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의 맑고 청량한 라거의 시대를 연 필스너 우르켈
1842년 체코 플젠(Pilsen)에서 탄생한 필스너 우르켈에는 항상 ‘최초의 황금빛 맥주’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필스너 맥주의 원류이자 황금빛 페일 라거의 원형으로, 맥주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맥주 가운데 하나다. 지금이야 유리잔에 담긴 눈부신 황금빛 맥주가 맥주의 대명사로 통하지만 19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어두운 색의 에일 맥주가 대다수였다.
이게 맥주냐
1838년 체코 플젠에서 세계 맥주사에 길이 남을 맥주 시위가 있었다. 플젠 광장으로 모여든 성난 시민들은 맥주가 가득 담긴 배럴을 들고 와 바닥에 모조리 쏟아부었다. 그들이 분노한 이유는 단 하나 맥주가 맛이 없어서였다. 아마도 분노한 시위대는 이렇게 외치지 않았을까. 이게 맥주냐!!! 그렇게 보다 나은 맥주를 만들기 위해 독일 바이에른 출신의 양조가 요셉 그롤 (Josef Groll 1813-1887)이 초빙됐다.
요셉 그롤은 플젠의 지하 양조장이 1년 내내 서늘하게 유지된다는 점을 주목해 뮌헨식 라거 양조법을 도입했다. 플젠 지역의 단물(軟水)과 보헤미아산 몰트, 체코 자테츠(Zatec) 지방의 노블 홉을 사용해 저온에서 발효하는 하면발효법을 통해 황금빛 필스너 우르켈을 만들었다. 투명한 유리잔의 대량 생산 시기와 맞물려 필스너 우르켈은 단숨에 인기를 모았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 어디에서나 모든 성공 뒤엔 아류가 뒤따른다. 이후 전 유럽에서 플젠의 맥주 제조 방식을 따라 만든 라거 맥주에 필스너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에 필스너 우르켈은 독일 법원에 소송을 냈고 필스너 우르켈이 필스너 맥주의 원조임을 인정받았지만 필스너라는 단어가 이제는 플젠식 맥주의 맛을 지칭하는 보통명사가 되어버려 어찌할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았다. 결국 자신들이 필스너의 원조임을 알리기 위해 독일어로 오리지널이라는 뜻의 ‘우르켈(Urquell)’이란 단어를 이름에 붙였다. 우리로 치자면 간판에 원조 맛집임을 홍보하는 셈이다.
원조 맛집의 기백이 넘실대는 맥주
맥주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맥주의 맛은 어떨까. 나의 이러한 궁금증을 필스너 우르켈은 감탄으로 돌려주었다. 부드러운 목 넘김과 깊고 강한 끝맛이 잘 계산된 깔끔하고 균형 잡힌 맛이었다. 뒤로 갈수록 거세지는 탄산감도 만족스럽다. 개성보다는 기본기에 충실한 맥주였지만 은은하게 입안을 감도는 향긋하고 쌉싸름한 홉의 향 덕분에 오묘한 매력에 자꾸 이끌리는 맛이었다. 사주로 보자면 도화보다는 홍염이랄까. 필스너 우르켈에 사용된 체코 자테츠 지역의 자츠 홉은 노블 홉의 하나로 명품 홉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원조 맛집에는 역시 따라 하기 힘든 특별함이 있다. 완벽에 가까운 맛이었다.
*이 맥주를 다시 마실 생각이 있는가?
네. 한동안 내 마음속 1위 맥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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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 양조 전문가를 초빙해 만든 필스너 계열의 일본 맥주 에비스가 떠오르는. 독일은 정말 맥주 강국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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