는 배우자에게 서운함을 표현하거나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대신 나 스스로를 관대하고 배려심 있는 아내라고 합리화하며 아무것도 조율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배우자의 사회생활을 지지하는 입장만 내보였어요. 그게 아내의 역할이라고 믿은거죠. 그러다가 힘듦이 쌓이면 가끔 진짜 이상한 걸로 폭발하고요. 왜 당연히 내가 괜찮을 거라 생각하냐고 펄펄 뛰면 상대방은 너무나 당황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개인 상담을 시작하고 6개월 정도 지나고 나서야 배우자와의 관계도 좀 더 다룰 수 있게 되었는데, 아기가 돌 되기까지의 생활을 얘기하다가 눈물이 울컥 쏟아지더라고요. 끝없이 힘들고 처절하게 외롭던 고비 고비의 순간들이 여전히 뼈저리게 남아 있더라고요. 상담 초기에 제가 선생님한테 "저 원래 배우자랑 그런 걸로 안 싸워요. 저도 반대로 간섭받는 걸 싫어해서, 괜찮아요 그런 건." 이라고 여러 번 말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바로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서럽더라구요.
저는 그런 게 배려이고 이타심인 줄 알았구요, 다른 사람을 생각할 줄 아는 역지사지, 측은지심, 뭐 그런 것인 줄 알았어요. 한국사회가 미덕으로 삼는 겸손인 줄 알았구요, 내가 하는 것은 전혀 자랑치 않고 남이 하는 작은 것도 감사할 줄 아는, 뭐 그런 기특한 생각인 줄 알았어요. 항상 의연하게 평정심을 유지하고, 내 감정 표출이 행여나 상대방을 부담스럽게 할까봐 억제하면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에 대해- 실은 대부분 평화를 위해 나를 극단적으로 희생하는 것에 대해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겨왔어요.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저들과는 달라, 하는 약간의 우월감도 가졌고요.
제 자신은 감정통제로 기쁜 것도 슬픈 것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대신 다른 사람의 극렬한 기쁨과 극렬한 분노에 대리만족을 느껴온 역사가 길어요) 다른 사람들로부터 "너는 워낙 화를 잘 안내는 성격이라" "언니는 웬만하면 다 좋게 좋게 수용하니까" 하는 말을 계속 들으니 또 그만한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도 지속적으로 가지게 되었고, 말 그대로 웬만한 큰 일에는 끄떡도 안하는 단단한 심장을 갖추었다고 생각했는데.
꺼내어보니 이게 하염없이 다 무너져 내리더군요.
괜찮다,
나는 그런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다,
괜찮다, 괜찮다,
믿어왔는데
아무것도 괜찮은 것이 없더란 말입니다.
피맺힌 상처들이 아무것도 아물지 않고, 하나도 해결되지 못하고, 하나도 지워지지 않은 채, 아주 또렷하게 남아 있더란 말입니다. 뚜껑을 열면, 그간 제가 지탱해온 그 무엇인가가 와르르 무너져내릴까봐 두려워하고 있었고 그래서 감정을 직시하지 않고 외면하고 묻어두기만 했어요. 또한 저를 향한 타인의 기대치와 이상적인 기준에 저를 맞추기 위해 계속 제 자신을 몰아쳐 왔고요.
다양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눌러왔으니 제 마음이 무겁고, 기쁨도 슬픔도 잘 느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편으론 아마도, 다른 사람의 감정을 그토록 보살피려 했던 이유가 본능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그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제와서 생각해 봅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떻게 느끼는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잘하고 무엇은 어려운가. 이런 종류의 생각을 해본지가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당황스러운 에피소드 하나가 더 있는데요,
결국 저를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었던 프로젝트에 미쳐 있던 무렵, 팀에는 제가 맹신하던 리더가 있었습니다. 그 분은 제가 보스로 따르기에 거의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가진 분이었어요. 그 분의 최애 색상은 파스텔톤 핑크색이어서 악세서리나 문구류, 심지어 문서의 도표에도 핑크로 포인트를 주곤 하는 분이었는데, 제가 그 팀에서 일하던 약 1년 여 기간동안 옷을 몇 벌 샀는데 말이죠. 90% 이상의 옷이 핑크색 이었답니다. (전혀 저의 선호색상 아님)
제 정신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주죠? 독립된 인격체로 "나"의 정체성을 분리, 유지하지 못하고 어떤 대상과 심각하게 동일시하거나 맹목적으로 흡수하는... 열거하자면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최소한 저의 지난 인생 중 2/3는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당시에는 생존을 위한 최선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외부 요인들이나 압박, 상황들에 대한 분노 감정을 건너뛰고 언제나 화살을 제 자신에게 돌렸던 것은, 제가 사실은 많이 약하고, 겁도 많고, 두려웠기 때문이겠지요. 홀로 떨어지게 될까봐, 도태될까봐, 실패할까봐, 상처받고 상처 줄까봐 항상 무언가 더 하려고 했고, 충격이 무서워 아예 스스로 충격을 차단하는 방식을 끝없이 학습했던 것 같아요.
개인 상담을 받기 시작한 후 두어 달 지날 때까지, 저는 원래 사람들은 다 그 정도는 참으며 세상을 사는 줄 알았어요. 왜 나만 이래야해, 하는 생각은 거의 해보지 않았고 오히려 그냥 내가 남들보다 수용력이 폭넓고 좋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상담 선생님이 "아니, 마음씨님, 대체 왜 그러셨어요" 라고 했을 때 "원래 다들 그러지 않나요?" 라는 것이 저의 반사적인 답변이었으니까요.
상담실을 찾는 분들 대부분은 통제하는 것이 어려워서 오시는 경우가 더 많다는데, 저는 너무 심각하게 자기자신을 지워버려서 감정을 되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해요. 상담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조금 더 제대로 실감하고 있네요. 그 말인 즉, 1년 동안 지속적으로 제3자가 옆에서 저에게 일깨워주고 있었다는 얘기죠. 단순히 한두 번의 조언으로는 저는 아마 금방 원상복귀 되었을 것입니다.
요즘 굉장히 노력하는 부분 중 하나가, 제가 어떤 감정이 느껴질 때 그걸 바로 표현하는 거예요. 남을 칭찬하거나 추켜세워 주기 위해, 분위기를 맞춰주기 위해 같이 흥분하거나 슬퍼하는 그런 것 말고, 제 자신의 어떤 일이나 상황에 대해서 제가 느껴지는 아주 솔직하고 직관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연습. 이거 왜 이리 어려운가요?
예를 들어, 몇달 전 업계 선배님 한 분이 어느 날 일방적으로 페북 친구 차단을 하신 걸 발견했어요. 안 좋게 끝난 프로젝트와 관계가 있는 것 같아서 당황했죠.
그 일을 상담실에서 얘기하면서, 제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선배가 페북 친구를 끊었더라구요. 아마도 제가 그 일에 관련이 있다고 생각을 하신 거 같아요. 본인도 혹시 곤란해질까봐, 아니면 저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참 좋아하는 멋진 분인데, 원래 성격도 털털하고 그러시거든요. 그런데 그냥 저한테 물어보셔도 되는데 왜 친구를 끊으셨는지 잘 모르겠어요. 불편하지 않으시게 한번 모른 척 말을 걸어보고 싶은데 고민이예요. 페북 메신저로 보낼지 카톡 메시지로 보내볼지."
얘기를 듣던 선생님 왈, "그런데 마음씨님, 그 분한테 화나거나 서운하지는 않으세요?"
저의 반응은, "아 물론 끊긴 걸 발견한 순간 좀 서운하긴 했는데, 사실 언제 그렇게 끊어진 것인지도 잘 모르겠고, 선배님 보시기에는 오해하거나 충분히 의심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아니면 실수로..." 선생님이 제 말을 중간에 끊으셨습니다. "마음씨님, 그럼 여기서는 그냥 그 선배가 페북 친구 끊은거 진짜 짜증난다고 알지도 못하면서 서운하다고 얘기하시면 돼요, 왜 그 분 입장을 저한테 변호하세요."
네, 맞아요. 평범한 감정의 수순은 1) 상황 발생 2) 감정 표현 3) 해결방안 모색, 이렇게 가야하는데 저는 습관적으로 2를 건너뜁니다. 그와 더불에 저보다 타인과 외부 요인들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자신의 상태를 묵살한 채 해결 방안을 찾으니, 시간이 지나면 저에게 남는 건 아주 큰 허탈감인 거죠. 제 자아와 감정을 모두 마비시키는 차갑고 외로운 허탈감.
그래서 의지를 가지고 2 를 끼워넣기 위해 무한 노력 중입니다. 수위 조절이 쉽지는 않은데 확실히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걸 느끼는 건, 배우자와 대화할 때예요. 평소에 조금씩 감정을 나누면서 배우자도 오히려 저를 조금 더 제대로 파악하게 되고, 저도 몰아서 폭발시키는 일도 줄어들고요. 아이에게도 무한 인내로 다 받아주다가 갑자기 돌변해서 내치는 일도 같이 줄어드네요. 속상할 때 속상하다고 말하고 싫은 건 싫다고 하는 것이 결국은 정말로 저를 보호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아가고 연습하고 있습니다.
다른 노력 하나는, 제가 잘 하는 일을 잘 한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거예요.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교만과 겸손의 아슬아슬한 경계 같기도 하고, 뭔가 민망하기도 하면서 스스로 여전히 하찮아보이는 시각이 강하게 남아있어요. 연습의 일환으로 제가 최근에 깨달은 것을 하나 자랑하려 합니다. (진짜 본론)
저는 일을 하면서, 업무 역량과 관리자 역량이 별개라고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일을 잘하는 사람은 팀 관리도 잘하고 조직생활도 잘 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죠. 그러다 배우자 회사의 내부 살림을 책임지기도 하고, 어려운 프로젝트에서 중간관리자 역할을 맡아 초짜 주제에 조직 관리에 대해서 혹독한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어떻게든지 헤쳐 나가야 한다는 생각 뿐이지 제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안그래도 감정마비 희생정신 극을 달릴 때라서 더더욱 아무생각 없었어요.
몇 개월 쉬고 복직한 지금 문득 문득 제 시각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우리 팀장님, 개인의 능력치가 무척 뛰어난 사람이고 솔직 담백하며 수평적 인간관계도 참 유연한 사람인데, 조직 안에서 보니 윗 분들과 교류하는 정치력이 좀 아쉽고 팀원들 헤아리며 구슬려서 어떻게든 끌고 가는 힘도 조금 약하고, 업무 지시를 상대방 수준에 맞게 전달하는 것도 어려워 하시더라구요. 워낙 혼자 멀티플레이어로 너무나 일을 잘 해내시던 분이라, 오히려 팀을 이끌며 진행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보인달까요?
자연스레 과거의 저를 돌아보니 제가 참 잘 해온 것이었습니다. 두둥- 상대가 어떤 포지션에 있는 사람이든 간에 서로 입장도 이해하면서 제가 필요한 바를 전달해서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거 있잖아요. 똑같은 얘기라도 "그간 열심히 해온 건 알겠는데 효과가 전혀 없으니 개선 방안을 만들기 위해 그 동안 한 거 전부 검토해봅시다!"라고 하면 얼마나 맥이 빠져요. 그럴 땐 "그동안 주도적으로 이 업무를 이끌어 와줘서 고마워요, 어떤 부분들을 보강하면 좋을지 같이 하나씩 찾아봅시다, 좋은 결과 만들 수 있게 도와줘요" 라고 하면 더 좋지 않을까요?
인간적으로 저를 많이 지지해주는 팀장님을 디스하는 건 아니고, 미처 몰랐지만 제가 관리자로서의 시각이 꽤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을 요즘 하게 되었습니다. 고생스럽던 지난 몇 년, 내가 그래도 괜찮게 해냈던 거네, 싶고요. 이게 내 강점이다! 라고 인정하는 글을 쓰려 한 것이, 이 장문의 원래 취지였다고 합니다.
제 자신, 애 많이 썼다고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해 보지도 않았던 일, 겁도 없이 용감하게 맡아서, 좌충우돌 시행 착오와 개선을 거듭하며 밤잠 못자고 힘들었지만, 참 잘했다고 - 그리고 능력 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사실은 우리 모두 능력자예요. 스스로 볼 땐 하찮은 것 같지만 남들 눈에 부러움이고 우러러 보이고 존경스럽고. 알고 보면 실제로 내가 그만큼 재능과 센스가 있는 거라고요. 대부분 우리는 단점을 지적당하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것에는 거부감이 덜해도 장점을 받아들이는 게 어려운 듯 해요. (혹시 저만 그런가요?) 자연스럽게 강점을 드러내고 자유롭게 당당하게 펼치면서 사는게 행복한 삶에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나"의 진짜 모습을 찾는 것, 내 진짜 감정으로 슬퍼하고, 내 진짜 감정으로 기뻐하면서 살아가는 것, 쉽지 않지만 저는 이제라도 깨닫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예요. 일련의 과정들이 없었다면 남은 인생 제 삶이 어땠을지, 정말 끔찍하죠. 보석처럼 발견한, 안전한 커뮤니티에 함께하는 덕분에 제가 중심을 되찾아 가는 데에도 힘이 많이 된다는 얘기 하고 싶습니다. 오늘도 이 긴 글로 저와 마주앉아 차 한잔 해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오래 전 비공개 커뮤니티에 작성했던 글을 다듬어 옮겨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