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예배당 옆 꽃밭에 분홍빛 낮달맞이꽃이 작고 아담하게 피어올랐어요. 거기에 연분홍빛 나비바늘꽃도 기지개를 켜듯 쭉쭉 뻗어나가며 꽃을 피워내고 있고요. 더욱이 주차장과 작은 텃밭 사이에 피어오른 주황빛의 꽃양귀비꽃도 지나가는 길손들의 발걸음까지 멈춰 세울 만큼 고혹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어요.
그 멋진 꽃들 사이에 바쁘게 움직이는 이들이 있죠. 윙윙거리며 찾아드는 벌들이에요. 녀석들이 낮달맞이꽃과 꽃양귀비꽃 속으로 불쑥 들어가는 이유가 있겠죠. 꽃 속의 꿀을 통해 자신의 에너지를 삼고 꽃가루를 얻어 벌의 유충을 키우고자 하는 거겠죠. 물론 벌이 꽃들에게 얻은 수분을 다른 꽃들에게 전달하면서 식물도 번식을 하는 거고요.
며칠 전엔 꽃 속의 벌을 잡아 벌침을 놨어요. 일주일에 3일 정도 혈압관리 차원에서 배트민턴을 하는데 무리를 했는지 발목이 뻐근한 걸 느꼈어요. 그 이야기를 어느 분에게 했더니 압해도에서 벌을 잡아다가 내게 벌침을 놔줬어요. 그 후 나도 꽃밭의 벌을 몇 마리 잡아 혼자 벌침을 놨는데 발목이 상큼하게 나았어요. 벌이 꽃을 번식시키고 꿀벌도 내주지만 벌침까지 선물해 주고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순환고리란 바로 그런 거겠죠.
“우리 산호의 가장 큰 사명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뭐, 우리 혼자 한 일은 아니다. 바다는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4분의 1을 흡수한다. 이걸 그냥 두면 해양이 산성화되어서 해양 생물들이 견딜 수 없다. 우리는 이것을 탄산칼슘으로 제거해 해양 생물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해 왔다.”(88쪽)
이정모의 〈찬란한 멸종〉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산호초를 통해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거죠. 산호초는 어류의 산란장이자 해양 생물의 은신처요 파도와 해일로부터 해안 생태계를 보호하는 장벽 역할을 한다고 해요. 건강한 산호초는 이산화탄소를 순환시키고 조개껍질의 재료인 탄산칼슘도 만든다고 하고요. 5억 년 이상 녀석들이 살아 숨 쉬면서 그만큼 지구를 이롭게 했다는 거죠.
문제는 2024년 4월부터 전체 산호의 73퍼센트가 하얗게 물드는 백화현상에 시달리게 됐다는 거예요. 2016년 이후 8년 동안 다섯 번째 대규모 백화현상이 일어났는데 그게 심하면 산호는 질병으로 결국 죽는다고 하죠. 산호들이 살 수 있는 길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 수온이 내려가는 길밖에 없다고 해요. 온실가스 배출은 빙하만 녹는 게 아니라 산호초까지 영향을 받는 거였어요. 그만큼 모든 생태계는 하나의 순환고리로 엮인 셈이죠. 기후 위기는 지구의 근간을 뒤흔드는 멸종의 위기고요.
이 책은 인류가 멸망할 것을 가정한 2150년부터 지구가 탄생한 46억 년 전까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각 시대마다 주인공을 설정해 능청맞게 이야기를 해 줘요. 이 책의 부제가 ‘거꾸로 읽는 유쾌한 지구의 역사’인 이유도 그거죠. 인류가 멸종한 후 홀로 남은 가상의 인공지능에서부터 범고래, 찰스 다윈, 네안데르탈인, 산호초, 심지어 지구까지 모두 일인칭 화자로 등장해 말을 하는데 의인화 전략을 쓴 거죠. 거기에 과학이라는 팩트를 넣어 균형감을 유지하고 있으니 흡인력이 참 좋죠.
“그는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뿌리를 개울가로 뻗으니, 잎이 언제나 푸르므로, 무더위가 닥쳐와도 걱정이 없고, 가뭄이 심해도, 걱정이 없다. 그 나무는 언제나 열매를 맺는다.”(렘17:8)
우리말 ‘뿌리’로 번역된 히브리어 שֵׁרֵשׁ(쉬레쉬)는 ‘뿌리’ ‘근간’ ‘토대’를 뜻하는 말이에요. 나무는 물이 있어야 뿌리를 내릴 수 있고 잎도 푸르고 가뭄에도 걱정 없이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죠. B.C.627년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활동하던 시대의 ‘나무 뿌리’는 남왕국 유다를 상징하는 것이고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는 거에요(신32:2,시1:3,마15:13,사11:1).
다만 유다 왕과 방백 대부분이 여호와의 말씀을 등진 채 이집트의 파라오를 신처럼 맹신하며 살았죠. 그만큼 위로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았고 아래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라는 말씀도 제쳐놓았어요. 그들 모두가 이집트의 약육강식을 좇아 상위 포식자처럼 살고자 했던 거죠. 그렇게 살면 유다 왕국은 상생할 수가 없고 그 근간마저 뿌리뽑히고 만다는 거였어요.
GREENPEACE에 따르면 2022년 초에 사라진 꿀벌의 개체수가 전체의 약 16%인 78억 마리에 달한다고 해요. 꿀벌의 집단 폐사는 해를 거듭할수록 더하겠죠. 가장 극명한 원인은 기후 위기 때문이라고 하죠. 세계 100대 작물 가운데 무려 71종이 꿀벌의 수분으로 번식하고 있다는데 만약 벌의 대가 끊긴다면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의 생존 자체도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고 하죠.
털보관장으로 유명한 이정모는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하죠. 화성 개발에 힘쓰지 말고 함께 지구를 지키는데 힘쓰자고요. 왜일까요? 지구의 자연사에 존재한 다섯 번의 멸종은 화산폭발이나 소행성의 충돌 같은 외부 변수에 의한 일이었다면 앞으로 다가올 여섯 번째 대멸종은 인류가 머리를 맞대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기후 위기 해법에 달려 있다는 거죠. 지구상의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줄여야 46억 년 살아 온 지구를 함께 지킬 수 있다는 뜻이에요. 결국 여섯 번째 다가올 멸종을 막을 수 있는 길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